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 나는 목욕탕으로 출근했다 — 5화

“니는 뭐가 돼도 되겠다”


선자랑 나, 둘 다 너무 놀랐지만 어떻게든 정자를 빨리 내보내야 했다. 청소는 끝내야 하니까.


"정자야! 너 이 동네 살았어? 몰랐네. 근데 이 늦은 시간에 목욕탕을 왜 혼자 와?"

"응~ 나 가끔 이 시간에 혼자 와."

나중에 알고 보니 정자는 코카콜라 중독이 꽤 심했다. 부모님이 어찌나 강하게 막으시던지. 근데 이 영악한 녀석, 목욕탕 온다는 핑계로 콜라를 실컷 사 마시고 있었던 거다. 우리 둘 다 제 나름의 작전이 있었던 셈이랄까.

"여하튼, 너네 목욕탕 청소하냐?"

뭐 어때. 죄지은 것도 아니고. 그냥 말하지 뭐.

"응, 오래는 아니고 며칠만 하는 거야. 그나저나 반 애들한테는 말하지 말아 줘."

"걱정 마! 나 이런 이야기 막 하는 애 아니야."

속으론 이랬다. '염병. 우리 반에서 입 가볍기로 소문난 게 바로 너잖아.'

"헤헤헤. 니만 믿을게."

정자는 환하게 웃으며 나가다가 돌아서더니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근데 너네는 왜 빨간 속옷 입고 청소 안 하냐? ㅋㅋㅋ 여하튼 대단하다, 진짜. 개학하고 보자!"

콜라캔 하나를 손에 쥔 채 유유히 사라졌다.

나랑 선자는 구석으로 가 얼굴을 맞대고 작게 물었다.

"저 애 말 할 것 같아? 안 할 것 같아?"

"100% 한다. 오늘 6,000원 건다."

……그래. 그럴 것 같다.

하, 나의 고2 겨울방학이여.



드디어, 냉탕 청소 날

오늘은 드디어 냉탕 물 빼는 날이었다.

수영장만 한 냉탕 물이 빠지는 데만 꼬박 두 시간. 겨우 발목까지 물이 빠질 즈음, 빨강 아줌마가 긴 막대 솔을 건네며 말씀하셨다.

"여기 들어가서 바닥이랑 벽 박박 청소해라."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시간 안에 집에 갈 수 있긴 한 거야?'


2026년 노동법으로 보자면 이건 엄연한 오버타임이고, 11시가 넘으면 교통비도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1995년엔 달랐다. 어른이 시키는 일에 토 다는 거 아니고, 따지지도 말라는 묵은 관습이 있었으니까. 지금 같았으면 그 긴 막대 솔을 저팔계 삼지창 돌리듯 빙빙 돌려 벽에 꽂아버리고 나왔을 텐데. 그때는 그냥, 마냥 순진했다. 어른은 어른이었으니까.


둘이서 그 냉탕을 박박 문질러 닦고 있는데, 선자가 갑자기 나를 보며 말했다.


"야, 실은 나도 오늘까지만 하고 그만할래. 몸도 너무 힘들고, 울 엄마도 늦게 들어온다고 난리야."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같이 좀 더 하자고 조르는 것도 이상하고, 그렇다고 혼자 이 먼 곳에 와서 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래도 쿨한 척 대답했다.

"그래! 알겠어. 난 괜찮으니까 편할 대로 해."

실은 — 하나도 안 괜찮았다.


혼자 걷는 버스 정류장까지의 길

그날 유난히, 정말 유난히 몸이 힘들었다.

3일 연속 청소를 하고 나니 겨울밤 공기는 차갑고, 머리카락은 또 젖어 있었다. 혼자 터벅터벅 버스 정류장으로 걷는데, 갑자기 서러워졌다.


엄마한테 손 안 벌리고, 내가 조금이라도 벌어서 먹고 싶은 거 사 먹으려 했는데. 이것마저도 내 맘대로 안 되네. 젠장.

우리 엄마는 혼자서 딸 셋을 키우셨다. 내가 중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전라도 엄마들 특유의 징하게 강하고 질긴 정신력으로 혼자 우리 셋을 먹이고 키우셨다.


나는 이상하게 엄마한테 항상 미안했다. 공부 못한 것도, 밥 많이 먹는 것도, 다른 집 십 대 딸들처럼 여리고 가냘프지 않은 것도 미안했다. 그래서 뭐라도 하고 싶었던 거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엄마를 진짜 기쁘게 해 드리는 건 코피 터지게 공부해서 좋은 성적 받아오는 거였는데. 그땐 어렸다. 많이 어렸다. 엄마한테 손만 안 벌리면, 그것만으로도 엄마가 좋아해 주실 거라 생각했다.

집에 도착하니 12시가 다 되어갔다. 엄마는 아직 일에서 안 들어오셨고, 언니들은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어 집엔 엄마랑 나 단둘이었다.

3일 동안 일해서 번 돈, 고작 15,500원. 차비 빼고, 짜장면 사 먹고, 길거리 떡볶이에 오뎅 먹고, 슈퍼에서 과자 몇 개 사고 나니 수중에 겨우 2,500원이 남았다.


하하하.

그렇게 열나게 일하고 남은 게 2,500원이라니. 내 경제관념이 진심 꽝이었던 거지.

거실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다 스르륵 잠이 들어버렸다.


마지막 날

다음 날. 은봉이도 선자도 오지 않는 목욕탕에 혼자 갔다.

빨강 아줌마, 분홍 아줌마께 사정 이야기를 드리고 혼자라도 계속 일해도 되냐고 여쭤봤다.

"혼자는 힘들어서 못 해."

"그럼 아줌마들이 저랑 같이 하시면 되잖아요."

"아가, 우리는 하루 종일 때 밀고 나면 너무 힘들어서 청소까지는 도저히 못 해. 오늘은 셋이 하고, 우리는 다른 사람 찾아봐야겠다."

솔직히 서운했다. 그때는.


지금 내가 마흔 후반인데, 돌이켜보면 그때 그분들 연세가 아마 사십 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나도 살면서 참 많은 종류의 일을 해봤다. 몸이 망가지는 게 느껴질 만큼 힘들고 빡센 일들을. 그런데 그분들은 하루 종일 열 명 가까운 사람들 세신을 하고, 그 넓은 곳을 청소까지 하셨으니. 그때는 서운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분들이 진짜 대단한 거다. 일주일에 6일을, 그 강도로. 그게 엄마들의 힘이 아니겠어.

어쨌든 일은 끝났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오늘이 보금온천에서의 마지막 날이 된 거다.

그런데 뜻밖에도, 두 분이 만 원씩을 쥐여 주시는 거다. 이만 원.

"엉, 돈이 너무 많은데요……"

두 분이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학생인데 이런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하려 하고, 또 열심히 해줘서. 큰돈은 아니어도 맛있는 거 사 먹어라. 니는 나중에 뭐가 돼도 되겠다."

그 말이.

내 인생 평생의 모토가 되어버렸다.


"니는 뭐가 돼도 되겠다."


살아오면서 힘들 때마다 그 말을 떠올린다. 그래, 난 뭐가 될지 나도 모른다. 근데, 뭐가 돼도 될 것이다.

따뜻한 목욕탕 수증기 냄새가 밴 만 원짜리 두 장. 그게 그냥 돈이 아니었다. 열일곱 살의 나한테 건네진, 생전 처음 받아본 진심 어린 격려였다.


엄마한테 말했더니


집에 오니 그날은 엄마가 먼저 와 계셨다.

받은 이만 원 중에 만 원을 그냥 드렸다. 엄마가 무슨 돈이냐고 물어보시길래, 3일 동안 있었던 일을 주저리주저리 다 털어놨더니 — 엄마가 얼마나 박장대소를 하시던지.

아, 놔. 괜히 말했다.


그 후로 언니들한테도 다 퍼지고, 친척들한테까지. 우리 엄마 진짜……이 씨.

그 이후로 언니들은 야한 속옷 세트만 보면 어김없이 한 마디씩 한다.

"연둥아! 이거 사줄까? 입고 청소하러 가자~"


짧고도 강렬했던 나의 첫 알바.

그 어느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1995년 순천 보금온천에서의 겨울방학.

지금은 너무 귀하고 값진 이야기가 되어서, 떠올릴 때마다 웃으면서 자랑처럼 꺼내 놓는다.


난 첫 알바가 목욕탕 청소야! 죽이제………?


그리고 이건, 긴 이야기의 시작일 뿐이다.

고등학교 졸업장도 채 마르기 전, 이 연둥이는 돌연 비구니가 되겠다며 산속 절로 들어간다.


파란만장한 스무 살의 서막 — 다음 시리즈에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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