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 나는 목욕탕으로 출근했다 — 4화

젖은 머리카락과, 하필이면 그 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이 시간에 머리는 왜 젖어서 들어와?"

찰나의 순간,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뭐라고 해야 하지. 뭐가 제일 그럴듯할까.

"어… 은봉이 집에서 공부하다가 머리를 한 3일을 못 감았더니 너무 가려워서, 거기서 감고 왔어."

말해놓고 나서 나도 어이가 없었다. 진짜 어처구니없는 대답이었다. 그런데 웃긴 건, 엄마도 그걸 아셨던 것 같다는 거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니가 은봉이 집에서 공부를 하다 왔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그 말을 끝으로 화장실 문이 닫혔다.

휴. 살았다.

속으로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모른다. 우리 엄마 성격에, 내가 밤마다 목욕탕 청소를 하고 다닌다는 걸 알았다면? 그냥 혼나는 게 아니라 진짜로 반으로 쪼개졌을 거다.

박 여사, 그날 눈 감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싸랑흐요.


나 혼자 저 큰 목욕탕을 어떻게 닦아

다음 날 저녁, 나는 좀 일찍 목욕탕으로 나섰다.

어릴 때부터 안개 사우나를 좋아했다. 일 시작 전에 사우나도 하고, 찬물에 몸도 한 번 담그고 싶었다. 그게 나한테는 일종의 낙이었으니까.

그런데 선자만 와 있었다. 은봉이가 없었다.

혹시나 싶어 은봉이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우리 귀하신 은봉이, 감기로 드러누우셨단다. 어제 그 고생이 탈이 났나 보다. 솔직히 나도 밤새 온몸이 쑤시긴 했으니까.

그래도 선자가 와줘서 천만다행이었다. 둘이서도 빠듯한데, 나 혼자 저 큰 목욕탕을 어떻게 닦는단 말이야.

그런데 오히려 좋은 점이 생겼다. 오늘은 둘이서 일하니까 6,000원씩이다.

'앗싸! 내일 짜장면 사 먹어야지. 헤헤.'


그때 나, 진짜 식성이 장난이 아니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다. 다른 십 대 소녀들 같은 풋풋함 같은 건 없었고, 겉늙어 보이는 여고생이었다. 이쁘다거나 날씬하다는 소리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다. 그런 말을 기대할 자아가 나한테는 없었다.

얼마나 먹었냐고? 교복 치마 훅이 터져 나갈 정도였으니까. 그것도 남의 것 물려받은 교복이었는데. 새로 맞출 형편도 안 됐고, 엄마한테 말조차 꺼낸 적 없었다. 그냥 조용히 핀으로 고정하고 다녔다.

그때는 그게 너무 창피했다. 모두가 나를 아래위로 저울질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알겠더라. 그 시절의 그 경험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이 캐나다 토론토에서 버텨내지 못했을 거라는 걸. 불평하고, 탓하고, '왜 난 이러고 살아야 하지'만 되뇌는 어른이 됐을 거라는 걸. 그 수많은 값진 뻘짓들이 나를 진짜 어른으로 키워낸 가장 귀중한 수업이었다는 사실을.

물론, 그걸 깨달은 건 서른 중반이 다 돼서였지만.


하필이면, 그 애

며칠 뒤 은봉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자기는 이 일 계속 못 하겠다고. 아버지가 엄한 편인데, 늦게 들어온 날 감기까지 걸리니 당분간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거다.

어쩔 수 없었다. 나랑 선자, 둘이서 계속 가야 했다.

괜히 선자까지 그만둔다고 할까 봐, 나는 속으로 은봉이 몫까지 더 열심히 했다. 티는 안 냈지만.

그날도 탕 안에 아직 손님들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사람 없는 쪽부터 먼저 치우기 시작했다. 나는 큰 거울에 비누칠을 하면서 박박 닦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연둥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엄마 친구? 아는 어른? 젠장, 큰일 났다.

고개를 돌렸더니 — 우리 반 진희가 서 있었다.

하필이면. 우리 반에서 입 싸기로 유명한 그 정자가.

정자는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물었다.

"야! 너 여기서 뭐 하냐? 목욕하는 건 아닌 것 같고…?"

속으론 이랬다. '보면 모르냐, 이 눈 깔아. 청소하잖아.'

하지만 겉으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얼버무리고 있는데, 때마침 사우나 청소를 마친 선자가 문을 열고 나오면서 말했다.

"야, 너 거울 다 닦았어?"

그 순간.

진희의 눈이 나와 선자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선자도 얼었다.

나도 얼었다.

반에 소문나면 안 되는데…

젠장.


입 싼 진희는 과연 입을 열었을까, 다물었을까.


5화에서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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