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돼도 된다더니, 스님이 될 뻔했다 2

그리고 정말로, 한 달을 살았습니다


기왓장 팔던 19살, 향일암에서 한 달을 살아버렸다



팔긴 팔았습니다.

근데... 제가 좀 잘 팔았어요. 헤헤


기왓장 불사 — 가족 이름을 써서 지붕에 올리면 수백 년간 소망이 머문다는 그것. 나는 그걸 파는 사람이 됐습니다."

종무소 스님이 슬쩍 말씀하셨어요.


"너, 마땅한 사람이 없으니까... 기왓장 파는 거 한번 해봐라."

별로 기대하시는 눈치도 아니었습니다. 근데 저는 이상한 사람이에요. 시험 성적이 바닥을 쳐도 화 하나 안 나는데, 오락실에서 스트리트 파이터 지면 눈에 불이 켜지는 타입이거든요. 운동회에서 우리 반이 지거나, 알바하다가 옆 사람보다 뒤처지는 느낌이 들면... 뭔가가 확 끓어오릅니다.

'오늘 기왓장, 10장 이상 팔리라.'

네, 또 시작됐습니다. 혼자서 목표치를 정해버렸어요.


사실 저한테 영업 경험이 아예 없지는 않았습니다. 딱 한 달 전에, 설날 커피 선물세트 단기 알바를 했거든요.

그때 똑같은 병이 발동해서, 일주일치 물량을 5일 만에 다 팔아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쟤 일 잘한다"는 소문이 나서 다른 마트까지 불려 다녔어요.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인서울 대학을 갔을 텐데...ㅋㅋㅋ


살다 보니까요, 저처럼 공부 말고 다른 걸 잘하는 사람도 이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고 살아가더라고요. 그게 얼마나 다행인지.


1997년 당시 향일암은 지금처럼 관광 명소가 아니었습니다. 대중교통도 불편하고, 진짜 산 넘고 물 건너야 닿을 수 있는 곳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첫날 아침부터 기왓장 판매대 앞에 서 있었는데, 두 시간 동안 파리만 날렸습니다.

'에이고... 누가 와야 말이라도 하지.'

플라스틱 의자에 혼자 앉아 멍 때리다가,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쫄래쫄래 공양간으로 갔습니다. 절밥은 왜 그리 맛있는지... 배불리 먹고 올라왔더니, 마침 한 가족이 기왓장 판매대 앞에서 구경하고 계시는 거예요.


냅다 뛰어갔습니다.


"안녕하세요! 가족 이름 쓰고 가세요. 한 장에 온 가족 이름 다 쓰시면 5천 원이에요."


최대한 공손하게, 최대한 방긋 웃으며, 엄마로 보이시는 아주머니를 봤습니다. 그분이 머뭇거리시더니 말씀하셨어요.


"붓글씨를 못 써서요... 여기에 이름이 다 들어가려나..."


저는 1초도 안 되어 대답했습니다.


"글씨체가 무슨 상관이에요! 온 가족 이름이 들어간 것 자체가 부처님 보호받으시는 거죠. 5천 원에 온 식구 평안을 발원하시는 겁니다!"


잠시 침묵.


"... 그래, 여기까지 왔으니까. 한 장 쓰자."


제 생애 첫 기왓장 고객님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속으로 얼마나 쾌재를 불렀는지 모릅니다.


그날 이후 저는 입에 모터라도 단 것처럼 절을 찾는 모든 분들께 기왓장을 권했습니다.

원래 이틀만 있으려고 했던 템플스테이였는데,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 있었어요. 절 식구들한테 칭찬받고, 떡이랑 과일이랑 과자 얻어먹고, 어찌나 풍족하게 지냈는지. 일주일쯤 됐을 때 노보살님 한 분이 절 바지를 건네주시며 말씀하셨어요.


"아가, 이거 입고 편하게 일해라."


아, 나 완전히 여기 직원이 됐구나.


그리고 또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그즈음 기도 하러 오신 비구니 스님 한 분과 자주 마주쳤습니다. 어느 날 그 스님이 조용히 물으셨어요.


"넌 뭐가 되고 싶냐?"


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스튜어디스가 꿈이었어요. 어릴 때 TV에서 아시아나 항공 광고가 나오면 "라라라라랄~" 그 CM송에 이미 비행기 타버리는 느낌이었거든요. 근데 당시 입사 조건이 꽤 까다로웠습니다. 신체검사에서... 몸무게로 이미 탈락이었어요. ㅋㅋㅋ


저는 어릴 때부터 생각이 너무 많은 아이였어요. 뭔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난 안 되겠지"라고 먼저 결론 내리고 포기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스튜어디스 꿈도 그렇게 서랍 속에 넣어버렸고요.


스님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꿈은 있었는데, 이미 포기한 꿈이었으니까요.


내 친구들은 다 4년제 대학에 갔어요. 광주로, 서울로 뿔뿔이 흩어져서 대학 생활을 즐기고 있을 텐데. 일주일에 닷새씩 보던 친구들이 전부 다른 도시로 가버리고, 나는 여기 향일암에서 기왓장이나 팔고 있었습니다. 아무 계획도, 아무 의지도 없이.


나, 이제 19살인데.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 있을까.


그 생각이 채 가시기도 전에, 종무소 스님이 다시 저를 부르셨습니다.


"너, 기념품샵 언니가 일주일 휴가 간다는데... 거기 좀 봐줄래? 용돈 더 챙겨줄게."


그놈의 돈.

불심으로 시작했는데, 결국 용돈 한마디에 또 "네!"를 외치고 말았습니다. 역시 나는 철저한 물질주의자였던 거다. ㅋㅋㅋ


"네! 잘할 수 있습니다!"


대답은 또 0.1초 만에 나왔습니다.


내일은 기념품 가게입니다.


... 나 이러다가 진짜 여기서 한 달 넘게 살겠는데........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휘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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