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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Oct 23. 2022

당신이 세계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다 버리고 떠난 제가 용감하다고요?

여느 여행 글처럼, 저는 당신에게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세요! 일단 떠나세요! 현재를 즐기세요! 용기를 내세요! ’라고 말하지 않을 겁니다. 타인의 말 한마디로 쉽게 떠날 수 있었으면 여러분은 벌써 오래전에 짐을 쌌겠지요. 저는 좀 더 색다르게 당신을 설득해보고자 합니다.






"처음에는 스페인어만 조금 배우다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마음을 바꿨어요. 직장도 그만두고 집도 정리했어요. 대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어요. ‘꿈’으로만 생각하고 마음에 품고만 있었던 일들을 하나둘씩 직접 해보고 있어요."



여행지에서 만난 외국인들에게 제 소개를 마치고 나면 감탄과 함께 이런 말을 듣습니다.


우와, 진짜 용감해요!!!


제가 정말 뛰어나게 용감해서, 한국에서의 안정된 삶을 버리고 세상을 떠돌 수 있었던 걸까요?



세계 여행을 버킷 리스트에 담아둔 당신은 왜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계신가요. 저 역시 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을 탓하며 혹은 여행 이후의 삶에 대한 두려움으로 십여 년을 주저앉아 있었기에 충분히 그 이유를 공감합니다.


먼저 경제적인 이유가 발목을 잡을 겁니다. 세계를 떠돌아다니려면 수천만 원은 기본적으로 있어야 할 테니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당분간은 일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직장에서 은퇴를 한 다음에 떠나겠다는 분도 있습니다. 한국사람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 여행담을 듣고 인생 상담을 요청하는 외국인들의 말도 똑같습니다.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적당히 돈이 모이면 시작하겠다.’


그들에게 저는 말합니다.


그때가 언제일까요? 몇 년이 지나야, 어느 정도 액수가 모여야 이젠 떠나야 할 때가 왔다고 느낄까요? 당신이 바뀌지 않는 한 아마 그 순간은 오지 않을 겁니다. 영영.


건방지게도 제가 이렇게 확언할 수 있는 이유는 저도 똑같은 과정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수입이 없는 학생 때는 직장 생활을 ‘적당히’ 한 후에 떠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돈을 벌고 안정적인 나날이 이어지자 더 망설여졌습니다. 최소 1년을 떠난다고 치면, 1년의 경력 공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 여행을 끝내고서도 돌아갈 자리가 있을 까도 저는 참 걱정됐습니다.



그것뿐이겠습니까. 굳은 의지로 수천만 원의 경비를 마련한다 하더라도, 그 큰돈을 여행에만 쏟아부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남들이 차곡차곡 돈을 모아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 나갈 때 나 혼자만 사회에서 뒤처질 게 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심리적 불안도 컸습니다. 따스한 거처는커녕 가족들과 친구 하나 없이 오랜 기간 동안 잘 지낼 수 있을 까, 외롭진 않을 까, 돈만 낭비하고 남는 거 하나 없이 돌아오는 게 아닐까 등등 말입니다.



그 당시에는 이 모든 게 정말 심각하고 결정적인 문젯거리였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제가 당장 떠날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게 참 낯설게 여겨집니다. 진짜 그런 걸 제가 고민했다는 게 어색할 정돕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요? 여행에 대한 관점과 방법을 바꾸면 됩니다.



일단 저는 비행기에 올라탈 때 ‘놀러 간다’라고 마음먹지 않았습니다. 며칠 짧게 다녀오는 일정도 아닌데 장기간을 관광객처럼 마냥 놀고먹지는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여정에서 제가 얻고자 하는 바와 할 일을 명확하게 정해두었습니다. ‘새로운 언어 배우기, 나만의 프로젝트 만들기, 한국에서 해보지 않은 일 시도해보기, 다양한 분야에서 최대한 많은 것 배우기, 매일 내 몸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등입니다.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제가 세계 어디에 있든 실천할 수 있는 일이지요. 몇 달 후, 몇 년 후 여행을 끝낸 제 모습은 예전 한국에서의 ‘나’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라는 게 틀림없었습니다.



이처럼 ‘나를 성장시키는 길’이라고 떠돌이 삶에 대한 관점을 바꾸고 나니 저를 사로잡고 있었던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앞날에 대한 불안도 남들보다 뒤처질 거라는 조급함도 없어졌습니다. 또 다른 나로 변화하는 길을 걷는 설렘과 기대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따라야 할 사회적 기대나 책임감에서 해방되어, 오롯이 나만을 바라보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디뎠다고나 할까요.



저는 당장 다음 달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오히려 즐겁습니다. 오늘 무언가를 경험하고 어떤 행동을 취한 결과가 색다른 내일을 만들어 줄 걸 알기 때문입니다. 다음 주는, 다음 달은 제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궁금하기까지 합니다. 그저 주말을 기다리고 매일 아침 끔찍한 기분으로 집을 나섰던 한국에서의 삶과는 딴 판이지요. 더군다나 남들과 처지를 비교할 일이 없어서인지, 매사에 체면 차리지 않아도 돼서인지,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돼서인지 한국에서 저를 얽매었던, 생계에 대한 우려가 꽤나 옅어졌습니다.






매일매일을 5성급 호텔 혹은 리조트에서 잠을 자고, 화려한 투어에 참가하고, 각종 맛집을 탐방하며 매 끼니 비싼 음식을 즐기는, 그런 ‘관광’을 여러분에게 추천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닙니다. 사실 웬만한 부자 아니고서는 그런 생활을 세계 각지에서 오랫동안 유지할 수 없겠지요. 어떤 여정을 만들어 갈지 그림을 잘 그려놓기만 한다면 지극히 평범한 당신도 어떤 두려움 없이 당장 세계 여행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저처럼요.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sammiechaf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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