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텔 현지 직원들과 친해지려는 눈물겨운 사투
내가 일하는 호스텔은 근무를 서는 5일 동안 모든 동료가 아침, 점심 식사를 함께 한다. 레스토랑 직원이 현지 가정식으로 음식을 준비해 준다. 주린 배를 채우며 즐겁기만 해야 할 식사시간. 하지만 내겐 고되기도 한 시간이다. 다 같이 테이블에 모여 앉으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된다. 언어를 배우는 입장에서 이건 절호의 기회인데 왜 힘들어하냐고? 모든 이가 웃을 때 나만은 웃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겐 여행 중 호스텔에서 일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숙식비를 절약하는 것과 더불어 언어를 연습하는 것이다. 4개월 전부터는 3개 국어에 도전하고 있다. 바로 스페인어다. ‘이렇게 하다 보면 정말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의문이 꼬리를 무는 여러 달을 거쳤다. 역시 일단 계속하다 보면 뭐든 된다는 말이 언어에서도 성립했다. 이제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하다. 문제는 아직까지 문맥을 벗어난 의외의 문장은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도 외국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원어민의 말하기 속도라면, 거의 불가능이다.
팀원들이 나와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할 때는 내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배려해서 말을 ‘해준다’. 좀 더 천천히 또박또박 단어를 내뱉는다거나 내 반응을 보고 단어 뜻을 다시 설명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도 그들이 항상 내 언어 선생님이 돼 줄 순 없다. 대화 주제는 한국 회사의 회식 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전날 뭘 했는지, 지금 동네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심지어 밥상머리 앞에선 다소 심오한 정치, 경제 얘기까지 흘러간다. 사실 팀원들이 더 재미난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다. 내가 ‘주제 파악’을 못했을 뿐.
각자 포크를 들고 식사를 시작하는 초반에는 주로 나를 배려하는 듯한 간단한 대화가 오고 간다. 그것도 완벽히는 못 알아듣지만 그래도 나는 틈틈이 끼어들 수 있다. 본격적으로 나의 실시간 영상 관람이 시작되는 순간은 하나의 대화 소재가 탄력을 받았을 때다. 그들끼리의 대화가 봇물이 터지면 말하는 사람은 리듬을 타며 신명 나게 말을 쏟아낸다. 맛깔 난 판소리의 빠른 버전이라고나 할까. 내가 한국말로도 엄두를 못 낼 엄청난 속도로 그들은 대화를 이어간다. 그러다 모두가 박장대소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절망적이다. 나는 차마 따라 웃지도 못한다. 전부 알아듣진 못해도 최소한 대화 소재 정도는 알아야 그나마 어색하게 웃을 수 있지 않은가.
처음엔 내 밥만 빨리 먹고 먼저 자리를 뜰 까도 생각했다. 나의 내향적인 성격에다 높은 언어의 장벽까지 더해지니 그 상황을 견디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맛있게 드세요(Buen provecho)’ 한 마디하고 일어나면 그 어색함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 시간을 견디기로 했다. 여기서 머물 한 달 내내 그렇게 상황을 피하기만 하다 보면 나는 이후에도 아무 변화가 없을 것이란 걸 알았다. 4개월 전 자기소개만 겨우 할 줄 알았던 내가 지금 이렇게 현지인들과 같이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고통을 인내한 결과다. 이곳을 떠날 때쯤 그저 나도 함께 그들과 웃어보겠다는 마음가짐 하나로 나는 묵묵히 식사 자리를 지켰다.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묵묵히’ 말이다.
나는 예의를 지키기 위해, 솔직히 말해 그 자리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대화에 집중한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계속 사람들의 말에 주목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바로 ‘시청’이다. 신기한 유튜브를 보듯이 팀원들의 입 모양과 얼굴 표정, 손짓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혹시나 비언어적 의사소통 방식 덕분에 내가 문맥이라도 알아차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담겨있다. 한참을 그렇게 관찰하고 나면 조금이나마 이야기 주제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그제야 팀원들의 말 리듬에 따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얼굴에 미소를 머금는다. 물론 이때도 구체적으로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알아듣는 ‘척’ 하는 것일 뿐이다.
난 식사 시간 외에도 직원들과 말 한마디 더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화 주제를 파악을 하게 되는 그 순간의 짜릿함을 기다린다. 대부분 조용히 웃음 띈 얼굴로 주변을 서성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긴 해도 말이다. 주로 여성 팀원들이 주방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현장을 목격했을 때 이때다 싶어 그들 틈 사이에 자리를 잡는다. 괜히 객실 청소를 담당하는 직원을 따라다니거나 근무를 서고 있는 동료 옆을 두리번거리기도 한다. 어쩔 땐 스페인어로 맞장구치는 기술만 느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대충 상황만 파악해 반응을 하다 보니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뭘 말하는 진 모르겠지만 정황상 재밌는 일을 얘기하는 것 같아서 나도 호응을 하다가 얼떨결에 레스토랑 식재료 장 보러 가는 날에 끌려가기도 했다. 덕분에 발 딛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시장판에서 나는 두 시간 넘게 끙끙대며 사람들을 따라다녔다. 땡볕도 더해져 그날 순식간에 녹초가 됐다. 이제 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싫어 고기 냄새도 맡지 못하는 내가, 채식을 시작한 지 3년여 만에 고기 수프를 맛보기도 했다. 식당 직원이 내게 점심에 먹을 요리를 설명해주며 괜찮냐고 물어봤는데 내가 ‘좋다’고 대답해버렸기 때문이다. 음식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는 상황만 파악했을 뿐 구체적으로 무슨 메뉴인지는 알아듣지 못해 생긴 비극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기 덩어리는 없지만 고기로 만든 육수는 괜찮냐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 실컷 괜찮다고 해놓고 ‘우웩’하며 수저를 놓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나의 배려심 혹은 소심함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언어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그들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크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은, 한국과는 전혀 다른 문화와 환경 속에서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 알고 싶다. 나는 삼십 년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알고 보니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은, 한국 문화의 산물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을 즐긴다. 그때마다 나는 글로벌 시민의 신분에 한 발짝 더 다가간다. 내 안의 또 다른 벽을 깨고 더 성숙한 나로 성장하는 것도 느낀다. 기존에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개념을 갈아엎고 새로운 가치관을 장착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방식이 나는 타문화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커질 대로 커져버린 머리가 유일하게 다름에 너그러운 순간이라고나 할까.
이번 호스텔에 합류한 지 어느덧 2주가 지났다. 자잘한 사건 사고로 정신없던 첫 주에 비해 한껏 여유가 생겼다. 반짝 분주할 때가 있긴 해도 잔잔하고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근무 시간에만 말이다. 여전히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은 새로운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Photo by Rodrigo Escalante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