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적인 사람이 여행에서 외국인 친구 사귀는 팁
처음 해외여행을 떠났을 때 저는 욕심이 참 많았습니다. 없는 돈에 비싼 비행기 값을 치르면서 항공권을 단순히 이동 수단으로만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영어 회화 학원 비용이라도 뽑아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길 가는 사람에게 다가가거나 카페에서 옆 자리 손님에게 말을 거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다른 나라에서, 외국인이게 말입니다.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입 닫고 혼자 책이나 읽는 걸 좋아하는 제가 감히 시도조차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저 제 성격이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탓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여행 중 영어 연습을 하기 위해 찾은 방법, 더불어 실제로 크게 효과를 본 방법은 바로 ‘호스텔에서 친구 만들기’였습니다. 호스텔은 전 세계 배낭여행객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배낭 하나 메고 다른 나라를 돌아다닐 정도면 기본적으로 외향성은 장착한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오랜 호스텔 생활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특정한 조건의 환경에 있기만 하면 굳이 제가 노력하지 않아도 이들이 제게 먼저 다가온다는 걸요. 하지만 모든 호스텔에서 가능한 건 아니었습니다. ‘나도 당신처럼 내향적이지만 여행에서 외국인들과 어울리고 싶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호스텔을 예약할 때 아래의 사항을 검토해보세요.
호스텔에 가서도 혼자 방 안에만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똑똑똑, 나랑 얘기할래?’라고 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지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방을 쓰는 도미토리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 도미토리에서도 투숙객의 개인 공간을 존중합니다. 가끔 소곤대는 경우는 있으나 대부분 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호스텔에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장소는 바로 공용 공간(라운지)입니다. 저는 숙소 예약 플랫폼에서 적당한 가격에 위치도 괜찮은 호스텔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공용 공간 사진을 확인합니다. 굳이 TV나 책장이 없더라도 ‘여럿이서 모여 앉을 수 있는’ 소파가 있는 공간이면 충분합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호스텔에서 식당이나 카페를 운영하는 경우입니다. 이때 무언가 주문해야 앉을 수 있는 소파나 의자가 있는 곳이라면 그건 여기서 말하는 공용 공간이 아닙니다. 부담 없이, 하루 종일 빈둥거리고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곳이어야 합니다. 딱딱한 의자보다는 푹신한 소파가 있으면 더욱 오랜 시간 머무를 수 있겠지요? 아무래도 시간이나 날씨에 영향을 받는 야외보다는 실내가 더욱 좋습니다.
이런 조건을 갖춘 공간에서 머무르면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간단합니다. 그저 편안히 소파에 앉아 오고 가는 사람들을 향해 ‘하이!’하고 웃음만 지으면 됩니다. 어느새 어떤 외국인과 대화하고 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영어를 잘 못해도 외국인과 쉽게 대화하는 방법 및 대화거리에 관해서 추후에 포스팅하겠습니다!)
개인의 익명성을 걷어내고 타인과 쉽게 결속이 되려면 함께 있는 공간이 너무 거대해서는 안 됩니다. 방이 20개가 넘는 다소 대형 호스텔에선 아무리 적합한 공용 공간이 있다 해도 낯선 이에게 다가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이미 그룹 지어 오는 투숙객이 많습니다. 더군다나 호스텔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 지나치게 많을 경우에는 얼굴 익히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죠. 공간 자체가 크기 때문에 투숙객 각각이 익명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마음을 열기 쉽지 않은 환경입니다. 제 경험상 서양인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기 쉬운 중대형 규모의 호스텔은 최악이었습니다. 제가 심적으로 위축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그들도 이방인이지만, 제가 더욱더 이방인으로 느껴졌다고 할까요. 외향적인 사람들에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더 큰 기회가 되겠지만, 다소 소극적인 저 같은 내향인에겐 오히려 외톨이가 되기 쉬운 조건입니다.
숙소 예약을 할 때 건물 전체 사진을 보며 그 규모를 확인해보는 게 좋습니다. 기업형 호스텔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크기를 가늠할 적절한 사진이 없다면 선택할 수 있는 객실의 종류를 확인해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객실의 종류가 다양하다면 다소 큰 호스텔일 경우가 많습니다. 객실의 개수까지 추측하고 싶다면 현재와 먼 날짜를 선택하여 남은 방의 개수를 확인해볼 수도 있습니다.
애써 친해졌는데 그 외국인이 내일 떠난다고 하면 어떨까요? 새로운 사람과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해서 내향인들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한 번 친해진 사람과 함께 오래 머물 수 있는 게 더 효율적이지요.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야 좀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루, 단 몇 십분 만에 마음을 터 놓고 인생을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상대가 특정 의도를 품었을 경우는 가능하기도 합니다)
경비가 빠듯한 배낭여행객들은 최저가의 가격이 아닌 이상 그 숙소에서 연이어 숙박하기가 힘듭니다. 아무리 호스텔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고 투숙객들과 친해졌다고 해도 말입니다. 방 하나를 6-8명이 함께 공유하는 도미토리가 있는 숙소가 보통 가장 저렴합니다. 더군다나 홀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도미토리를 주로 이용합니다. 말동무가 필요한 외국인들이 많다는 것이겠지요.
여행 내내 한국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면 외국인들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먼 이국 땅에서 우리 동포를 만났을 때 그들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눈짓 한번, 말 한두 마디 건네다 보면 순식간에 그들과 친해질 겁니다. 그 뒤론 애써 외국인들과 말을 해서 언어 연습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사그라들지요. 사실 또 다른 심리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저는 주변에 다른 한국인이 있으면 제 서툰 영어로 대화하기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들이 제 영어를 듣고 평가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습니다. 애초에 이런 동포의 영향이 없는 곳을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저는 일단 숙소 예약 플랫폼에서 한국어로 작성된, 한국인이 남긴 후기가 지나치게 많은 곳은 피합니다. 같은 나라 사람이 좋은 평을 한 숙소에 더욱 신뢰가 가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예약 사이트가 전체 이용 후기를 의도적으로 동일 국가 이용자 순으로 정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외국어 회화 연습을 위해서라면 이런 유혹은 뿌리쳐야 합니다. 한국인에게 유명한 관광지에서는 어쩔 수 없이 숙소 후기에서 한국인의 흔적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그 개수가 너무나도 압도적이면 저는 그 숙소를 예약하지 않습니다. 긴 기간 간격으로 드문드문 한국인 후기가 남겨져 있는 것이라면 크게 상관하지 않습니다.
여행 중에 더 이상 내향적인 성격을 탓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먼저 말은 걸지 못해도 남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능력은 있으니까요. 외국인들과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좀 더 요령을 부려서 그들이 직접 저희를 찾을 수 있는 장소에 가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호스텔에서 외국인들과 자유롭게 어울려 더 색다른 추억 만드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