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의 순간
사실 난 스스로 평범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삶을 살았다는 것은 아니고 그저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고 해야 할까.
나는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공감이나 위로와는 거리가 먼 분들이다. 자녀를 공감과 위로보다는 채찍으로 연단하는 부모였고 지금도 나는 그렇게 우리 부모님을 받아들이고 있다.
난 우리 부모님을 사랑하고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은 전혀 없다. 그냥 부모님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난 어렸을 때 내 약점을 스스로 부모님께 꺼내놓기를 극도로 꺼렸다. 지금도 부모님에게는 나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일절 이야기하지 않는다. 더 힘들어할 나 자신이 자명하게 보이기에.
그러다 보니 어린 나는 참는데 이골이 난 사람이 됐다. 지금도 어떤 고통이든 혼자 감내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퇴학당한 적이 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나를 버리기 시작한 것 같다. 부모님께 큰 마음에 부채가 생겨서인지 모를 일이지만,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좋은 대학에 한 번 들어가 보려고 노력했다.
그 당시에 어린 나 또한 그런 일들을 견디기 힘들었을 테지만, 마음의 상처를 돌보기보다는 나아감을 선택했던 나는 참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사춘기를 이후로 부모님과 갈등이 심했던 나는 그 이후로 조금씩 갈등이 줄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한 고등학교 시절 동안 공부와 씨름했던 나는 끝까지 공부를 위해 노력하진 못했다. 수능시험과 교육대학교 수시의 기로에서 당시의 안정적인 교사라는 직업의 위상과 이점을 부단히 설득하는 부모님 때문에 난 교대를 가야 했다. 그 당시에도 매우 혼란스러움을 겪었다.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명확하게 기억나는 생각은 '그래, 도전하지 말고 편안한 길을 선택하자, 난 내 생각만큼 잘 해내지 못할 거야'라는 식의 생각이었다. 나는 부모님과 극렬히 대립각을 세웠지만 이런 생각이 피어나자, 난 나를 버렸다.
지극히 현실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랐지만 난 지극히 이상적인 인간이다. 그래서 두 개의 성향이 공존한다. 현실적인 것 같은데 이상적인 아주 독특한 특징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대학교 시절 부모님의 통제에서 벗어난 나는 급속도로 나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자유로워졌고, 나의 진짜 모습을 찾아갔다. 현실적인 것을 버리고 꿈을 꾸게 되었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성악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음악대학을 다시 가기 위해 실기를 준비하고 시험을 준비했었다. 당시에 군인이었는데 부모님은 이 사실을 알고도 처음에는 저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실제로 내가 수능을 보고 실기시험을 보러 다니자, 갑자기 일체의 지원을 끊어 버렸다. 당시에 군인 신분이었던 나는 무언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엄청난 좌절감에 휩싸여 이불 안에서 꺼이꺼이 울던 내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난 이날 이후로 적절히 현실과 타협하는 이상적인 인간이 되었다.
인생에 가정은 없다. 지금 내 삶에 후회도 없다. 난 부모님의 사랑을 느낀다. 그래서 원망도 없다. 과거의 나를 떠올리니 좌절의 순간에 내가 보인다. 이 이후에도 내 인생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나에겐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의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과거의 나와 만나려 나의 삶을 유영했을 때, 어릴 적 좌절의 순간과 마주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위로, 지지와 수용, 용기가 필요했던 나에게 아니, 또 다른 나의 분신에게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 중 이런 공감이 필요한 모든 이에게 이런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