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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Aug 06. 2022

아니, 면접을 보자고요?

과테말라 안티구아에서 호스텔 일자리를 구하다

돈 없이 세계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다가올 무지의 세계에 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호스텔리어 정착기를 실시간으로 남겨보고자 한다. 새로운 호스텔에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과 하루하루 호스텔리어로서 고군분투하는 일상을 전달할 것이다. 무사히 이곳에 녹아들어 내 삶에 또 다른 가족을 만들어 가고픈 나의 바람이 담긴 프로젝트기도 하다. 또한 앞으로 내가 더욱 능숙한 호스텔리어로서 거듭나기 위해 그날의 교훈을 남겨두고자 한다.



과테말라 안티구아. 하늘길로 과테말라로 오는 외국인들은 반드시 거쳐가는 도시다. 공항이 있는 수도 과테말라 시티와는 차로 약 1시간의 거리에 있는 곳. 수도가 워낙 불안한 치안으로 악명 높기에 외국인들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이곳 안티구아로 직행한다. 이 도시는 과테말라에서 ‘여행자의 베이스캠프’로 불릴 만큼 이 나라에서 가장 관광산업이 발달된 곳이다. 관광으로 벌어먹고 사는 동네이기에 깨끗한 생활 인프라는 물론이고 치안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마침 나는 지난 5개월간 과테말라 내 작은 도시에만 머물며 잦은 정전, 단수, 불청결한 환경 등 일상의 불편함에 지친 상태였다. 이 나라에서 마지막으로 ‘호사’를 누려보겠다는 심정으로 안티구아로 향했다.


다른 때와는 달리 이곳에서 호스텔을 선택할 때 Volunteer(금전적 대가 대신 숙식을 제공받으며 인력을 제공하는 여행자)에게 주는 부가 혜택이 많은 지를 꼼꼼히 살폈다. 이 도시의 뛰어난 관광 인프라를 이용해 내 휴무일을 여행으로 더욱 알차게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생활 경비가 들지 않아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호스텔이 숙박과 함께 매 끼니 식사를 제공하는지가 최우선이었다.


1.     다른 도시에 제휴 호스텔이 있어 휴무일에 그곳에서 무료 숙박을 할 수 있는지

2.     투어, 셔틀버스 등 관광 상품에 할인을 받을 수 있는지

3.     호스텔 내 상품 판매 실적에 따른 금전적 인센티브가 있는지


운 좋게도 이 모든 것을 충족하는 호스텔을 찾았다. ‘Tzunun hostel’이란 곳으로, 사진과 리뷰를 보아하니 작고 조용한 호스텔로 도시 중심부와는 거리가 있었다. 술에 취해 밤새도록 떠들어대는 어린애들로 가득 찬 파티 호스텔은 질색이었기에 이곳이 더 맘에 들었다.




나는 이 호스텔의 Whatsapp(외국에서 가장 많이 쓰는 메신저 앱, 외국의 카카오톡) 계정에 메시지를 보냈다.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저는 한국에서 온 사비나라고 합니다. 당신 숙소에서 volunteer로 일하는 데 관심이 있어요. 지금도 volunteer를 구하고 있나요?’ 보통은 이렇게 보내면 숙소 측에서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하고, 일을 언제부터 시작할 수 있는지 날짜 조정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 숙소는 달랐다. 인터뷰를 하자는 것이었다. 보아하니 이 호스텔 매니저는 영어를 할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정식 직원을 뽑는 것도 아니고 단기 Volunteer를 구하는 데 면접이라니. 그것도 스페인어로 한다니 덜컥 겁부터 났다. 한국에서 취업할 때 ‘영어 면접’이라는 단서가 붙으면 얼어버렸던 습관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어차피 호스텔은 많다’라는 여유와 내 스페인어를 한 번 실험해보겠다는 오기로 면접 시간을 잡았다. 과하게 걱정하고 겁먹었던 일이 오히려 하고 나면 별 것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그랬다. 호스텔 매니저와의 영상 통화에서 나는 별 말을 하지 않아도 됐다. 매니저는 이십 대 중반쯤 돼 보이는 여성이었다. 화면과 목소리만으로도 그녀의 밝은 기운이 느껴졌다. 통화는 면접이 아니라 설명회 같았다. 매니저가 일방적으로 호스텔 근무 조건과 혜택 등을 설명하고 끝났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중간에 인터넷 연결이 끊겨버려 통화도 길게 하지 않았다. 과테말라의 열악한 통신 인프라가 이렇게 날 구할 줄이야.


면접 바로 다음 날, 나는 바로 호스텔로 달려왔고 리셉션 직원으로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첫 3일은 트레이닝 기간이라고 했다. 다른 곳에서는 하루 교육을 시킨 후 바로 근무에 투입을 시켰는데 이 호스텔은 달랐다. 3일 후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떠날 수도 있다고 했다. 물론 이 말은 내가 일을 잘하지 못할 것 같으면 호스텔에서도 날 내보낼 수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이 호스텔 직원 모두 영어를 하지 못했다. 매니저도 마찬가지였다. 업무 설명도 모조리 스페인어로 진행됐다. 십여 년 만에 수능 영어 듣기 시험을 다시 치르는 것 같았다. 규모가 작은 호스텔이기에 업무가 많지도 복잡하지도 않았다. 다른 과테말라 호스텔에서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공책에 연필과 지우개를 이용해 수시로 예약 상황을 쓰고 지웠다. 하지만 이곳은 컴퓨터가 있었다. 내게 친근한 객실 관리 소프트웨어, ‘Cloudbeds’를 쓰고 있었다. 어차피 리셉션에서 하는 일은 대동소이하기에 이 호스텔만의 세부적인 업무에만 익숙해지면 됐다. (호스텔 리셉션 직원의 하루 업무에 대해 상세한 포스팅을 쓸 예정입니다. 기대해주세요!)


내가 숙박비를 절약하기 위해 이곳에서 일하는 게 맞긴 하지만, 나는 다른 목적이 있기에 함께 일하는 사람도 중요했다. 바로 ‘언어를 배우는 것’. 일단 직원 모두 현지인이어서 합격. 더군다나 다른 Vounteer도 아르헨티나, 니카라과 사람이어서 스페인어에 하루 종일 노출되기에 딱 좋은 환경이었다. 내가 이 완벽한 기회를 잘 활용하기만 한다면 돈도 아끼면서 어학연수까지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장소였다. 직원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대여섯 명의 직원들이 매일 함께 아침 점심을 먹는다고 했다. 그야말로 ‘식구’였다. 지구 반대편에서 또 다른 식구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더해졌다. 호스텔에 도착한 첫날이지만 마음속에서 난 이미 식구의 일원이 되었다.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어떤 추억의 그림을 그려가게 될까. 이번엔 잘 적응하고 싶다.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 세계에서 통용된다는 걸 깨닫고 일주일 만에 직전 호스텔에서 도망쳤기 때문이다. 나는 돈이 없고 여행은 하고 싶으므로 이번 호스텔에선 최소한 한 달은 살아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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