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체크인 손님이 동시에 몰려 들다
홀로 근무를 서는 첫 날을 맞이했다. 한 밤 중에 예약 손님을 길거리로 내쫓기도 했지만 나는 우여곡절 끝에 트레이닝 기간을 무사히 끝냈다(관련 이야기는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 지난 주 근무 내용을 토대로 체크 리스트도 만들었다. 함께 리셉션을 지킬 동료가 없을 뿐 내 질문을 받아줄 그룹 채팅방이 있기에 난 그리 불안하지 않았다. 앞으로 한 시간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상상도 못한 채 말이다.
근무 시간은 오후 5시부터 밤 10시까지. 마감 타임이었다. 오늘 체크인 할 고객을 훑어봤다. 그룹 손님을 포함해 열 명이 조금 넘었다. 너무 한가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바쁘지도 않을 것 같은 적당한 숫자였다. 손님이 이름을 말했을 때 바로 예약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예약자 이름 하나하나를 꼼꼼히 발음해봤다. 리셉션 돈도 두번이나 세어봤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때까지는.
혼자 리셉션을 지키기 시작한 지 삼십분이 지났을 까. 첫 번째 체크인 손님이 들어왔다. 이스라엘 소녀들이었다. 어디에서 오는 길이며, 그 곳은 어땠으며, 내일은 무얼 할 것인지 등 분위기를 풀기 위한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제법 능숙했다. 그간 호스텔리어로서 키워 온 하나의 기지랄까. 질문은 아직 체크인 절차가 익숙치 않아 버벅거리는 내 손 때문에 서로가 무안하지 않기 위한 수단이었다.
아직 첫 번째 소녀들 숙소비 결제도 덜 끝냈는데, 또 다른 무리가 캐리어 가방을 끌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소녀들과 같은 도시에서 온 사람들 같았다.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교통편인 셔틀을 이용해서 도시를 이동하는 외국인들은 보통 비슷한 시간대에 도착한다. 셔틀 출발 시각이 오전 6시, 오전 9시, 오후 2시로 여행사 상관없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손님들이 같이 호스텔로 들어오는 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두번째 손님의 가방 소리를 들었을 때도 나는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평소에도 벌어지는 일 중에 하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떼를 지어 우루루 몰려 줄을 서는 건 아주 특이한 사건이다. 그리고 그 사건이 바로 내 첫 근무 날에 벌어졌다. 나는 두 번째 손님 그룹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고 첫 번째로 도착한 소녀들을 방으로 안내했다. 꽤나 침착하고 상냥하기까지 했다. 이 호스텔에서 나의 첫 체크인이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리셉션에 돌아왔다. 그 때,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누가 봐도 일행이 아닌 무리가 리셉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 둘이 아니었다. 누구는 배낭을 메고, 누구는 캐리어를 끈 채 서성이고 있었다. 누가 먼저 온 지도 알 수 없었다.
“자 여러분, 일단 짐부터 내려 놓으시고 잠깐 쉬고 계세요. 와이파이 비밀번호는 여기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손님들 체크인도 문제지만, 이렇게 정신이 없을 때 혹여나 정산 실수를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손님들이 특이한 방식으로 결제를 요구했다. 방 하나를 예약해 놓고 비용 지불은 각자 따로 나누어서 하겠다, 나는 카드로 얘는 현금으로 하겠다, 숙소비는 카드로 결제하고 세탁 서비스는 현금으로 주겠다 등. 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결제와 동시에 거래 내역이 기록되는 ‘포스’기가 없기 때문에 더 긴장했다. 이 곳은 손님이 돈을 주면 손님 이름과 돈의 액수를 내가 직접 손으로 엑셀 시트에 남겨야 하는 구조였다. ‘나중에 적어야지’하는 마음으로 급하게 손님만 처리했다가는 나중에 거래 내역 장부와 카운터 돈 상자의 돈 액수가 일치하지 않기 십상이었다.
심지어 이미 체크인을 해서 숙소에 묵고 있었던 다른 손님들도 날 애먹였다. 리셉션 앞에 길게 늘어선 대기 줄을 보고도 말이다. 어떤 이는 지금 당장 샤워를 해야 한다며 수건을 달라고 했다. 수건을 빌리려면 여권을 카운터에 맡겨야 한다고 말해도 그 사람은 여전히 빈손으로 계속 수건을 외쳐댔다. 어떤 이는 주방에서 요리를 하게 해달라고 떼를 썼다. 주방 앞에 ‘직원 외 출입 금지’라는 안내문이 떡하니 붙어 있었지만 막무가내였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어떤 손님은 본인 빨래를 제일 먼저 해달라고 졸랐다. 이미 빨래 순서가 정해져 있다고 설명해도 자기 옷이 너무 급하니 첫번째로 빨아 달라고 했다. 평소 같으면 자세한 사정 설명과 함께 사람들을 더 친절히 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팬미팅 현장을 연상시키는 긴 줄 앞에선 내 표정이 그리 부드럽지 못했다.
어찌어찌 마지막 손님까지 체크인을 시키고 컴퓨터의 예약 관리 프로그램을 확인했다. 오늘 내가 기다려야할 손님 모두가 체크인 완료한 것으로 떴다. 한 시간, 아니 십분 간격으로 따로 와도 좋았을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아 닥친 것이었다. 아직 마감 시간은 세시간 넘게 남았지만 서둘러 카운터 돈 상자를 열었다. 혹여나 내가 깜빡하고 엑셀 시트에 남기지 못한 거래 내역이 있는 건 아닌 지, 손님 잔돈 계산을 잘 못 한 것은 아닌지 걱정됐기 때문이다.
한국 방식으로 돈 뭉치를 한 손에 접어 쥐고 천천히 지폐를 세어 나갔다. 엑셀 함수도 못미더워 직접 휴대폰 계산기로 숫자 하나하나를 두드렸다. 떨리는 마음으로 숫자를 확인해갔다. 다행히 내가 남긴 거래 메모와 현재 돈 상자에 남아 있는 돈의 액수가 일치했다. 그제서야 한껏 긴장으로 움츠려 있던 몸에 힘이 풀렸다. 도대체 왜 그 편한 포스기를 도입하지 않는 것인 지 화가 치솟는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모든 일은 마치 내 첫 근무를 축하하는 기념 이벤트 같았다. ‘네가 얼마나 잘 할 수 있을 지 보겠다.’고 누군가가 짜고 벌이는 테스트 같기도 했다. 그래도 시험의 결과는 합격이 틀림없었다. 결국엔 실수 없이 일을 잘 처리해낸 내가 자랑스러웠다. 돌이켜보면 내 머리를 믿지 않고 차분히 모든 것을 기록해 뒀던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됐다. 아무리 당장 눈 앞에 기다리는 손님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손님들이 오랜 대기로 짜증 나지 않게 할 다른 묘안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직접 말을 걸지 않아도 그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방법 말이다. 서비스업의 생태계에 한 발짝 더 다가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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