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인이… 중이 될 상인가!!"
산속에 있으니 계절이 바뀌는 게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겨울 내내 앙상하게 버티던 나뭇가지들에 파릇한 것들이 하나둘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오늘, 기념품 샵으로 발령(?)이 났다.
기왓장 판매대에서 기념품 오두막으로. 이쯤 되면 향일암 순환 근무다.
오두막은 진짜 오두막이었다. 절 아래쪽에 나무로 지은 조그만 건물 하나가 뚝하니 서 있는데, 딱 옛날 동화책에서 난쟁이들이 백설공주 기다리며 사는 그 오두막 느낌. 여기서 파는 것들도 아기자기했다. 알록달록한 염주, 향, 명상음악 테이프, 녹차, 마른 산나물…
가게 문을 열자마자 할 일은 딱 하나였다. '산사의 소리' 테이프를 틀고, 창문을 열고, 물건들을 밖에 진열하는 것. 오두막에 은은한 명상음악이 퍼지면 — 오프닝 끝.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커피믹스 한 잔, 율무차 한 잔, 코코아 한 잔… 순서도 없이 그냥 땡기는 거 마시면서 앉아 있었다. 원래 나는 그닥 정적인 사람이 아닌데. 가끔은 이런 시간도 나쁘지 않구나 싶었다.
근데 그것도 한두 시간이지. 스마트폰도 없고 유튜브도 없는 완벽한 아날로그 시대. 결국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책이었다. 오두막에서 책도 몇 권 팔고 있었는데, 나는 역시 본능에 충실하게 — 제일 얇은 책을 골랐다. 류시화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명상음악을 배경으로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가는데… 생각보다 훨씬 빨리 읽어버렸다. 아, 이게 집중이구나. 공부할 때는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그 감각.
류시화 시인은 인도 여행을 이상하리만큼 아름답게 써 내려가고 있었다. 그걸 읽는데, 내 안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그럼 졸업장 없이 이 나라에서 제대로 된 직장을 잡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100미터 달리기로 치면, 친구들은 벌써 저만치 달리고 있는데 나는 아직 출발선에서 신발 끈이나 묶고 있는 꼴이다.
그럼 뭘 해야 따라잡을 수 있을까.
문득 든 생각. '외국어. 요즘은 외국어 하나 제대로 하면 대학 안 나와도 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근데 현실은. 나 돈 한 푼 없다.
우리 집은 IMF 직격탄을 맞은 집이었다. 아버지는 화물 무역업을 하셨는데, IMF 터지면서 기름값은 오르고, 거래처 어음은 전부 바운스 나고, 직원 월급도 못 주다가 결국 화물트럭까지 다 잃으셨다. 그 후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엄마 혼자 셋을 키웠다. 광주 유학도 꿈 못 꿨는데 외국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나는 무조건 나가고 싶었다. 서울도 아니었다. 그냥 외국. 어디든 상관없었다. 무조건 순천만 아니면 됐다. 그래서 스튜어디스가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거였는지도...............
전라남도 순천은 그때 나에게 너무 작고, 너무 갑갑한 곳이었다.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고향...
(근데 지금 캐나다에 살면서 매일 그립다. 동천에 흐드러지게 피던 벚꽃들, 삼산, 그리고 내가 번데기 사 먹던 중앙시장…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류시화 시집을 덮고 나니, 그 마음이 더 활활 타올랐다.
그때, 기도하러 오셨다가 산책 나오신 비구니 스님이 오두막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자연스럽게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스님이 갑자기 나를 빤히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너, 스님 하면 참 잘할 것 같다. 뭔가 강렬함이 있어. 힘든 중생들한테 도움이 되는, 어질고 강한 스님이 될 것 같구나."
그 말을 하시고는, 그냥 또 산책하러 나가셨다.
…어?
젠장. 내가 어릴 적 장래희망이 진짜 천직이었던 건가? 내가 중이 될 상이어서 이렇게 뻘짓을 하고 다닌 건가?
"과인이… 중이 될 상인가!!"
스님 한마디에 하루 종일 머릿속이 '딩~' 하고 울렸다.
'비구니… 비구니라…'
근데 있잖아요,
저 남의 살이란 살은 다 좋아하거든요. 소살, 돼지살, 닭살… 가리는 것도 없어요.
그리고 음악만 나오면 몸이 먼저 반응하고요. 끼가 좀… 과하게 많습니다.
이 길이, 나한테 맞는 길이 맞긴 한 걸까요?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 과연 19살의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향일암 #사회초년생 #잘할 수 있을까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