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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아리 Feb 18. 2023

[연재] 소설 part_1

경계선 지능 소설

  

  한강에 떠 있는 대형 오리 설치물을 본 것이 친구와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 만남을 끝으로 친구는 일방적으로 그녀의 연락을 피했다. 아니 더 정확히는 피하고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친구가 왜 그녀의 연락을 피하는지, 피한다고 여겨지는지 친구는 그녀에게 전혀 기별을 하지 않았다. 이러다 소중하고 막역한 친구 하나를 잃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이 막심해졌다.

그녀는 어렴풋이 짐작이 가는 데가 있었다. 그건 그녀가   최근 사귄 남자친구에 대해서였다. 그녀가 그 남자를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은 날 남자는 그녀를 터무니없이 의심했었다. 그녀는 친구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았다. 친구는 이전부터 그녀가 남자를 잘못 만나 종종 사고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는 점과 남자라는 이성관계를 하기에 그녀의 여러 현재 상황과 정신상태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점을 그녀가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에 집착할 때마다  계속 그녀에게 피력해 왔었으나 그때의 통화에서는 친구의 목소리가 심각했다.

  심장까지 떨린다고. 예감이 매우 좋지 않다고 집안에서 무슨 일이든 일어날 거 같으니 남자를 사귀지 말라는 식으로 말했었다. 당시의 그녀는 아무래도 그래야겠다고 친구 말에 동조를 했었고 친구는 자기가 이렇게 말하는데도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녀를 만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남자를, 지금까지 아주 잘 만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모르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는 그녀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연락을 취해도 받지 않고 톡을 보내도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친구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는지, 소중한 친구라고는 너밖에 없으며 언제든 얘기를 다 듣겠다고, 절실하게 연락을 원한다는 진심을 보냈고 어쩌다 연락이 된 친구는 그러나 거기에는 답하지 않고 일이 바빠서라는 이유를 들기만 할 뿐이었다.

  오늘도, 자신을 만나기 불편한 것인지, 자신의 연락은 피하는 것 같다고, 뭐든 자신이 미안했다는 톡에 친구는 묵묵부답이었다. 읽지 않았다는 표식인, 노란 말풍선 옆 빨간 1 표시를 보며, 그녀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사실 그녀는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하나뿐인 친구를 잃는다는 사실보다 하나뿐인 '일반인' 친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하여 결국은 새로 사귄 남자친구마저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녀를 엄습했다.

  남자친구와 하나뿐인 절친, 그리고 그들을 통합하는 전제는 일반인이었고 그녀는 '경계선'이었다. 경계선.이라고 하면 경계선이 뭔지 경계하는 눈초리로 그녀를 쳐다볼지 모른다. 작은 일도 쉽사리 거절을 못하고 조그마한 일에도 마음을 졸이는 소심한 그녀가 설마 경계선 인격장애일리는 없고, 또 다른 심리학적 지표로서 경계선, 경계선 지능장애였다.

  경계선 지능장애. 줄여서 경지. 이때쯤의 그녀는 자신을 명명하는 학명과도 같은 진단기준에 체념의 경지에 이르렀으나 절대 체념할 수 없는, 타협할 수 없는 기준이 그녀의 정신 속에 생생하게 곧추서있었다. 바로 그녀의 자존심이었다. 자부심과 자존감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녀의 자존심은 일종의 자기 방어 같은 불완전한 측면이 있었다. 자기 긍정에서 우러나오는 자기 긍지가 아닌 자기를 부정하는 자존심이었다.

   그녀가 느끼는 두려움의 실체란 결국 남자친구가 자신의 본모습을 알게 됨으로써, 남자친구로부터 받은 모든 사랑을 잃고 사랑했던 만큼 배신감에 몸부림치며 종내에는 처절하게 멸시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생각할수록 모욕이었다. 모욕은 상실보다 더 지독히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모욕받고 싶지 않다. 연락이 없는 친구에 대한 그녀 마음의 원천이었다. 자신이 '경지인'인 것 자체에 그녀는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그녀는 핸드폰 액정을 끄고 누웠다. 이 친구를 잃음으로써 일반인이라고는 한 명도 주변에 남지 않으면 어쩌나. 근묵자흑이라고 자신이 그렇게 모욕을 느꼈던 경계선 지능인들만의 무리 속에 자신이 진짜 속해버리면 어쩌나. 진짜 경계선 지능에 속한다고? 이미 경계선 지능인이고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 무엇이 그렇게 두렵나.

  인아. 내가 다 미안해. 그녀는 또 톡을 보냈다. 보내놓고 무엇이 미안한지 몰랐다. 남자친구 문제라면 지금은 잘 만나고 있다. 우려할 상황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너무 좋다. 친구를 위해서 남자친구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친구를 잃는 게 두려운가 경계선 지능인인 게 들통나는 게 두려운가. 친구를 잃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나.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다음날 아침. 친구에게서 톡이 와 있었다.

나 새벽까지 바빠. 거래처가 일을 욕 나오게 줘. 네가 와서 일할래? 망상하지 말고.

  간결한 연락이었다. 망상하지 말고. 진짜 바빠서 그랬나. 그녀의 걱정을 친구는 단 한마디로 일축했다. 망상. 망상이라는 친구의 말에 그녀는 안도했다. 연락이 안 되는 이유가 정말 바빠서 그랬구나. 내가 너무 조급했었나 보다. 너를 잃을까 봐. 성급했었나 보다. 내 유일한 일반인 친구인 너를.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유일한 일반인 친구. 일반인에 방점이 찍힌 친구. 그녀는 왠지 긴장이 풀리면서도 친구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이 씁쓸하다고 느꼈다. 그러면서 남자친구를 사귄다는 게 슬퍼졌다. 자신이라는 존재를 부정하고 싶었다.

  

  티끌 하나만 지우면 깨끗해질 텐데. 저 자국 하나만 지우면 완벽할 텐데. 그녀는 공연히 화장대 거울의 지워지지 않는 얼룩들을 박박 문지르며 푸념했다. 티끌 하나라기에는 얼룩이 짙고 넓긴 했다. 그 얼룩들이 깨끗해질 수도 있는 거울에 오점을 남겼다. 얼룩덜룩하게 얼룩이 눌어붙은 깨끗하지 못한 거울은 어쩐지 흐리멍덩해 보이면서 자신의 얼굴까지 깔끔하지 못하게 보이게 했다. 저 거울을 보며 맨날 화장을 하는데 자신의 얼굴은 점점 못나 보였다.


  너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 사랑받을 가치가 없으니까. 사랑받을 가치? 누구로부터? 남자친구? 남자친구는 무엇 때문에 널 사랑하지? 남자친구에게 사랑받을 가치가 없어. 남자친구는 나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걸까. 진정 사랑하는 게 아닌 걸까. 자신을 속인 모습으로 사랑받는 건 진실일까.

  마음의 소리들이 계속 들려왔다. 그러나 그 소리들에 답을 할 목소리들은 없었다.

  아리야. 보고 싶어.

  남자친구에게 톡이 왔다. 자기도 보고 싶다고 톡을 보낸다. 내일 만날 약속을 잡는다. 내일은 일요일. 금방, 떠올랐던 마음의 소리들이 사라진다. 만남의 설렘으로 채워진 이 마음은 충만하다. 아까까지 부족하고 못났던 마음이 열렬함으로 채워진다. 아직까지 자신은 사랑받고 있구나. 지금 이 순간은 온전하구나.


  경계선이라는 게 뭐가 중요해. 상관없어. 너는 다시 검사하면 아니야. 여자는 비밀이 많아야 해. 그 머스마 카페에 들이지 마. 괜히 카페에 들이다가 말이 새어나갈 수 있어.

  그날 밤 어머니의 대화는 그렇게 이어졌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늘 자신의 모든 걸 털어놓는다. 어머니는 그녀의 모든 걸 당신의 식대로 해석해서 받아들인다. 그녀에게는 어머니의 말이 전부였다. 그러나 남자친구를 사귄 후부터는 어머니의 말이 다 모순으로 들렸다. 상관이 없다면서 숨겨야 한다. 너는 아니라면서도, 그것을 들킬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된다. 늘 그녀가 남자친구에게 자신의 판정이 들키면 어쩌나 하고 고민할 때마다 당신의 대답은 확고했다.

  애초에 들키지 말아야 할 비밀은 상관이 없는 게 아니다.   내일 남자친구를 만나면 들킬 만한 얘기는 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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