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계선은 역설적으로 경계가 없다. 경계란 매우 추상적인 개념으로 '구분'이란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외부와 내부를. 나와 너를. 이쪽과 저쪽을. 하지만, 경계란 구분을 짓는 대상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 구분이 없으면 경계는 없다. 구분은 편의에 의해 나눠진 개념일 뿐이다.
방과 방 밖을 예로 들어보자. 방 안과 방 밖을 구분 짓는 건 문이다. 그러나 어디가 안이고 밖인지는 대상에 따라 다르다. 거실을 기준으로 하면 방 안은 밖이고 방을 기준으로 하면 거실이 밖이다. 하지만 더 큰 집을 기준으로 하면 방 안과 거실은 다 안이다. 집 밖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방과 거실을 모두 집으로 구분하면 거실과 방은 하나의 공간이 된다.
추상적인 개념으로 얘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결국 구분하기 마련이라는 게 경계라는 것이며 구분과 기준은 매우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경계선 지능, 크게 보면 지적 장애 지능과 일반 지능의 경계. 하지만 그 경계는 그저 표준치를 구분한 대상자들의 기준일 뿐이다. 이는 더 크게 보면 지능과 연결되는데 지능은 그저 똑똑함이라는 개념을 수치화한 것일 뿐. 똑똑함은 상대적이다.
경계선 지능에 지능을 한정하지 않으려 한다. 내 가능성은, 나라는 존재의 가치는 수치화될 수 없다. 똑똑함이 상대적인 것처럼 멍청함도 상대적이다. 멍청하다고 하지만 꽤 똑똑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사람마다 잘하는 부분이 다를 뿐이다.
아이큐는 내가 뭘 잘하고 내가 얼마나 노력할 수 있는지, 꿈이 무엇인지를 측정하지 않는다. 사람은 정의하기 나름이다. 내가 꿈이 있고 잘하는 점을 치열하게 찾으려는 의지가 있고 설사 잘하는 게 없다 하더라도 극복할 용기만 있다면, 구분을 다르게 지을 수 있다.
경계선 지능이라고 내 자신을 한정했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줄 알았다. 일부(라고는 하지만 많은 수의) 경계선 지능인들의 글처럼 경계선 지능의 미래는 암담하고 자신은 저주받았으며 삶은 비참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나를 한심한 저지능자로 구분 지었던 시절의 나는 정말로 참담했다. 뭘 해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일상의 대부분을 자기 비하로 소모하며 보냈다. 내 인생은 나락이라는 생각에 현실을 바꾸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당연히 성취는 없었고 실제로 내가 잘하는 분야가 아닌 취업에 유리하다는 분야, 내가 멋지다고 생각한 자격시험만 도전하다 보니 결과는 전부 불합격이었다. 그 불합격으로 나의 신념은 더욱 공고해졌고 다시 포기하고 패배주의로 빠지는 악순환을 겪었다.
나는 그렇게 내 자신이 저지능자, 경계선 지능으로 흔히 정의되는 사회적 프레임에 갇혀 정말로 그런 모습이 되어갔다. 인간관계도 매우 협소했고 자기 관리란 없었다. 그때의 내 모습은 정말 경계선 지능 그 자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깨닫게 됐다. 깨닫지 않은 순간은 기나 깨달음의 순간은 한순간에 찾아온다. 이대로 있다간 정말 도태되고 패배하고 말리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사실은 이렇게 살다간? 하는 두려움이 행동하게 했다. 그렇게 나는 경계선 지능으로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았다.
결과는, 아직 성공이라 판단하긴 이르지만 상당 부분 과거의 내 모습에서는 벗어났다. 과거의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자격증을 두 개나 갖게 됐고(하나는 만료기간이 있는 자격증이지만) 앞으로 내 꿈을 위해 자격시험을 치를 생각이다.
내가 잘하는 것을 찾은 것도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됐다. 최근에 찾은 것인데 나는 필기에 강하다. 국어 시험 같은 독해는 매우 약한데 학습된 정보를 통한 풀이에는 강하다. 이 점을 참고해서 본 최근 자격시험에서 고득점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내적으로 변하니 외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과거에는 내 자신을 내려놓고 살다 보니 외적으로도 관리를 안 했다. 하지만 작년, 복지관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자격증이라고는 불합격 밖에 몰랐던 내게 첫 합격을 선사해 준 바리스타 자격증을 3주 만에 따게 되면서 처음으로 성취의 맛을 봤다. 커피 입문자라면 대부분 딸 수 있는 2급 시험이라도 첫 합격의 영향은 컸다. 그 합격을 계기로 경계선 청년들이 일하는 복지관 카페 내에서 인정을 받으며 자신감도 찾고, 내적으로 자신감을 찾으니 외적으로도 나아지고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꾸미기 시작했고 외적으로 나아지니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일반인 남자친구도 생겨 연애도 잘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안정적인 일자리는 찾지 못한 점에서 남자친구가 내게 미래가 없다며 이별 선고를 했고 이별당했지만, 남자친구 측이 더 좋아했던 연애를 한 것은 사실이었다.
경계를 한정 짓지 않고 내 자신을 다르게 정의하니 변화는 따라왔고 성장했다. 물론 지금도 안정적 일자리는 없지만 진로는 명확해졌고 극복할 자신감도 생겼다. 장기적으로 놓고 내 진로를 위해 하나하나 이뤄나가고 싶다. 무엇보다 은둔형 외톨이 같았고 폐쇄적이었던 생각이 많이 변했고 실제로 달라졌으니 반은 성공한 것이라 하고 싶다.
이 글을 읽는 경계선 지능인들, 또는 경계선 지능 가족이 있는 분들, 아니면 경계선 지능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이 있다면 희망을 얻어가시거나 흥미와 관심을 느끼셨으면 좋겠다.
성공한 건 아니고 시작점이지만 나는 안다. 경계선 지능인들 중에도 경계를 한정하지 않고 성공하신 분들을.
내 글은 경계선 지능으로서 바닥을 친 모습과 경계선 지능으로서 성공한 사람들 사이의 과도기로 봐도 좋을 것 같다. 동기부여만 되어도 너무 좋을 것 같아서 글을 썼다.
마지막으로 방과 거실, 집을 예로 들며 구분에 대해 논한 서두와 연결하여 끝맺으려 한다. 구분은 구분일 뿐이다. 방도 거실도, 안과 밖도, 내가 어디까지로 기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방 안에 있다 해서 안이라고 느낄 것이 아니라 밖이라고 지칭되는 거실과 방을 가르는 문을 열면 된다. 그럼 방 안은 더 이상 안이 아니게 된다. 경계선 지능에서 경계와 지능을 빼버리고 선만 남겨보자. 자신을 하나의 선으로 놓아보자. 그 선은 어디든 뻗어나갈 수 있고 무엇이든 자신의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다.
부디 당신의 구분과 기준이 경계로 한정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