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에서 여행을 하다 보면 ‘아니 이걸 진짜 ‘질문’이라고 물어보는 거야?’라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우리에겐 정말 기초적이고 당연한 사실에 관한 질문을 받는 순간입니다. 물어보는 외국인의 무식함을 탓할 수만은 없습니다. 거리가 먼 나라일수록 정보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관심도 적은 게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아시아 문화 자체에 특별한 관심이 없으면 더 심하겠지요.
외국인들은 호기심 어린 눈망울로 물어봅니다. 그중에서는 ‘정말 이걸 진지하게 설명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스치는 것들도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그간 제가 여행을 다니면서 황당하지만 의외로 많이 들었던 질문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여행 중 이런 물음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답할지를 상상하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1. 일본말 알아들어요?
아니, 이게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이야기란 말입니까. 한국인이 일본어를 알아듣다니요. 사실 저는 처음 몇 번 이런 말을 들었을 땐 상대가 농담하는 줄 알았습니다. 아시아 문화를 활용한 고급 말장난이랄까요.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진지했습니다. 한국어를 할 줄 알면 일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꽤나 있습니다.
사실 두 문자를 혼동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저도 태국어나 베트남어를 구분하는 게 힘드니까요. 그들의 눈에는 둥글둥글하기도 하고 쭉쭉 뻗은 선이 많은 게 한글과 히라가나(일본 문자)가 비슷해 보인다고 합니다. 일본어가 적힌 인형을 들이밀면서 너네 나라 물건을 찾았다며 즐거워하던 외국인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동아시아 3개 국가가 동일한 문자를 쓴다고 착각하는 이도 꽤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놀란 가슴을 추스르며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지요. 한국어와 일본어의 많은 단어가 한자에 기반을 두고 있긴 하지만, 문자는 절대 같지 않다고 그들에게 강조합니다.
하지만 생김새가 아무리 비슷해도 그렇지 어떻게 외국어를 배우지도 않고 단번에 이해한다는 것일까요. 사투리도 아닌 엄연한 별개의 언어인데 말이지요. 놀랍게도 이런 궁금증은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질문자가 유럽에서 왔다면요. 그들은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처럼 한국어와 일본어의 관계를 생각했습니다. 각자의 언어를 ‘천천히’ 말하면 서로 대충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둘 간의 유사한 점이 많을 것이라 예상하는 것입니다. 어떤 포르투갈 사람은 이렇게 물어본 적도 있습니다. 자기들은 딱히 스페인어를 배우지 않아도 웬만큼은 이해할 수 있다, ‘너네도 일본어 공부 안 해도 알아먹을 수 있지 않느냐’고요. 이때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어도 한술 더 뜨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 그럼 중국말은?’ 힘이 탁 풀리고 맙니다.
이런 대화를 주고받다 보면 갑자기 한글 홍보대사가 된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일본 문자는 100개가 조금 안되고, 중국 문자는 수천 자가 넘지만 한글은 24개밖에 안된다, 알파벳처럼 간단하다 등. 저도 모르게 일본, 중국과 거리를 두려는 설명을 이어나가는 것이지요. 얼른 휴대폰 메모장을 꺼내 상대방의 이름을 한글로 적어서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게 한글이니 앞으론 헷갈리지 마’라는 무언의 압력이기도 합니다.
2. 한, 중, 일. 얼굴만 보고 구분할 수 있어요?
해외 경험이 별로 없는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의 외모로만 보고 그 출신을 짐작하기가 힘듭니다. 아시아인을 제외하고는 기껏 해봐야 흑인, 백인, 아랍인, 라틴계 정도의 구분일 것입니다. 아시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는 외국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아시아 3개 국민을 국가별로 정확히 판별해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한국, 중국, 일본인은 피부색은 물론이고 머리, 눈동자 색깔도 같으니 외국인들 입장에선 더더욱 미궁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혼란스러움을 가득 안고 외국 친구들이 묻습니다. 너는 한중일 3개 나라 사람들을 가려낼 수 있냐고요. 저는 농담을 섞어 더 과장되게 받아칩니다. ‘당연하지, 스치기만 해도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 말도 안 되는 얘기지요. 제 자신조차 같은 아시아 동포들 눈에 한국인으로 보이지가 않는데요. 외국에서 만난 우리나라 국민들도 저를 동향인으로 못 알아봅니다.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 각종 국적이 다 튀어나오지요.
여행지에서 친해진 친구들과 같이 길을 걸다 동양인을 마주친다? 그들은 어김없이 제게 물어봅니다. 들리지 않게 아주 작게요. ‘야, 저 커플은 어디 사람이야?’ 그럼 저는 재빨리 그들의 옷차림을 훑어봅니다. 치사한 수법이지만 입모양을 주시하기도 합니다. 그들이 한순간이라도 모국어를 내뱉는다면 바로 알아차리기 위함이지요. 나머지는 제 느낌에 맡깁니다. ‘으음, 중국 사람이야.’ 어차피 정답은 그 친구들도 모르지 않습니까. 이유를 물어보면 그저 분위기가 중국인이었다고 얘기합니다. 같은 아시아인만 알아차릴 수 있는 촉이 있다고요.
사실 해외로 여행을 자주 다니다 보면 대륙뿐만 아니라 유럽인들 사이에서 나라별로도 분간이 가능해집니다. 스칸디나비아 3국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출신은 유독 밝은 금발에 더 창백한 피부색을 갖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인은 남녀 불문하고 골격이 눈에 띄게 큽니다. 유럽 남쪽 지역으로 갈수록 피부와 머리색이 짙어지고 좀 더 강인한 이목구비를 뽐낸다 등이 있을 수 있겠네요. 요즘은 이민자가 워낙 많아 이를 그대로 적용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높은 신뢰성을 가진 생김새 특징이 나라별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중일 국민도 같은 방식으로 특징을 나눌 수 있을까요. 저는 어렵다고 봅니다. 색깔이 눈에 띄게 다른 외모도 아닌 데다 이목구비의 차이도 그룹 짓기 힘듭니다. 과연 AI는 알고 있을까요.
요즘은 피부색을 불문하고 어린 소녀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참 자주 듣습니다. ‘한국인이 제일 잘생겼어.’ 중국, 일본보다 K-드라마의 접근성이 높아진 덕인가 봅니다. 드라마 속 배우를 우리나라 표본으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모두 다 그렇게 생긴 게 아니라고, 외모가 출중하니 연예인 하는 것이라고 제가 아무리 말해줘도 한번 잘못 자리 잡은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생김새로 한국 사람을 가려내는 잘못된 방법이 세계적으로 펴져가는 중입니다.
3. 북한 가봤어요?
저는 해외여행 중 누가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오면 항상 이렇게 대답합니다. ‘남한(South Korea)’이라고요. 코리아라고만 말했다가는 ‘남한이냐 북한이냐’가 꼭 따라오기 때문이지요. ‘김정은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둥 이젠 진절머리까지 나는 북한 토크로 번지기는 걸, 애초에 강력 차단하기 위해서기도 합니다. 그래도 어딜 가나 북한 얘기를 피하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특히 여행자가 아닌 현지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말이지요.
그중에서 저는 북한에 가봤냐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습니다. 여행 초보시절에는 그렇게 묻는 자들이 기초적인 역사적 상식도 없는 일자무식이라고 속으로 비웃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별다른 관심이 없고, 멀리 떨어진 나라에 있는 이들에겐 모를 법한 사항인데도 말이죠. 이제는 차분하고 친절하게 답변을 이어갑니다. 약 70년 전에 둘 사이에 전쟁이 있었고, 지금도 전쟁이 끝난 게 아니라 쉬고 있는 상태기 때문에 두 나라 국민 간 인적 교류를 할 수 없다. 법적으로 방문이 금지돼 있다. 여기서 참 많은 외국인들이 놀랍니다. 내색은 안 하지만 그 모습이 제겐 더 신기합니다. 분단선 근처에 가면 망원경으로 북한 쪽 땅을 내다볼 수 있는 정도다. 남한에 오고 싶은 북한 국민들은 중국을 거쳐 우회하여 들어오기도 한다고 저는 덧붙입니다.
대부분 이 질문에 연달아 북한 사람을 실제로 본 적이 있느냐로 넘어갑니다. 그럼 저는 북한은 국민들의 해외여행을 철저하게 통제를 하고 있는 나라라는 것을 언급합니다. 극소수의 인구만이 국경을 자유로이 넘을 수 있다고 말이지요. 남한에 거처를 잡은 탈북민을 제외하고 일반 북한 주민을 남한 사람이 만나는 건 평생에 한번 볼까 말까 한 수준이라고 말해줍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저는 저만이 갖고 있는 북한 에피소드를 슬쩍 풉니다. 몰타에서 북한 출신 여성들이 운영하는 한식당에 갔던 일 말이지요. 그 이후부터는 아주 기계적입니다. 여행 다니며 하도 우려먹었던 터라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그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되풀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북한 여성들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정말 어색했다는 둥, 얘기하는 도중에 누가 총 들고 나와 잡아갈까 봐 무서웠다는 둥, 그래도 북한 음식은 참 맛있게 먹고 돌아왔다는 둥 말입니다.
통일이나 남북문제에 남다른 흥미를 가지지 않은 이상 우리나라에선 대부분 북한에 대해 얘기할 일이 잘 없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지 꽤나 시간이 지난 분들은 남북 역사조차 흐릿할 수 있습니다. 해외로 여행을 떠나기 전 인터넷으로 잠깐만 역사를 훑어보고 가더라도 외국인들의 북한 토크 공격에 잘 방어할 수 있습니다. 저도 질문을 자꾸 받다 보니 혼자 있을 때 북한과 관련해서 검색해보는 일이 잦아졌고, 어쩌다 보니 이제 어느 정도는 북한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설명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 외에도 라면 만들 줄 아냐, 한국에는 차가 다 흰색, 검은색, 회색이냐 등 의외의 호기심을 보이는 외국인들을 많이 만납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위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저도 나름대로 매번 제대로 설명을 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이상 참 쉽지 않다는 걸 여실히 느낍니다. 해외로 떠나기 전, 좀 더 재치 있고 정확한 나만의 답변을 준비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여행지에서 만난 이들과 색다른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릴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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