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라기눈 맞으며 면접 보러 간 날
그래서 반에서 좀 친하다 싶은 친구 두 명을 꼬드겼다. (지금은 벌써 고등학생 엄마들이 되어버린 그 아이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익명으로 하겠다.) 바로 은봉이와 선자. 이 둘에게 나는 현란한 말솜씨로 '사바사바'를 시작했다. 내가 비록 공부는 못했어도 입 하나는 살아서 말발이 꽤 셌거든.
(은봉이는 꽤 잘 사는 집 딸이라 목욕탕 청소 같은 건 꿈에도 안 꿔봤을 애였고, 선자는 워낙 ‘공주병’에 이쁜 척하는 스타일이라 이런 험한 일을 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을 거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엄청난 ‘뻐꾸기’를 날리기 시작했다.)
"야, 고등학교 추억이 평생 가는 거야! 우리 셋이서 땀 흘려 일하고, 그 돈으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이런 추억이 어딨어? 이게 바로 진짜 찐친 아니야?"
계속해서 감성 팔이를 하며 꼬셨다. 여하튼, 내 현란한 가스라이팅에 넘어온 이 순진한 것들이 “그럼... 같이 한번 해볼까?” 하며 낚여버렸다.
드디어 면접 시간. 우리 셋은 터벅터벅 싸라기눈을 맞으며 ‘보금온천’으로 향했다. 당시 순천은 워낙 좁은 동네라 이 정도 사이즈면 꽤 고급스러운 목욕탕으로 평이 나 있었다. 우리 엄마랑 같이 몇 번 가본 덕에 내부 구조는 훤히 꿰고 있었다. 온탕 3개, 사우나 2개, 그리고 수영장만 한 냉탕이 있는 꽤 크고 세련된 곳이었다.
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가니 안내소 구멍으로 아줌마가 얼굴을 쏙 내밀며 물었다.
“몇 명이야?”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저희 목욕하러 온 게 아니라, 아까 전화드린 청소 알바 면접하러 왔어요!”
그러자 안내소 옆 문이 ‘팍’ 열렸다. 들어오라는 손짓에 우리 셋은 어색하게 삐죽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세상에, 그 좁은 방에 아줌마 두 분이 앉아 계시는 게 아닌가. 거기에 우리 셋까지 들어가니 방이 터져 나갈 것 같았다. 젊은 아줌마가 우리를 훑어보며 물었다.
첫 면접이라 그런지 우리 셋 다 잔뜩 쫄아 있었다. 특히 우리 ‘공주님’ 은봉이와 선자는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그때,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천재적인’ 드립이 튀어나왔다.
“저... 사실 곧 엄마 생신이 다가오거든요. 알바해서 돈 모아가지고 엄마 생신 선물 꼭 사드리고 싶어서요.”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그때부터 임기응변의 달인이었던 모양이다. 내 말을 듣던 나이 지긋한 아줌마가 감동한 눈빛으로 외치셨다.
“오메! 어린것들이 참말로 기특하네!”
실은 매점에서 ‘플렉스’ 하려고 온 건데... 양심에 좀 찔렸지만 뭐 어떠랴! 결과만 좋으면 됐지! 아줌마는 당장 안에 들어가서 ‘때밀이’ 아줌마들하고 인사하고 내일부터 일할 수 있는지 물어보라고 하셨다. 나는 씩씩하게 “네, 할 수 있습니다!”라고 외쳤고, 옆에 있던 은봉이와 선자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 네”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입성한 목욕탕 안. 거기서 운명의 ‘때밀이 아줌마’ 두 분을 만났다. 한 분은 빨간색 속옷 차림, 다른 한 분은 진한 꽃분홍색 속옷 차림이셨다. (여탕 세신사 아줌마들의 국룰 패션이다.) 편의상 ‘빨강 아줌마’와 ‘분홍 아줌마’라고 부르겠다. 이 두 분이 우리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물으셨다.
“너희들, 진짜 이 일 할 수 있겠어?”
나는 패기 있게 대답했다. “네! 잘할 수 있어요!”
아줌마들은 냉장고에서 바나나 우유 세 개를 꺼내 주시며 말씀하셨다.
“내일 밤 8시 30분까지 와라. 준비물은 우리처럼 속옷만 입든, 반바지를 챙겨 오든 일할 때 입을 옷 가져오고!”
밖으로 나온 우리 셋은 쌀쌀한 밤공기를 마시며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선자가 불안한 듯 물었다.
“야... 우리 진짜 이거 할 수 있을까?”
나는 망설임 없이 딱 잘라 말했다.
“야!! 우리 날마다 공짜로 사우나랑 목욕할 수 있는 거야! 냉탕에서 수영도 하고, 정말 좋지?”
친구들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바나나 우유를 손에 쥔 채, 우리 셋은 내일을 향해 걸었다.
과연 이 셋은 무사히 첫 청소를 마칠 수 있을까?
3화에서 계속됩니다. 굿나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