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7일
오늘은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벌초할 준비를 하고, 5시에 춘천을 출발에 원주 만종역으로 향했다. 강릉에서 출발해 만종역에 도착한 아버지를 모시고 논산에 있는 선산에 9시에 도착했다. 땡볕에서 벌초를 서너 시간 하고 목욕을 하고 점심을 먹고, 아직 살아계신 외할아버지와 친할머니를 뵙고, 오후 3시쯤 출발하여 다시 만종역에 아버지를 내려드리고 춘천으로 차를 끌고 집에 도착하니 저녁 7시가 가까워 온다. 몸이 너덜너덜해져서 머리가 작동을 멈췄다. 몸도 머리도 고장 나 버려서 오늘은 일기로 대신하려 한다.
오늘은 남기고 싶은 기록 첫 번째는 아버지와 단둘이 있었던 8시간 가까운 시간이다. 처음 있는 일인 것 같다. 아버지랑은 사이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데 부모님과 결이 좀 다르다 보니 그리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아버지의 삶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마음에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아 어색하진 않았다. 꽤 유쾌한 시간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둘이나 동생과 함께 삼부자가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두 번째 남기고 싶은 기록은 큰아버지의 말이었다. 벌초를 마치고 제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큰아버지가 나와 친척형, 친동생 셋을 두고 이야기하신다. 무덤을 차례대로 짚으시며, 여긴 누구고..., 내가 조용히 큰아버지께 말씀드렸다. "큰아버지 저희 나이가 마흔입니다." 했더니, "그러냐?" 하며 대답하신다. 기분이 참 묘했다. 다들 흰머리도 나고, 배도 나오고, 주름도 졌는데, 아직 아버지들 눈에는 아직 아이처럼 보이나 보다.
세 번째로 남기고 싶은 기록은 첫 돌 때 보고 다시 보는 조카였다. 이런저런 바쁘단 핑계로 친척형을 참 오랜만에 보았다. 조카 돌잔치 때 형과 조카를 보고 처음 보게 되었는데, 조카는 이미 5살이 되어있었다. 너무 귀엽고 발랄한 아이였다. 조카를 보며 참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글로 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자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기억은 우리 외할아버지와 친할머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내 기억 속에서 생생하게 떠오르는 순간들은 초등학교 저학년인 것 같으니까. 거의 삼십여 년 전에도 그분들은 나의 할머니고 할아버지셨다.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나에게 친근하고 포근한 할아버지 할머니 말이다.
이제 100세에 가까운 고령의 나이에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미지. 오늘 내 이미지 속 첫 기억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겹쳐서 보였다 그 이미지를 통한 감정들이 너무 신기했다. 이미지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 뭐랄까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휘몰아쳤었다.
세 부자의 방문을 너무 행복해하시고, 또렷한 정신으로 따듯한 덕담과 충고를 건네시는 외할아버지와 우리들을 잘 기억하시진 못하지만 소녀 같은 웃음을 지어 보이시고 손을 꼭 잡아주시는 할머니가 주신 오늘의 모습은 쉬이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오늘 하루 지치고 힘들었지만 가족들이 만들어준 아주 특별한 느낌의 향연이었다. 생각하고 글 쓰는 게 힘겨워 그저 오늘 하루를 나열하며 글을 채워갔지만, 하루를 되짚어가는 느낌이 나에게 치유의 힘을 주는 것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