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 호스텔에서 벌어진 결혼 애프터 파티
어느 평범한 토요일, 오래간만에 예약이 가득 찼다. 하지만 보통의 만실 상황과 달랐다. 예약이 하나의 이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통째로 호스텔을 빌린 것이다. 부킹닷컴이나 호스텔월드 같은 숙소 플랫폼을 거친 것도 아니었다. 전화를 걸어와 방을 잡은 것으로 보였다. 모든 정황상 주인공은 과테말라 현지인이 틀림없었다. 때마침 매니저가 직원 단체 채팅방에 공지사항을 올렸다.
결혼하는 한 커플이 호스텔 전체를 예약했어요. 여기서 피로연을 할 거예요.
밤새도록.
그날 나는 아침 근무를 서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정확히 오전 7시에 리셉션을 열었다. 손님들이 아직 깨지 않아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 그때 요란한 소음이 들렸다. 사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내가 리셉션 정리도 마무리 짓지 못했을 때였다. 남녀 한 쌍이 캐리어를 끄는 것에 모자라 양손에 제법 큰 부피의 종이 가방을 손에 쥐고 있었다. 거대한 짐, 그리고 숙소에 도착한 첫 번째 사람. 그들이 신랑 신부인 듯했다.
뒤이어 젊은 사람들이 짝을 지어 도착했다. 그들은 남녀로 나뉘어 부지런히 짐을 옮겼다. 흰 장미가 가득 담긴 가방과 장식이 붙은 크고 작은 박스가 곳곳에 쌓이기 시작했다. 그때 압도적인 크기의 물건 하나가 내 눈길을 끌었다.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나 볼 법한 커다란 원형 조명이었다. 그것은 곧바로 제일 큰 객실에 자리 잡았다. 호스텔에 이동식 메이크업 스튜디오가 차려진 셈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분홍색 가운을 두른 한 여자가 그쪽으로 다가가 의자에 앉는 게 보였다. 그 여성은 이곳에 가장 먼저 들어섰던 사람이었다. 오늘의 주인공, 신부였다.
웬 걸, 내가 한눈 판 사이 희한한 광경이 펼쳐졌다. 신부가 입고 있는 것과 똑같은 옷을 걸친 여인 여럿이 숙소를 휘젓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족히 다섯 명은 넘어 보였다. 내가 신부라고 확신했던 사람이 진짜 신부가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핑크 가운으로 몸을 감싸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풀 메이크업을 마친 상태였다. 누가 봐도 그건 신부 화장이었다. 그들의 머리도 물론 곱게 단장돼 있었다. 나는 리셉션 옆 소파에 앉아 그들을 구경하고 있던 동료에게 물었다.
“아니 대체 누가 신부예요? 왜 여기 여자들 다 신부처럼 꾸미고 있는 거예요?”
“결혼식이잖아요.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날. 그러니까 초대받은 친구들 모두 다 예쁘게 차려 입고 준비해야죠. 남자들도 마찬가지예요.”
정말 그랬다. 심지어는 남이 보기에 누가 신부인 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한국에서는 아무리 친한 친구가 결혼한다 해도, 그 친구가 아침 일찍부터 웨딩 메이크업을 받지 않는다. 그날의 주인공인 신부를 배려하는 마음이기도 하고, 하객이 굳이 그렇게까지 단장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결혼식은 길어야 1시간이면 끝날 이벤트다. 짧은 순간을 위해서도 온 정성을 다하는, 이곳 과테말라 사람들이 나는 참 열정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에 큰 오해가 있었느니.
호스텔에 모여 준비를 마친 하객들은 오후 네시쯤 하나둘씩 결혼식장으로 떠났다. 그때 매니저가 직원들을 한데 불러 모아 설명했다. 그들의 결혼식은 교외에 따로 마련된 장소에서 치른단다. 행사가 끝나면 모든 하객들이 이곳으로 돌아와 파티를 할 거라고 했다. 밤 11시에 말이다. 한밤중에 피로연을 한다고?
그보다 내가 더 이해 가지 않은 게 있었다. 오후 네 시에 떠났던 그들이 밤 열한 시가 돼야 돌아온다는 것이다. 대체 그 여섯일곱 시간 동안 식장에서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는 건가. 우리나라에선 결혼 절차가 대략 삼사십 분이면 충분하다. 정해진 식순이 끝나고 온갖 축가, 축사를 합해도 한 시간을 넘지 않는다. 물론 다음 예비부부를 위해 자리를 비켜줘야 하니, 장소 특성상 오랜 시간 식을 진행하는 게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 과테말라는 달랐다. 사실 웬만한 서양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처럼 ‘공장식’ 결혼식이 진행되지 않는다. 이 나라에선 점심시간을 전후로 여러 커플이 줄지어 예식을 치르지 않는다. 신부와 사진 좀 찍을라치면 ‘다음 부부가 기다리고 있으니 얼른 식사 장소로 이동해달라’고 외치는 직원도 없다. 결혼식은 가족과 친구들이 하루 종일 음식을 먹으며 신랑 신부와 같이 춤추는 자리다. 말 그대로 공식적으로 ‘놀고먹는’ 시간인 것이다. 서둘러 축의금을 낸 뒤 각자 밥만 먹고 돌아가는 문화는 없다. 카카오뱅크 축의금 송부처럼 1초로 끝나는 축하는 없다. 하객 모두가 최소 반나절 혹은 하루를 통째로 지인을 위해 투자한다.
손님들이 결혼식을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숙소 전 직원이 달라붙어 파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행사의 목적을 생각한다면 파티 이름이 우리말로 ‘피로연’이 돼야 맞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이는 시간과 이들이 무엇을 할지를 고려했을 때 영어 그대로 ‘애프터 파티’라고 불러야 더 정확하다. 자정 즈음 요란한 댄스 음악에 맞춰 다들 술에 취해 춤을 출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클럽으로 변신한다. 호스텔이.
일단 우리는 급하게 근처 슈퍼에서 풍선을 사 왔다. 모조리 하얀색으로. 직원 네다섯 명이 테이블에 앉아 풍선에 숨을 불어넣었다. 숙박시설에서 갑자기 백 여개의 풍선을 만들만한 공기 펌프가 있을 리 없었다. 우리는 칵테일에 들어갈 레몬도 미리 썰어 두었다. 단 한 명뿐인 레스토랑 직원이 제일 바빴다. 그녀는 타코, 감자튀김, 닭날개 바비큐 등 안주거리를 한꺼번에 혼자 준비해야 했다. 사실 예상치 못했던 복병은 어디서 파티 소문을 들었는지 끊임없이 밀고 들어오는 외국인들이었다. 각자 열심히 맡은 임무를 하던 우리는 그들에게 일일이 설명해야 했다. 오늘은 비공개 파티로, 외부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말이다. 이곳이 아무리 작은 동네라지만 먹고 노는 것에 대한 소문은 더 빨리 퍼지는 듯했다.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더 늦게 하객들이 호스텔로 돌아왔다. 이미 자정이 넘어 있었다. 부부의 친구들은 물론 가족들까지 마당에 모였다. 그중 눈에 띄는 큰 덩치에 화려한 수염을 달고 있었던 한 사내가 양복을 벗더니 스피커 옆으로 다가갔다. 그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디제잉 박스였다. 그는 다른 음향 기구도 주섬주섬 설치했다. 그 하객이 디제이였던 것이다. 디제이가 음악을 틀자 단번에 클럽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예전에 술집에서 일한 경력이 있던 동료가 바텐더로 변신했다. 주문받은 술을 만드느라 그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노래가 깔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누구는 맥주병을 쥐고, 누구는 칵테일 잔을 든 채로 디제이의 라틴댄스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에! 에! 에! 에!’
하객들은 커다란 원을 만들어 신랑 신부를 둘러싸며 외마디 구령을 외쳤다. 그 원 안에서 춤을 추라는 신호였다. 부부는 거리낌 없이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그 이후에는 주변에 있던 친구들이 차례차례 그 울타리로 들어갔다. 박수와 구령에 찰떡같은 안무를 선보였다. 술에 취한 탓인 지 혹은 이곳의 자연스러운 문화인 지 중앙으로 초대된 사람들은 모두 망설임 없이 춤을 췄다. 부끄러워서 내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한국이었으면 ‘나는 춤을 못 춘다’라며 얼른 꽁무니를 뺐을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 나 혼자 괜히 웃음 지었다.
춤판은 새벽 네시까지 이어졌다. 그 여파로 사람들은 다음 날 체크아웃 시간이 가까워져서야 하나둘씩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침 식사가 이미 주문돼 있어 바로 떠날 순 없었다. 다들 전날 기력을 소진한 탓에 테이블에는 다소 축 처진 기운이 감쌌다. 그들이 뒷마당에서 홀린 듯 몸을 흔들어대던 사람들인지 상상도 못 할 정도였다. 한편 음식이 놓인 식탁 근처에는 각양각색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다. 손님들이 부부에게 준 선물인 듯했다.
‘축의금’이란 이름과 함께 돈으로 축하를 표현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곳은 주인공에게 물건을 사준다고 한다. 보통 부부가 필요한 것을 미리 리스트로 만들어 놓으면 그중에서 친구들이 본인이 살 것을 고른단다. 그들의 눈에서 우리나라의 축의금이 현금을 주고받는 다소 멋없는 문화 일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 하객 입장에선 직접 쇼핑을 가는 것보다 ATM에서 돈 뽑아다 봉투에 넣는 게 더 편한 게 아닌가? 결혼 선물 더미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참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다 싶었다.
화려한 호텔의 행사장 한 칸 보다, 수수한 호스텔 통째가 어떤 면에서는 결혼식 피로연에 더 걸맞을지도 모른다. 격식을 따지지 않고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파티 장소는 호텔보다는 호스텔이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도 게스트하우스나 민박에서 결혼 뒤풀이가 성행하는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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