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돼도 된다더니, 스님이 될 뻔했다 5

청암사 가는 길 — 버스는 떠나고, 나는 뛰었다

"대구에 터미널이 세 개라고요?"

순천에서 첫차를 탔다. 설레는 마음 반, 무모한 용기 반. 19년 인생에 가장 멀리 가본 곳이 부산과 울산이었으니, 그보다 북쪽으로 올라가는 건 내 생애 첫 '원정'이었다.

겨우 대구에 도착해 예매 창구로 달려갔다.

"김천 가는 표 한 장 주세요."

창구 직원이 나를 위아래로 한번 훑더니 말했다.

"여긴 차 없어요. 북부 터미널로 가세요."

…뭐시기?

내가 내린 곳은 서대구 터미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구엔 터미널이 무려 세 개였다. 순천에서만 살던 나는, 터미널이란 건 도시에 하나뿐인 줄만 알았다. 대구가 그렇게 큰 도시인 줄, 정말 몰랐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오늘 안에 청암사 가야 하는데… 수중엔 딱 8만 원뿐인데…


전라도 촌년, 대구에서 택시를 잡다

지나가는 운전기사 아저씨를 붙잡고 북부 터미널 가는 버스 노선을 물었다. 아저씨가 친절히 알려줬지만, 이미 멍해진 머리 위로 대구 사투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 하나도 못 알아 듣겠는디.

에라, 모르겠다. 택시 타자.

버스 노선 헤매다 시간 놓칠 바엔, 그냥 택시. 결단은 빨랐다. 다행히 북부 터미널은 15분 거리였다.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창구 앞으로 뛰어갔다.

"무조건 다음 김천 가는 거 한 장이요!"

친절한 언니가 말했다. "지금 차 한 대 아직 출발 안 했어요, 뛰면 탈 수 있어요!"

돈을 창구에 던지다시피 내밀고, 표를 쥐고, 플랫폼으로 또 뛰었다. 버스는 문을 닫고 막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아저씨—! 저 태워 주세요—!"

문을 두드리는 내 손이 떨렸다. (사실 다음 버스를 타도 됐지만, 그런 상식은 그때의 나에게 없었다.)

아저씨가 문을 열며 한마디 했다.

"와 이리 힘들게 뛰어오노… 그냥 걸어와도 기다려줬을 텐데. 어여 타거라."

아, 진짜. 그 한 마디에 눈물이 날 뻔했다.


배고픔도 잊고 달려온 자에게 찾아온 것

드디어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바라봤다. 처음 보는 대도시 대구의 풍경이 스쳐갔다.

버스가 분식 포장마차 앞을 지나칠 때였다.

아… 나 아침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 먹었구나.

긴장의 끈이 풀리자마자, 배에서 신호가 왔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고. 그리고 스르륵, 잠이 들었다.


김천에서도, 나는 또 뛰었다

사람들이 내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다행히 김천 공용 터미널이었다. 김천은 순천이랑 비슷한 느낌의, 정감 있는 곳이었다.

또 아저씨를 붙잡았다.

"아저씨, 증산면 청암사 가려는데요, 몇 번 버스예요?"

"거기는 하루에 딱 세 대밖에 없어. 마지막 버스 저기 880번인데, 저거 지금 출발한다."

저 멀리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전라도 사투리가 터져 나왔다.

"오메, 오메, 오메—! 안 된디, 나 저거 타야 된디—!"

그리고 또, 뛰었다.

오늘 하루 종일 공복에 뛰기만 하는 인생이 됐다.

버스 옆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달리는 내 모습은, 영락없이 로맨스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주인공은 나인데, 낭만은 없었다.

역시 시골 인심은 다르다. 기사 아저씨가 차를 세워 주셨다.

"어디까지 가는데 이리 난리고~" "청암사요." "…이 시간에 도착하면 밤인데, 무섭게 산을 어떻게 올라가려고."

'헉. 청암사가… 산속에 있었던 거여?'

버스에서 걸어서 5분이면 있는 절인 줄 알았다. 완전히 착각이었다. 이제 와서 내릴 수도 없었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버스 안의 할매들, 삶은 고구마, 그리고 스산함

버스 안은 시골 장터 분위기였다. 보자기에 닭을 안고 가시는 할매, 박스째 짐을 쌓아 놓고 방언으로 한바탕 이야기 중이신 할매. 나는 맨 뒷자리 구석에 조용히 끼어 앉았다.

그때, 한 할매가 삶은 고구마를 꺼내 이 사람 저 사람 나눠 주셨다. 또 다른 할매는 장에서 샀다며 삼배과자를 내놓고. 버스 안이 왁자지껄,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그 할매가 나한테도 말을 건네셨다.

"니도 이리 온나. 고구마 하나 먹어라."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넵!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그리고 제일 큰 걸로 골랐다.

세상에, 그 고구마 맛이란.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은 채로 온종일 뛰어다닌 사람이 먹는 첫 입의 그 달콤함이란—지금까지도 그보다 맛있는 고구마를 먹어본 적이 없다.

고구마도 한 개 더 얻어먹고, 삼배과자도 얻어먹고.

그러는 사이, 할매들은 한 분씩, 자기 동네에서 내리셨다. 버스 정류장 표지판도 없는 깡촌 길 위에서, 기사 아저씨가 알아서 딱 멈추면 할매들은 알아서 짐을 챙겨 내리셨다. 내리면서도 인사가 한참이었다.

"민아 할매요~ 우리 출발해야 한께 얼른 내리소~"

할매 한 분이 내리실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스산해졌다. 오늘 처음 본 분들인데. 고구마 두 개 얻어먹었을 뿐인데.

왜일까. 어쩌면 그 버스 안이,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공간이었기 때문일지도.


어둠 속, 아무것도 없는 산길

어느덧 1시간 반이 지났다. 산 속이라 5시도 안 됐는데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버스에 남은 사람은 나 포함 단 두 명.

그리고 기사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학생, 청암사야. 여기서 내려."

내가 내린 곳은..............................................

아무것도 없는 산길이었다. 표지판도 없었다. 이정표도 없었다. 그리고 사방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 나, 과연 오늘 안에 청암사에 도착은 할 수 있을까??............................................................


— 다음 편에 계속 —

(나는 과연 산길을 잘 걸어서, 과연 청암사에 오늘 안에 도착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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