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 친환경 호스텔에 한번 가봤습니다.
한국에서 세계 3대 호수라 알려진 과테말라의 아띠뜰란 호수(Lago de Atitlán). 객관적인 면적 수치로 따지면 이 호수가 전 세계에서 3번째로 큰 건 아닙니다. 출처는 알 수 없지만 그만큼 아름답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덕분에 이 호수는 과테말라를 찾는 외국인이 반드시 거쳐가는 관광지로 성장했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호스텔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숙소도 마침 그 호수에 있습니다. 직원 혜택으로 그곳에 공짜로 묵을 수 있다는 말에 저는 휴무일에 맞춰 아띠뜰란으로 향했습니다.
한국인들이 입 모아 왜 그곳을 세계 3대라 칭한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전경이 내다보이는 부두에 서자마자 말이지요. 호숫가를 감싸고 있는 산줄기는 어디에서 보든 절경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호숫물 앞에서는 잠시 모든 생각을 멈출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곧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바로 호스텔이었습니다.
자체 부두를 갖고 있을 정도로 숙소는 호수와 한 몸이었습니다. 그 부두에 걸터앉아 일광욕을 즐기는 손님이 많았습니다. 정원에 설치된 해먹에 누워 호숫가를 내려다보는 사람도 꽤나 있었습니다. 실로 자연과 하나가 된 모범적인 풍경이 아닐까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요. 하지만 체크인이 시작되자마자 조금씩 이곳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숙소를 안내받기 위해 나는 직원을 따라나섰다. 한 건물 안에 모든 시설이 모여있는 게 아니었다. 그곳은 너른 캠핑장을 떠올리게 하는 호스텔이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설명을 시작하기 전, 찡긋 미소와 함께 영국 특유의 악센트로 물었다.
여기 친환경 호스텔인 거 아시죠?
그의 청량한 웃음 때문인가. 차마 ‘몰랐다’고 대답하지 못하고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사실 나는 그간 생활 속에서 환경 친화적인 행동을 실천하는 자칭, 타칭 ‘친환경주의자’다. 누가 물어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공부도 일도 모두 지구를 지키는 임무의 연장선이었다. 이런 내게, 지속 가능한 방안으로 운영되는 시설에서 하룻밤을 보낸다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일이었다.
언덕을 오르던 우리는 줄지어 선 나지막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그는 거기가 화장실이라고 했다. 자연을 보호하고자 ‘건조’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변기와 함께였다. 물을 안 내린다는 말이다. 물이 아예 없다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화장실 앞에서 꽤나 긴 설명을 이어갔다. 볼일을 본 후에는 반드시 변기 뚜껑을 덮어야 한다, 화장실에 나온 후에도 꼭 문을 닫아야 한다 등등. 그 이유는 단 한 가지로 명확했다. 그걸 지키지 않으면 ‘악취가 진동한다’는 것이었다. 밀폐하지 않으면 밖으로 온 냄새가 퍼진다는 뜻은 누가 봐도 명확했다. 그 좁아터진 화장실 내부에서는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그때 나는 다짐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최대한 물을 마시지 않겠다고.
우리는 조금 더 올라가 다음 간이 건물 근처에서 다시 속도를 줄였다. 샤워실이었다. 그는 이번에도 ‘여기가 샤워실이에요’라고 끝내지 않았다. 물이 호수에서 바로 펌프로 끌어올려진 것이라고 했다. 필터도 없이 말이다. 이곳에서 샤워는 하되 양치는 하지 말란다. 리셉션 앞에 있는 식수대에서 물을 떠 와 이를 닦아야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화장실의 역겨움을 견뎌야 하는 것과 더불어 세면대의 불편함이라니.
호숫물이 그렇게까지 깨끗하지 않다는 걸 그들이 이미 아는 상황에서 물을 조심하라는 안내문만 덕지덕지 붙여놓으면 숙박업체의 책임은 끝인가. 요즘 자연 친화적인 필터가 시중에 많이 깔려있다. 이곳 과테말라에도 정수 기능이 있는 갖가지 돌로 채워진 ‘에코 필터’가 아주 대중적이다. 물로 한번 탈이 나면 여행자들은 며칠을 그대로 드러누워야 한다. 특히 단기 관광객에겐 일정에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이미 몸속에 ‘녹색(Green)’의 피가 흐르고 있는 나도 친환경 숙박시설이라는 컨셉 아래 손님들의 안전과 편의를 등한시하는 이 숙소의 행태에 반감이 일었다.
마침내 내 침대가 있는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져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 업체의 홈페이지에 도미토리(한 방에 여러 사람들이 같이 침대를 공유하는 숙박 형태)만 내부 사진이 걸려있지 않았을 때 이미 이 비극을 예측했어야 했다. 내가 본 건 ‘방’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글램핑장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텐트였다. 그곳엔 침대도 없었다. 그저 바닥에 4개의 매트만 널브러져 있을 뿐. 그것도 따닥따닥 붙어서 말이다. 침구는 더 가관이었다. 이불에 얼룩은 물론 군데군데 찢어진 부분이 꽤나 눈에 띄었다. 어느 산골 깊은 곳에서 급하게 마련한 야영장 같은 느낌이었다. 최소한 나는 이런 잠자리에 내 소중한 돈을 버리지 않아서 정말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곳에 생돈을 내고 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혹은 그들도 나처럼 이런 상황을 몰랐거나.
그리 덥지 않은 날씨인데도 텐트 내부는 잠시도 앉아 있지 못할 정도로 공기가 텁텁했다. 나는 짐도 풀지 않은 채로 호숫가의 리셉션 근처로 내려갔다. 혹은 도망갔다. 리셉션 앞은 공용공간이자 식당이었다. 딱 우리나라 계곡 옆 백숙집 같은 구조였다. 평상이 일렬로 늘어져 있고 거기에 양반다리로 앉아야 하는. 나는 그곳에서 평화롭게 호숫물이나 흘겨보며 책을 읽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불가능이었다. 수백 마리 파리떼가 나를 둘러쌌기 때문이었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정말 말 그대로 그곳엔 ‘수백 마리’의 파리가 여기저기 엉겨 붙어있었다. 식당이었는데도 말이다. 잠시만 신경을 쓰지 않으면 몇몇 파리가 내 주위를 맴돌다 손과 다리에 자연스레 착석했다. 물론 어딜 가나 파리가 있을 수 있다. 특히 자연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이곳의 파리 수는 압도적이었다. 마치 쓰레기통 주변에 몰리듯 말이다. 그것도 텐트 주변에는 보이지도 않던 파리가 유독 식당에만 몰려있다? 이건 자연 친화적인 환경이 아니라 청결 관리의 문제다.
잘못 꿴 첫 단추 때문인지 나는 그들이 말하는 모든 것에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주변 쓰레기를 한 봉지 주워오면 맥주 한 병이 공짜라는 선한 이벤트까지도 말이다. 옛 직업병 덕에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태양광 패널은 과연 작동이나 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설사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전기를 이 시설에서 직접 사용하지 않고 정부에 파는 게 분명했다. 일 년이 우기와 건기로 나뉘는 이곳 날씨 특성상 해가 쨍쨍할 때 바짝 전기를 모아두는 배터리가 없으면 효율적으로 태양광 전기를 사용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사실 이 숙소의 다른 면에서 실망하지 않았더라면 그저 태양광 패널이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는 감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내가 ‘고객’으로서 방문한 ‘숙박’ 업체다 보니 역시나 투숙의 편안함이 최우선으로 여겨졌다. 결국 다 삐뚤게만 보였다.
현재 호스텔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참 많은 생각을 안겨주는 숙박 경험이었습니다. ‘친환경’을 내세우되 숙박 업체가 제공해야 할 서비스의 본질은 해치지 않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업주가 조금만 더 연구하고 관심을 기울이면 충분히 보완 방안을 찾을 수 있는 게 사실입니다. 세계 3대 호수의 절경만을 믿고 앞으로도 같은 방식으로 영업을 이어간다면? 저는 이 업체의 끝은 멀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런 곳에도 이렇게 손님으로 바글거리는데 왜 제가 일하고 있는, 훨씬 깨끗하고 편안한 호스텔엔 파리만 날리는 것일까요. 아, 여기서 파리는 비유적 표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