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암사, 그 밤의 기적
버스 기사 아저씨가 "청암사요!" 외치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튀어 내렸다.
그런데 내리고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표시판도 없고, 사람도 없고, 불빛도 없었다. 그냥 산. 그냥 어둠. 그냥 나.
닫히려는 버스 문을 붙잡고 다시 불렀다.
"아저씨! 표시판도 없고 길도 없어요. 어디로 가야 해요?"
아저씨가 나를 딱 한 번 쳐다봤다. 그 눈빛에는 얘 좀 안 됐다 가 가득했다.
"그니깐, 이 늦은 시간에 청암사는 왜 갈려고… 거기 서 있는 데서 쭉 올라가면 표시판 나올껴~"
그리고 무자비하게 문이 닫혔다. 버스는 먼지만 남기고 사라졌다.
나는 그 먼지를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에라이. 가다 보면 절 같은 게 보이겠지.'
문제는— 산속이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용가리 통뼈 정신으로 무작정 걸어 올라가면서도, 속으로는 관세음보살님을 미친 듯이 부르고 있었다. 걷고 또 걸었다.
그런데 갈림길이 나왔다.
'어디로…? 어디로 가야 되는 거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하염없이 또 불렀다.
"관세음보살님!! 제발 도와주세요! 저 산에서 늑대밥 되기 싫습니다. 오늘 청암사 꼭 가야 합니다. 도. 와. 주. 세. 요!!!!!"
그 사이 산은 완전히 어두워져 버렸다.
자포자기로 왔던 길을 돌아갈까, 한참 고민하고 있는 그 순간—
저쪽 어둠 속에서 갑자기 부스럭 소리가 났다.
'오메… 뭐시여…!'
등산복에 배낭, 등산 스틱까지 챙긴 아저씨 두 분이 산에서 내려오고 계셨다.
'아ㅏㅏㅏㅏㅏ 살았다— 그래, 나 이렇게 절대 안 죽지.'
서울 말씨를 쓰시는 두 분은, 이 밤중에 혼자 산에 있는 나를 보고 적잖이 놀라셨다. 청암사 가는 길을 여쭤보니, 걱정이 되셨는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아주 자세히 알려주셨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어릴 적 내내 스스로를 운도 없고 복도 없는 사람이라 여기며 살았다. 그런데 살아온 날들을 찬찬히 되돌아보면— 나는 늘 이렇게, 꼭 필요한 순간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왔다. 그날 그 갈림길에서도, 관세음보살님이 보내주신 천사 두 분이 나타나 주셨다. 왜 그때는 그 고마움을 몰랐을까. 그 모든 것이 그냥 당연한 일인 줄 알았으니— 참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천사 아저씨들이 알려주신 길을 따라 올라가니, 넓게 펼쳐진 바위 위에 한자가 새겨져 있었다.
靑巖寺 (청암사).
작은 나무다리 하나를 건너야 절로 들어가는 길이 보였다.
드디어. 드디어 도착했다.
그런데— 그 바위 앞에 서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훅 밀려왔다.
'나… 여기 와본 적 있나?'
경상북도는커녕 김천 증산면이라는 이름도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곳인데, 이 다리를 건넜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너무 힘들어서인지, 무사히 도착해서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인지— 나도 몰랐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설명할 수 없는 먹먹함이었다.
완전히 밤이 됐지, 몰골은 꼬질꼬질하지, 그 와중에 배는 미친 듯이 고파오고 있었다.
정신 차리자. 일단 들어가자.
첩첩산중에 이렇게 큰 절이 숨어 있었나 싶을 만큼, 청암사는 제법 큰 사찰이었다.
대웅전 쪽 종무소 앞에서 안을 향해 불렀다.
"저기요— 혹시 안에 누구 계세요?"
아주 자그마한 체구에 오밀조밀하게 생기신 스님이 나오셨다.
"어머, 이 밤중에 무슨 일이신가요? 밖이 차가우니 우선 안으로 들어오세요."
나는 주저 없이 들어가 앉아, 인사도 채 끝내기 전에 바로 말했다.
"스님, 저 스님 되러 왔어요."
스님의 눈이 순간 두 배로 커졌다.
"예?? 예??"
그럴 만도 했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상태였다. 짧은 머리에 노란 단무지— 그게 내 당시 비주얼이었다. 스님이 보시기엔 뭐 이런 것이 스님이 된다고 하셨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외모였다. (지금 생각해도 웃긴다.)
스님은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황급히 전화기를 돌리셨다.
"큰스님, 밤늦게 죄송합니다. 저기 아랫채에 일이 좀 생겼습니다…"
잠시 후.
"어린 학생 한 분이 오셨는데, 스님이 되고 싶다고 하시네요."
전화기 너머에서도, 이쪽 스님도— 동시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네, 알겠습니다. 같이 올라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으신 스님이 나를 보시며 물으셨다.
"학생, 저녁은 먹었어요?"
"아니요. 솔직히 너무 배고파요."
스님이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어른 스님들께 인사드리고, 허락이 내려지면 그때 식사하러 가시죠."
그리고는 빨간 손전등을 딱 켜시며— "따라오세요."
스님 뒤를 졸졸 따라 올라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머릿속엔 오만가지 생각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가서 뭐라 하지… 아 씨, 괜히 왔나… 나 내 인생을 너무 막 던지는 거 아닌가…'
연둥아— 이 고민을 일주일 전에 했어야지.
지금 큰스님들 만나러 올라가는 이 길목에서 하고 있냐고.
진짜 미. 친. 년.
한참 따라 올라가는데, 저 멀리서 허연 무언가가 훅 튀어나왔다.
'저건 뭐여!!!!!'
다리가 엄청 길고, 잘생긴 하얀 진돗개였다. 이 절에서 키우는 녀석이었다.
"아, 설타 왔네!" 스님이 반기셨다.
설타는 나를 빙빙 돌며 온몸으로 냄새를 맡아댔다.
"너 꽤 잘생겼다."
쿨하게 한 번 쳐다보더니, 설타는 어디론가 뛰어가버렸다.
반갑다, 설타야.
드디어 어른 스님들의 처소 앞에 다다랐다.
종무소 스님이 조심스럽게 여쭸다.
"스님, 저 무진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그래— 들어오너라."
그 문 너머에서, 내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