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암사 가는 길 — 버스는 떠나고, 나는 뛰었다
순천에서 첫차를 탔다. 설레는 마음 반, 무모한 용기 반. 19년 인생에 가장 멀리 가본 곳이 부산과 울산이었으니, 그보다 북쪽으로 올라가는 건 내 생애 첫 '원정'이었다.
겨우 대구에 도착해 예매 창구로 달려갔다.
"김천 가는 표 한 장 주세요."
창구 직원이 나를 위아래로 한번 훑더니 말했다.
"여긴 차 없어요. 북부 터미널로 가세요."
…뭐시기?
내가 내린 곳은 서대구 터미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구엔 터미널이 무려 세 개였다. 순천에서만 살던 나는, 터미널이란 건 도시에 하나뿐인 줄만 알았다. 대구가 그렇게 큰 도시인 줄, 정말 몰랐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오늘 안에 청암사 가야 하는데… 수중엔 딱 8만 원뿐인데…
지나가는 운전기사 아저씨를 붙잡고 북부 터미널 가는 버스 노선을 물었다. 아저씨가 친절히 알려줬지만, 이미 멍해진 머리 위로 대구 사투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 하나도 못 알아 듣겠는디.
에라, 모르겠다. 택시 타자.
버스 노선 헤매다 시간 놓칠 바엔, 그냥 택시. 결단은 빨랐다. 다행히 북부 터미널은 15분 거리였다.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창구 앞으로 뛰어갔다.
"무조건 다음 김천 가는 거 한 장이요!"
친절한 언니가 말했다. "지금 차 한 대 아직 출발 안 했어요, 뛰면 탈 수 있어요!"
돈을 창구에 던지다시피 내밀고, 표를 쥐고, 플랫폼으로 또 뛰었다. 버스는 문을 닫고 막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아저씨—! 저 태워 주세요—!"
문을 두드리는 내 손이 떨렸다. (사실 다음 버스를 타도 됐지만, 그런 상식은 그때의 나에게 없었다.)
아저씨가 문을 열며 한마디 했다.
"와 이리 힘들게 뛰어오노… 그냥 걸어와도 기다려줬을 텐데. 어여 타거라."
아, 진짜. 그 한 마디에 눈물이 날 뻔했다.
드디어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바라봤다. 처음 보는 대도시 대구의 풍경이 스쳐갔다.
버스가 분식 포장마차 앞을 지나칠 때였다.
아… 나 아침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 먹었구나.
긴장의 끈이 풀리자마자, 배에서 신호가 왔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고. 그리고 스르륵, 잠이 들었다.
사람들이 내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다행히 김천 공용 터미널이었다. 김천은 순천이랑 비슷한 느낌의, 정감 있는 곳이었다.
또 아저씨를 붙잡았다.
"아저씨, 증산면 청암사 가려는데요, 몇 번 버스예요?"
"거기는 하루에 딱 세 대밖에 없어. 마지막 버스 저기 880번인데, 저거 지금 출발한다."
저 멀리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전라도 사투리가 터져 나왔다.
"오메, 오메, 오메—! 안 된디, 나 저거 타야 된디—!"
그리고 또, 뛰었다.
오늘 하루 종일 공복에 뛰기만 하는 인생이 됐다.
버스 옆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달리는 내 모습은, 영락없이 로맨스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주인공은 나인데, 낭만은 없었다.
역시 시골 인심은 다르다. 기사 아저씨가 차를 세워 주셨다.
"어디까지 가는데 이리 난리고~" "청암사요." "…이 시간에 도착하면 밤인데, 무섭게 산을 어떻게 올라가려고."
'헉. 청암사가… 산속에 있었던 거여?'
버스에서 걸어서 5분이면 있는 절인 줄 알았다. 완전히 착각이었다. 이제 와서 내릴 수도 없었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버스 안은 시골 장터 분위기였다. 보자기에 닭을 안고 가시는 할매, 박스째 짐을 쌓아 놓고 방언으로 한바탕 이야기 중이신 할매. 나는 맨 뒷자리 구석에 조용히 끼어 앉았다.
그때, 한 할매가 삶은 고구마를 꺼내 이 사람 저 사람 나눠 주셨다. 또 다른 할매는 장에서 샀다며 삼배과자를 내놓고. 버스 안이 왁자지껄,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그 할매가 나한테도 말을 건네셨다.
"니도 이리 온나. 고구마 하나 먹어라."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넵!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그리고 제일 큰 걸로 골랐다.
세상에, 그 고구마 맛이란.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은 채로 온종일 뛰어다닌 사람이 먹는 첫 입의 그 달콤함이란—지금까지도 그보다 맛있는 고구마를 먹어본 적이 없다.
고구마도 한 개 더 얻어먹고, 삼배과자도 얻어먹고.
그러는 사이, 할매들은 한 분씩, 자기 동네에서 내리셨다. 버스 정류장 표지판도 없는 깡촌 길 위에서, 기사 아저씨가 알아서 딱 멈추면 할매들은 알아서 짐을 챙겨 내리셨다. 내리면서도 인사가 한참이었다.
"민아 할매요~ 우리 출발해야 한께 얼른 내리소~"
할매 한 분이 내리실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스산해졌다. 오늘 처음 본 분들인데. 고구마 두 개 얻어먹었을 뿐인데.
왜일까. 어쩌면 그 버스 안이,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공간이었기 때문일지도.
어느덧 1시간 반이 지났다. 산 속이라 5시도 안 됐는데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버스에 남은 사람은 나 포함 단 두 명.
그리고 기사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학생, 청암사야. 여기서 내려."
내가 내린 곳은..............................................
아무것도 없는 산길이었다. 표지판도 없었다. 이정표도 없었다. 그리고 사방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 나, 과연 오늘 안에 청암사에 도착은 할 수 있을까??............................................................
— 다음 편에 계속 —
(나는 과연 산길을 잘 걸어서, 과연 청암사에 오늘 안에 도착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