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아리 Feb 27. 2023

첫 출근

꿈과 사랑이 넘치는 사회

  2월 25일 토요일. 백화점 라운지 근무를 시작했다. 10시부터 7시까지 총 9시간. 우리가 잘 아는, 꿈과 사랑이 넘치는 세상과 디워의 용이 타고 오를 것만 같은 높은 타워를 품은 백화점에서다. 이렇게 말하면 모두 알아들을 것이다.


  당일 아침. 올백으로 머리를 넘겨 머리망을 하고, 워낙 길치라 근무확정 문자에서 안내한 출근 장소를 헤맬 것을 염두에 두고 일찍 집을 나섰다. 그리고 여지없이, 나는 길을 헤맸다. 분수 옆 놀이공원으로 가는 통로 어디에 직원 출입용 문이 있고 그곳에 들어가면 엘리베이터가 있으며 12층으로 올라오면 된다는데 나는 그 주변부를 헤매고 헤맸다. 겨우 다른 직원의 안내를 받고 찾아갈 수 있었다. 바로 내가 지나친 지점에 있었는데 못 찾은 것이다. 아마 내가 출근 시간보다 훨씬 이르게 도착할 것을 예상하고 집에서 빨리 나오지 않았다면 지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출근 처음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여차여차 12층으로 올라가 산업안전교육이란 것을 들었다. 안내된 노트북에 로그인을 하고 들어가 동영상을 시청하는 거였다. 총 8강으로 되어있는데 다 듣기까지 두 시간가량이 걸렸다. 한 강 한 강 최소 15분을 들어야 하는데 지겹게도 고역이었다. 그러나 강의를 다 시청한 후 60점을 넘겨야 하는 확인용 시험이 있어 그냥 대충 넘겨볼 수도 없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동영상을 다 시청한 후 친 시험에서 내 대망의 점수는 90점으로 합격. 내가 이런 필기시험에는 강하다. 예감이 좋았다.


  토요일 낮 시간대의 VIP라운지는 번화가의 패스트푸드점처럼 사람이 많이 몰렸다. 다들 정신없이 바쁘고 정신없이 주문이 들어왔다. 나는 그 와중에 유니폼을 받아 화장실에서 환복을 한 후 돌아와 첫날 근무자의 기본자세인 멀뚱멀뚱을 유지했다. 눈으로 그들의 바쁜 움직임을 좇으며 이번만큼은 잘 해내리라 다짐했지만 내심 살벌하게 바쁜 기운에 나는 움츠러들었다. 지난 알바 때의 공포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예감이 무척 좋지 않았다.


  친근한 인상의 남자 직원이 서둘러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테이블 번호부터. 총 11 테이블이 있었다. 1번부터 10번까지는 홀이고 11번은 룸이다. 주문은 테이크아웃과 홀 입실로 나뉘는데 패드에 주문 음료와 수량, 그리고 작은 글씨로 요청사항이 찍힌다. 잘 확인하고, 테이크아웃 시 세팅과 홀 입실 시 세팅을 빠르게 알려줬다. 공통점은 다과와, 아이스로 시킬 경우 빨대가 나가야 하는 거였는데 나는 줄기차게 실수를 했다. 밖에서 손님을 맞으며 근무를 하는 정직원 매니저 직원들의 원성이 이어졌다. 다과 꼭 나가야 해요. 빨대 제발 좀 확인해 주세요.

  홀 주문받는 주문용 패드로 받았다. 입실 테이블 번호가 죽 나열돼 있는데 손님이 들어오면 대기 중 테이블이 뜬다. 거기서 주문하기를 눌러 손님이 주문한 음료를 빠르게 눌러야 했다. 첫날이라 어디에 무슨 음료가 있는 것인지 찾아내려 가야 했는데 어설픈 내 손놀림이 그들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그 와중에 잔머리는 왜 이렇게 내려오는 것인지, 총괄 매니저로 보이는 직원한테 계속 잔머리 좀 어떻게 해보라는 지적을 받았다. 거기다 신발도 문제였다. 백화점에 입사할 거라 딱 백화점 구두로 사 신었는데 발꿈치 부분이 질퍽거려 뒤꿈치에 피가 났고 계속 절뚝거리며 걸어 역시 원성을 들었다. 나 역시 매우 불편했다. 절뚝거리며 걷고 잔머리는 다 나온 데다가 어설프게 일하는 신입. 나는 그들에게 그렇게 찍혀있었다.

  

  첫날에는 메뉴 제조는 하지 않았다. 계속 세팅과 포장. 주문받기만 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익숙해지는 게 쉽지 않았다. 내가 적응을 못하며 한창 어설프게 일하고 있을 때, 마감조 신입이 들어왔다. 신입은 짧은 머리에 나보다 똘똘하게 생겼는데 나보다 일을 잘할 기미가 보였다. 유니폼을 환복 할 때 락카를 받지 못해 수납장에다 옷가지를 넣었는데 락카 배정을 받고 락카실로 내려가는 길을 매니저 직원분이 설명해 줬다. 락카실로 가는 길은 복잡했다. 그러나 나라면 도저히 찾지 못했을 길을 그  애는 잘 찾아갔다. 심각한 길치인 내게 처음 가는 길도 헤매지 않고 성큼성큼 찾아가는 그 애가 내심 대단했다. 찾아가는 길에, 내가 유니폼을 환복 했던 화장실이 직원용 화장실이 아니라 손님용 화장실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완전 잘못 찾아간 것이다.


  배정받은 락카에 옷가지를 다시 집어넣으며 나는 앞치마도 반대로 입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다시 돌려 입는데 그 마저도 서툴렀다. 복지관 앞치마는 잘도 맸지만 여기서는 모든 게 어설펐다. 보다 못한 입사 동기 여자애가 자신이 매 주겠다고 나섰다. 그러면서 내게 나이가 스무 살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보다 10살은 더 먹었다고 알려주니 너무 어려 보인다는 말이 돌아왔다. 내 행동이 서툴러서 더 어리게 보이는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 애는 이제 스물두 살이라고 말했다.


  그 애는 확실히 나보다 일을 잘했다. 나는 홀에서 갑작스럽게 요청사항을 들으면 어디 테이블이었는지 인지를 못해 직원들을 당혹게 했으나 그 애는 몇 번 테이블이었는지 정확하게 말했다. 손놀림도 나보다 빨랐다. 테이크아웃 시 주문 음료들을 파악하고 호명하는 것도 잘했다. 나는 테이크아웃 주문 음료들을 외우지 못해 버벅댔다. 잘못 부를 때도 있어 손님들이 헷갈려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당탕탕 일을 어설프게 하고, 마감이 돌아왔다. 진정 골치 아픈 산은 머신 마감이었다. 복지관에서 했던 마감이랑은 차원이 달랐다. 다른 부분보다도 어려운 것은 머신 분해와 조립이었다. 여기서는 하나하나 부품을 분해해 청소하고 조립해서 다시 끼워 넣어야 했다.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기계라면 상세한 설명서를 봐도 모르는 지독한 기계치의 내게 대충 듣는 설명으로는 감을 충분히 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대강 마감 설명을 듣고 퇴근하는 길이 찜찜했다. 나는 과연 여기서 적응을 잘할 수 있을까.


  돌아가는 길, 미로 같은 백화점을 통과해 가는 길은 찼다. 겨울의 끝자락, 전철에서 불어오는 찬 기가 서슬 펐다. 주말에도 붐비는 전철에 오르며 나는 차창 밖에 비치는 검은 내 모습을 봤다. 내 미래도 전철의 검은 차창처럼 어두울 것 같았다. 언제 내 인생은 지상으로 올라올까. 언제까지 지하에서 머물러야 할까.


  복지관 카페에서는 다들 경계선 지능 청년이라 서툴러도 허용해 주는 분위기였다. 일도 어렵지 않아 내가 에이스로 일했다. 그러나 역시 사회는 달랐다. 일단 일반인 직원들의 수준이 달랐다. 경계선 청년들처럼 어딘가 어설픈 구석은 전혀 없었다. 그들은 빈틈없이 일했고 제 몫을 100% 활용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철저하게 잘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사회에서는 같은 경계선 청년들이 아닌, 그들과 경쟁해야 하는 냉혹한 구조였다.


  과연 여기서 적응할 수 있을까의 물음은 곧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생존의 문제로 귀결됐다. 사회는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도태는 곧 사회적 매장이었고 매장은 곧 경제적 빈곤을 초래했으며 돈도 사회도 잃은 개인은 생존할 수 없다.

게다가 사랑 문제도 있었다. 여기서 적응하지 못해 설사 잘리거나 내가 못 버텨 그만두게 되면, 남자친구와의 사랑도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연인이 내가 상상했던 만큼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라 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경우, 자신이 사랑할 사랑스러운 조건이 사라진 연인을 사랑할 수 있을까. 사실은 나, 일도 더럽게 못해. 어디 가서도 적응할 수 없는 인간이야. 그런데다 가난하기까지 해. 이런 진실까지 사랑해 줄 인간은 없을 것이다. 그게 경계선 지능에서 기인한 문제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면 이 관계는 파국이었다.


  어떻게든 이 일에 적응해야 했다. 경계선 청년들과 달리 어설픔 하나 없이 야무지게 일하는 직원들과 같아져야 했다. 사회에서는 핸디캡이 없는 싸움이다. 못하면 지적을 받고 도태된다. 돈 값이 없어진 직원은 고용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진다. 이건 우리가 학창 시절 배웠던 갈등구조 중 사회와의 갈등이다. 내게는 사회라는 넘지 못할 큰 벽이 놓였고 나는 최소한의 장비로 그 벽을 타고 넘어야 하는 왕초보 암벽 등반자였다.

 

  경계선 지능을 극복하려면, 극기해야 한다. 나 자신을 초월해야 적응할 수 있는 구조. 경계선 지능으로서 복지라는 안락함에서 벗어나 그 냉혹한 구조에 편승한 이상, 되돌아가기는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면접 기행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