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I)인이 호스텔에 적응하는 과정
이곳에 온 지 이틀밖에 안돼서 장담할 순 없지만 이 호스텔은 정말 조용하다. 나름 식당도 있고, 바도 있는 공간인데도 말이다. 그렇다. 손님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아침 7시가 채 되기 전부터 모닝커피를 마시기 위해 손님들이 대기하고 있던 다른 호스텔과는 달랐다. 그 흔한 아침 주문도 없었다. 식당과 바 자체가 텅텅 비어 있는 게 대부분이어서 그런지 리셉션 직원에게 서빙이나 주방일을 맡기지 않았다. 식당과 바가 있는 호스텔은 피하는 게 좋다는 내 기준이 무색할 정도다.
리셉션도 마찬가지다. 동네 자체가 워낙 관광 정보가 널리 퍼져있는 유명 관광 도시여서일까. 체크 인/체크 아웃 혹은 투숙 연장을 제외하고는 리셉션에 찾는 사람이 드물다. 투어나 셔틀 예약도 다들 인터넷으로 알아서 하는 분위기다. 매주마다 상황이 다르다는 직원들의 말을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덕분에 두 번의 트레이닝 시간 동안 업무 설명은 들어도 손님을 직접 맞닥뜨리는 경우가 적었다. 실습의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았다. 몸을 움직일 일이 별로 없어 아쉬울 정도다.
예상치 못한 단점도 찾았다. 이상하리만큼 투숙객 대부분이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이다. 거의 90%를 차지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죽했으면 내가 이 호스텔 이름이 히브리어라고 착각했으랴. 영어와 히브리어 간의 간극이 크다 보니 그들을 대하는 데 유창한 영어 실력이 필요 없었다. 영어 한 마디 제대로 못하는 남미 사람도 이곳에서 일할 수 있는 이유를 드디어 알게 됐다.
물론, 숙소가 이스라엘인으로 가득 찬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내가 그 나라에 특별한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다. 절대. 난 다양성을 추구할 뿐이다. 최소 한 달은 이곳에 붙어 있어 보겠다고 마음먹은 만큼, 여러 문화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투숙객의 국적이 한 나라에 치중돼 있으면 그 기회가 줄어든다. 보통은 세계 어딜 가나 독일, 프랑스인으로 가득하다. 내가 영어로 말할 수 있게 된 것도 호스텔에서 만난 수많은 독일인들 덕분이었다. 이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내 본능이 이를 미리 감지했던 것일까. 마침 이 숙소에 도착하기 직전에 서점에 들러 산 책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였다. 이번 여행 내내 전자책만 읽다가 처음으로 종이책을 구입했는데 그게 바로 이스라엘 저자의 책이었던 것이다. 굳이 안 사도 되는 책이었다. 이미 몇 번이나 읽었을뿐더러 두꺼운 책은 아무래도 방랑자에겐 짐이었다. 그래도 무언가에 이끌려 결국 책을 구매했는데 이걸 이렇게 쓸 줄이야.
호스텔에서 손님을 맞이할 때마다 나는 항상 그 사람의 국적과 관련한 내 소소한 지식과 경험을 동원하곤 한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는 나라의 사람일수록 그 나라에 대해 사소한 것이라도 말하면 그들과 친해지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손님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나는 대뜸 사피엔스 책을 내밀었다. 사실이기도 하지만, 좀 더 과장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다. 나는 이 작가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어필하면서 말이다. 이틀밖에 안 됐는데 벌써 유발 하라리와 동명이인인 손님도 만났다. 하지만 소녀였다. 그녀는 ‘유발’이라는 이름이 성별에 무관하게 쓰이는 이름이라고 했다. 앞으로 이스라엘에 대해 얼마나 더 많이 알게 될 까.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도 점점 거리를 좁혀 가기 시작했다. 언어라는 큰 장벽이 있고, 이미 친한 사람들 사이에 끼어든 다는 게 쉽지가 않다는 걸 알기에 더욱 노력하고 있다. 항상 먼저 다가가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사소한 소재라도 먼저 얘기를 꺼낸다. 특히 함께 하는 식사 자리에서는 더 신경 쓴다. 직원들 사이의 자연스러운 대화는 내가 알아듣기가 힘들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알아듣는 문맥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반응한다.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함께 웃는 것이다. 이런 내 노력이 조금이라도 통했을 까. 직원들이 나도 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대화 중간중간 날 배려해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줄 때마다 따스함을 느낀다.
물론 내 내향적인 성격상 하루 종일 에너지를 ‘사회생활’에 쓸 순 없다. 혼자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을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근무 시간, 5시간이 지나면 사람들과 계속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내 일에 집중한다. 그래도 아예 혼자 고립되어 사라지지는 않는다. 공부를 하더라도 리셉션 근처의 책상에 앉는다. 글을 쓰고 싶을 때면 조용한 방 안보다는 야외의 벤치에 앉아 다른 사람이 다가올 수 있는 기회는 열어 둔다. 내가 먼저 말을 걸진 않겠지만 당신에게 나는 항상 열려 있다는 의미랄까. 전형적인 MBTI ‘I’인 내 성격이 항상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호스텔과는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 나름대로의 전략을 통해 외향적인 사람 못지않게 호스텔의 세계에 잘 녹아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