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 오두막 호스텔 일자리 탐색기
나는 현재 머물고 있는 호스텔에서 이번 주 근무 스케줄 표를 받았다. 4번째다. 여기서 일한 지 한 달이 다 돼 간다는 징표다. 그간 일이 손에 익고 동료들과도 꽤나 두터운 정을 쌓았다. 이 말은 슬슬 다시 길을 나설 채비를 해야 하는 때가 왔다는 것이기도 했다. 세계 방랑자로서 아직 떠돌아다녀야 할 땅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근무 쉬는 날 여행을 가기 위해 주변 관광 정보를 둘러봤다. 근처 산골짜기 동네에 호스텔을 하나 발견했다. 지금 일하고 있는 장소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문제는 이곳이 산 중턱에 있다 보니 차를 타고 문 앞까지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업체 자체 셔틀을 이용하더라도 1킬로미터 정도의 산행을 거쳐야 했다. 평소 등산을 혐오하는 나로서는 결코 짧지 않은 거리였다.
하지만 그 숙소 사진을 보고도 쉽사리 마음을 접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곳은 활화산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을뿐더러 독립적 구조의 오두막 객실을 갖고 있었다. 그 오두막도 한 곳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산속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었다. 어떤 객실은 나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기도 했다. 단 하룻밤 그곳에서 머문다 해도 대자연 한가운데 나만의 별장에 있는 듯한 느낌에 푹 빠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1 킬로미터 산행이 줄 고통이 머릿속을 떠났다.
나는 정보를 더 알아보기 위해 그곳 홈페이지로 들어갔다. 그때 화면을 뒤덮는 팝업창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함께 일할 ‘Volunteer(숙식을 제공받는 대가로 인력을 제공하는 여행자)’를 구한다는 것이었다. 삼시 세끼를 주는 데다 거기서 운영하는 모든 프로그램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곳은 근처에 아무것도 없는 산중에 있다 보니 자체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요가 및 운동 수업, 마사지, 단체 산행 등. 모두가 매력적이었다. 도심에서의 헬스장 생활을 그리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단순히 휴무일에 맞춘 휴가지였던 장소가 갑자기 나의 다음 일터 후보가 돼 버렸다.
그간 쉬는 날에 다른 도시로 쉽게 이동하기 위해 나는 줄곧 도심에서 일했다. 한국에서도 시골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이런 내가 최소 한 달 동안 첩첩산중에서 지낸다고? 두려움부터 앞섰다. 아무리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있고 모든 것이 그 공간 안에서 해결된다고 해도 내가 ‘자연인’의 삶에 적응할 수 있을까. 벌레가 많으면 어떡하지, 산짐승이 덮치면 어떡하지, 인터넷이 잘 안 터지면 어떡하지 등 온통 ‘어떡하지’ 질문이 나를 뒤덮었다.
해보지도 않은 일에 지레 겁먹고 도망치는 대신 나는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손님으로서 한번 자보는 것이다. 그 숙소는 오두막 한 채를 통째로 빌리는 선택지만 있었기에 가격이 저렴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그곳이 내 다음 일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를 설득했다. 게다가 자연을 품에 안고 보내는 밤이기에 나는 기꺼이 거금(한화 약 5만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단 하루 밤만.
예상은 했지만 오두막까지 찾아가는 게 쉽지 않았다. 내 모험심을 더 키워주려는 하늘의 뜻인지 비까지 내렸다. 숙소까지 1Km가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이는 곳에서 버스가 멈췄다. 운전기사는 비가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올라가라는 말과 함께 나를 버리고 떠났다. 그때 다 허물어져 가는 건물에 몇몇 사람들이 비를 피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지붕이 있긴 했지만 그 마저도 어디 구멍이 뚫렸는지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 비가 멈춘다 해도 이미 진흙탕으로 변해있을 그 산길을 무사히 올라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나는 삼십 분 넘게 빗방울 떨어지는 걸 구경했다. 그러다 보니 빗줄기가 점점 약해졌다. 아예 날이 맑아질 때까지는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대충 점퍼를 뒤집어쓰고 길을 나섰다. 예상대로 길은 진흙으로 질퍽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모든 걸 잊게 했다. 난 지난 몇 달간 물을 좇아 호수로, 바다로 향했었다. 산은 색다른 느낌이었다. 실제론 20분이 조금 넘는 트레킹이었지만 기분은 그렇지 않았다. 가느다란 안개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화산의 광경에 감탄하다 보니 나는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비록 온몸은 비로 축축했지만 말이다.
여느 호스텔이 그렇듯 이곳도 어느 정도 사진발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진보다 훨씬 깔끔하고 아늑한 실제 분위기에 나는 흠칫했다. 리셉션과 레스토랑이 위치한 본동 건물에는 날씨에 걸맞게 벽난로에 불도 피어나고 있었다. 나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이는 소녀가 내 체크인을 맡았다. 특유의 ‘ㅅ’ 발음을 많이 쓰는 걸 보니 그녀는 아르헨티나 사람이 틀림없었다. 그녀도 나처럼 호스텔에서 일하며 떠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업무 강도를 엿보기 위해 그녀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기로 했다.
그곳은 예약 현황을 공책에 수기로 기록하여 관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제는 포스기를 썼다. 따로 결제 내역을 남기지 않아도 자동으로 모든 걸 계산해주는 포스기 말이다. 이는 거스름 돈을 헤아리느라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되고, 내가 빠뜨린 거래는 없는지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의미했다. 나쁘지 않은 근무 환경이었다.
일 분위기를 더 살필 겸 짐도 풀지 않은 채 일단 배부터 채우기로 했다. 식당 메뉴에는 다채로운 채식, 비건 음식이 가득했다. 갑자기 여기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문한 렌틸콩 수프를 맛보고선 아예 벌써부터 이곳과 사랑에 빠진 것 같았다. 다음 날 눈 뜨는 대로 매니저를 찾아가 같이 일하고 싶다고 말할 참이었다.
하지만 날이 저물자 중요한 변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나의 최대 취약점인 ‘추위’. 객실이 산중에 위치한 터라 어느 정도 추울 거라고 나는 미리 짐작을 했었다. 애초에 배낭에서 제일 두꺼운 옷을 챙겨갔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느긋하게 해먹에 누워 풍경을 감상하는 건 어림도 없었다. 방 안 소파에도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이불속에 몸을 파묻지 않으면 살을 에는 한기가 나를 괴롭혔다. 마음속으로 정했던 매니저와의 면담은 좀 더 미뤄야 할 것 같았다.
날이 밝자 더 이상 코끝이 시리지 않은 것을 확인한 나는 창문을 열었다. ‘그래, 이게 자연이지’라는 혼잣말이 저절로 튀어나올 정도의 풍경이 보였다. 지난밤의 고통은 금세 잊혔다. 또다시 이곳의 호감도가 치솟았다. 운동 수업에서 ‘예비’ 동료를 만나고선 더 이곳에 끌렸다. 운동 선생님도 이곳의 Volunteer라고 했다. 그녀는 이십 대 중반쯤 돼 보이는 스위스 여성이었다. 4년째 중남미를 떠돌고 있다고 했다. 운동으로 다져진 그녀의 탄탄한 근육질 몸매는 차치하더라도, 첫인상에도 강하게 풍기는 긍정의 기운이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했다. 저런 사람과 같이 일한다면 나도 덩달아 건강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업 자체는 자칭 ‘운동인’인 내게도 버거울 정도로 힘겨웠다. 그래도 또 다른 여행 동무를 알게 됐다는 기쁨에 수업 끝에는 힘든 줄도 몰랐다. 우리는 그 후에도 함께 아침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여행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기의 사람도 환경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곳에서 일해야겠다는 결심이 서질 않았다. 아무래도 지난밤 추위가 결정적인 요인이었던 것 같다. 더불어 과테말라 관광 비자가 다음 달이면 끝나는 것도 한몫했다. 이 숙소에서 근무하려면 비자를 연장해야 하는 것이 부담이 됐다. 과테말라를 떠나 새로운 나라를 탐험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방 체크아웃을 하고도 점심, 디저트까지 먹으며 오랜 시간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끝내 일자리 문의는 하지 않았다. 운동 수업을 들으러 또 놀러 오겠다는 말만 남긴 채 길을 나섰다.
돌아가는 길은 오던 날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다. 예비 일자리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이 사라져서 일까, 아니면 여행 후에 찾아오는 흔한 공허감일까. 비도 오지 않는 맑은 하늘 아래서도 걸음걸음이 무거웠다. 숨도 더 빨리 찼다. 그래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나쁘진 않았다. 어느새 나의 ‘집’이 돼 버린, 나의 ‘가족’이 기다리는 현재의 호스텔로 나는 열심히 발걸음을 옮겼다. ‘산 중 오두막’에 아쉬운 마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내게 더 잘 맞는 호스텔이 어딘 가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는 걸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