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 나는 목욕탕으로 출근했다 — 3화

밀키스 한 캔과 3,100원의 노동경제학

드디어 첫 출근날.

은봉이와 선자, 그리고 나. 우리 삼총사는 각자 비장하게 준비물을 챙겨 보금온천으로 향했다. 선배님들처럼 속옷 차림으로 활보할 용기는 없었기에, 나름의 타협점을 찾았다. 검정 나시에 반바지.

여탕 입구에서 젊은 사장님과 딱 마주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건물주 며느리였다. 역시 포스가 남달랐다.) 그분의 첫마디는 짧고 굵었다.

"진짜 왔네? 들어가 봐라."

그렇게 발을 들인 여탕 안. 우리의 사수 빨강 아줌마와 분홍 아줌마는 오늘도 그 현란한 유니폼을 장착하고 계셨다. 속으로 생각했다.

'저건 이 바닥의 진정한 고인 물만이 소화할 수 있는 유니폼이구나.'


바가지 100개와 'Who am I?'

본격적인 청소 시작.

그런데 웬걸. 기억보다 목욕탕이 훨씬 넓었다. 젠장.

영업 종료 전이라 사우나 바닥 소금기부터 닦으라는 미션이 떨어졌다. 은봉이와 선자는 소금 사우나로, 나는 화장실로 흩어졌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바가지 100개. 플라스틱 의자 수십 개.

"이걸 다... 닦아야 해요?"

아줌마들은 온탕에 바가지와 의자를 전부 때려 넣고 수세미로 닦으라 하셨다. 살다 살다 목욕탕 바가지를 일일이 닦는 광경은 처음이었다. 대략 100개는 족히 넘어 보이는 그것들이 내 앞에 산처럼 쌓여 있었다.

옆을 힐끗 보니, 은봉이와 선자의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은 상태였다. 그들의 표정이 말하고 있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이대로 뒀다간 내일부터 둘 다 안 나올 게 뻔했다. 나는 총대를 멨다.

"야, 너희는 쉬엄쉬엄해. 내가 다 할게."

공부는 꼴찌였어도 청소만큼은 1등이었던 나. 미친 속도로 수세미질을 시작했다. 온탕 물을 빼고 바닥을 빡빡 문지르며, 땀인지 수증기인지 모를 액체에 흠뻑 젖어갈 즈음 — 아줌마의 쐐기포가 날아왔다.

"냉탕은 3일에 한 번씩 물 갈고 다 닦아야 한다~"

저 광활한 냉탕을. 3일마다.

나는 속으로만 외쳤다. '얘들아, 제발 안 나온다는 말만은 하지 마줘.'


1995년판 레버리지의 희생양들

3시간을 꼬박 닦고 문지르고 나서야 청소가 끝났다.

그리고 찾아온 정산 시간.

원래 한 명 급여인데 셋이 왔으니 알아서 나누라는 것이었다.


〔 1995년 보금온천 급여 명세서 〕

청소 인원 1인 기준 급여 ···· 12,000원

실제 투입 인원 ················ 3명

1인당 지급액 ·················· 4,000원

왕복 버스비 (450원 × 2) ···· 900원

실수령액 ······················ 3,100원

야간 수당 없음 | 노동강도 무시 | 청춘 소진 별도


"아!! 그럼 첫날에 미리 말을 해주든가!!"

물론 속으로만 했다.

1995년 고등학생 버스비가 450원. 왕복 900원 쓰고 손에 쥐는 돈이 3,100원. 그래도 그때는 그게 어딘가 싶었다. 내 손으로 직접 번 돈이었으니까.

지금 와서 생각하면 — 솔직히 좀 멍청했다. 시간당 노동강도, 심야 수당, 최저임금 같은 개념을 알 나이가 아니었으니까. 우리가 좀 머뭇거리자, 영악한 아줌마들이 한마디 더 얹으셨다.

"하루에 마시고 싶은 거 딱 하나씩만 골라 먹어라!"

그 말에 내 귀가 번쩍 열렸다.


"야, 나는 밀키스로!"


캔을 따는 순간, 머릿속에 주윤발 오라버니가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하얀 탄산 거품 위로 들리는 환청 — "싸랑해요, 밀키스!" 3시간의 노동이 우유 맛 탄산 한 모금에 싹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빨강 아줌마와 분홍 아줌마는, 밀키스 한 캔으로 고딩 셋의 노동력을 사는 레버리지의 달인들이셨다. 원래 목욕탕 청소는 세신사 아줌마들 몫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하루 종일 때를 밀고 나면 청소까지 하기가 너무 힘드셨던 것. 그래서 청소만 해줄 사람을 따로 구하셨는데 — 세상 물정 모르는 고딩 셋이 딱 걸려든 거다.

1995년에 이미 레버리지를 마스터하신 두 분. 지금 생각해도 진짜 대단하시다.


엄마의 등짝 스매싱 1초 전

3시간 청소를 마치니 막차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은봉이와 선자는 목욕탕 근처에 살아서 걸어서 가면 그만이었지만, 나는 좀 멀었다. 열라게 뛰어서 막차를 겨우 잡아탔다.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 집은 그렇게 엄격한 편은 아니었다. 무사히 들어오기만 하면 되는 분위기. 괜찮겠지, 하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밤 11시에 들어온 막둥이. 얼굴은 벌겋고, 머리는 젖어 있고.

그 꼴을 보신 엄마가 나를 천천히 돌아보셨다.

"니 이리 와봐. 이 시간까지 어디를 싸돌아 댕기다 왔어. 머리는 왜 젖어 있어? 수영이라도 하고 온 것도 아니고... 니, 뭐여?"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왐마— 나 오늘 디지는 겨!!!!!'

과연 그날 밤, 살아남았을까?


휘리릭 ~~~


4화에서 계속됩니다. 굿나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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