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는 뭐가 돼도 되겠다”
"정자야! 너 이 동네 살았어? 몰랐네. 근데 이 늦은 시간에 목욕탕을 왜 혼자 와?"
"응~ 나 가끔 이 시간에 혼자 와."
나중에 알고 보니 정자는 코카콜라 중독이 꽤 심했다. 부모님이 어찌나 강하게 막으시던지. 근데 이 영악한 녀석, 목욕탕 온다는 핑계로 콜라를 실컷 사 마시고 있었던 거다. 우리 둘 다 제 나름의 작전이 있었던 셈이랄까.
"여하튼, 너네 목욕탕 청소하냐?"
뭐 어때. 죄지은 것도 아니고. 그냥 말하지 뭐.
"응, 오래는 아니고 며칠만 하는 거야. 그나저나 반 애들한테는 말하지 말아 줘."
"걱정 마! 나 이런 이야기 막 하는 애 아니야."
속으론 이랬다. '염병. 우리 반에서 입 가볍기로 소문난 게 바로 너잖아.'
"헤헤헤. 니만 믿을게."
정자는 환하게 웃으며 나가다가 돌아서더니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근데 너네는 왜 빨간 속옷 입고 청소 안 하냐? ㅋㅋㅋ 여하튼 대단하다, 진짜. 개학하고 보자!"
콜라캔 하나를 손에 쥔 채 유유히 사라졌다.
나랑 선자는 구석으로 가 얼굴을 맞대고 작게 물었다.
"저 애 말 할 것 같아? 안 할 것 같아?"
"100% 한다. 오늘 6,000원 건다."
……그래. 그럴 것 같다.
하, 나의 고2 겨울방학이여.
오늘은 드디어 냉탕 물 빼는 날이었다.
수영장만 한 냉탕 물이 빠지는 데만 꼬박 두 시간. 겨우 발목까지 물이 빠질 즈음, 빨강 아줌마가 긴 막대 솔을 건네며 말씀하셨다.
"여기 들어가서 바닥이랑 벽 박박 청소해라."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시간 안에 집에 갈 수 있긴 한 거야?'
2026년 노동법으로 보자면 이건 엄연한 오버타임이고, 11시가 넘으면 교통비도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1995년엔 달랐다. 어른이 시키는 일에 토 다는 거 아니고, 따지지도 말라는 묵은 관습이 있었으니까. 지금 같았으면 그 긴 막대 솔을 저팔계 삼지창 돌리듯 빙빙 돌려 벽에 꽂아버리고 나왔을 텐데. 그때는 그냥, 마냥 순진했다. 어른은 어른이었으니까.
둘이서 그 냉탕을 박박 문질러 닦고 있는데, 선자가 갑자기 나를 보며 말했다.
"야, 실은 나도 오늘까지만 하고 그만할래. 몸도 너무 힘들고, 울 엄마도 늦게 들어온다고 난리야."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같이 좀 더 하자고 조르는 것도 이상하고, 그렇다고 혼자 이 먼 곳에 와서 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래도 쿨한 척 대답했다.
"그래! 알겠어. 난 괜찮으니까 편할 대로 해."
실은 — 하나도 안 괜찮았다.
그날 유난히, 정말 유난히 몸이 힘들었다.
3일 연속 청소를 하고 나니 겨울밤 공기는 차갑고, 머리카락은 또 젖어 있었다. 혼자 터벅터벅 버스 정류장으로 걷는데, 갑자기 서러워졌다.
엄마한테 손 안 벌리고, 내가 조금이라도 벌어서 먹고 싶은 거 사 먹으려 했는데. 이것마저도 내 맘대로 안 되네. 젠장.
우리 엄마는 혼자서 딸 셋을 키우셨다. 내가 중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전라도 엄마들 특유의 징하게 강하고 질긴 정신력으로 혼자 우리 셋을 먹이고 키우셨다.
나는 이상하게 엄마한테 항상 미안했다. 공부 못한 것도, 밥 많이 먹는 것도, 다른 집 십 대 딸들처럼 여리고 가냘프지 않은 것도 미안했다. 그래서 뭐라도 하고 싶었던 거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엄마를 진짜 기쁘게 해 드리는 건 코피 터지게 공부해서 좋은 성적 받아오는 거였는데. 그땐 어렸다. 많이 어렸다. 엄마한테 손만 안 벌리면, 그것만으로도 엄마가 좋아해 주실 거라 생각했다.
집에 도착하니 12시가 다 되어갔다. 엄마는 아직 일에서 안 들어오셨고, 언니들은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어 집엔 엄마랑 나 단둘이었다.
3일 동안 일해서 번 돈, 고작 15,500원. 차비 빼고, 짜장면 사 먹고, 길거리 떡볶이에 오뎅 먹고, 슈퍼에서 과자 몇 개 사고 나니 수중에 겨우 2,500원이 남았다.
그렇게 열나게 일하고 남은 게 2,500원이라니. 내 경제관념이 진심 꽝이었던 거지.
거실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다 스르륵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 날. 은봉이도 선자도 오지 않는 목욕탕에 혼자 갔다.
빨강 아줌마, 분홍 아줌마께 사정 이야기를 드리고 혼자라도 계속 일해도 되냐고 여쭤봤다.
"혼자는 힘들어서 못 해."
"그럼 아줌마들이 저랑 같이 하시면 되잖아요."
"아가, 우리는 하루 종일 때 밀고 나면 너무 힘들어서 청소까지는 도저히 못 해. 오늘은 셋이 하고, 우리는 다른 사람 찾아봐야겠다."
솔직히 서운했다. 그때는.
지금 내가 마흔 후반인데, 돌이켜보면 그때 그분들 연세가 아마 사십 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나도 살면서 참 많은 종류의 일을 해봤다. 몸이 망가지는 게 느껴질 만큼 힘들고 빡센 일들을. 그런데 그분들은 하루 종일 열 명 가까운 사람들 세신을 하고, 그 넓은 곳을 청소까지 하셨으니. 그때는 서운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분들이 진짜 대단한 거다. 일주일에 6일을, 그 강도로. 그게 엄마들의 힘이 아니겠어.
어쨌든 일은 끝났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오늘이 보금온천에서의 마지막 날이 된 거다.
그런데 뜻밖에도, 두 분이 만 원씩을 쥐여 주시는 거다. 이만 원.
"엉, 돈이 너무 많은데요……"
두 분이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학생인데 이런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하려 하고, 또 열심히 해줘서. 큰돈은 아니어도 맛있는 거 사 먹어라. 니는 나중에 뭐가 돼도 되겠다."
그 말이.
내 인생 평생의 모토가 되어버렸다.
살아오면서 힘들 때마다 그 말을 떠올린다. 그래, 난 뭐가 될지 나도 모른다. 근데, 뭐가 돼도 될 것이다.
따뜻한 목욕탕 수증기 냄새가 밴 만 원짜리 두 장. 그게 그냥 돈이 아니었다. 열일곱 살의 나한테 건네진, 생전 처음 받아본 진심 어린 격려였다.
집에 오니 그날은 엄마가 먼저 와 계셨다.
받은 이만 원 중에 만 원을 그냥 드렸다. 엄마가 무슨 돈이냐고 물어보시길래, 3일 동안 있었던 일을 주저리주저리 다 털어놨더니 — 엄마가 얼마나 박장대소를 하시던지.
아, 놔. 괜히 말했다.
그 후로 언니들한테도 다 퍼지고, 친척들한테까지. 우리 엄마 진짜……이 씨.
그 이후로 언니들은 야한 속옷 세트만 보면 어김없이 한 마디씩 한다.
"연둥아! 이거 사줄까? 입고 청소하러 가자~"
짧고도 강렬했던 나의 첫 알바.
그 어느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1995년 순천 보금온천에서의 겨울방학.
지금은 너무 귀하고 값진 이야기가 되어서, 떠올릴 때마다 웃으면서 자랑처럼 꺼내 놓는다.
난 첫 알바가 목욕탕 청소야! 죽이제………?
그리고 이건, 긴 이야기의 시작일 뿐이다.
고등학교 졸업장도 채 마르기 전, 이 연둥이는 돌연 비구니가 되겠다며 산속 절로 들어간다.
파란만장한 스무 살의 서막 — 다음 시리즈에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