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21] 사유의 발걸음

의지박약

by 명경

올초 20년간 마시던 술을 잠시 끊었다. 이유는 건강하게 술을 먹기 위해서였다. 나는 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좋은 음식과 곁들이는 술은 인생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좋은 벗과 마시는 술은 나에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위로를 제공한다. 하지만 나는 점점 늙어 가고 있고 절제 없는 쾌락은 나에게 뱃살과 다양한 건강의 적신호를 주었다.

나에게 술이란 평생을 함께 해야 하는 존재이기에 건강을 위해 과감히 6개월의 금주를 선택했다. 그 기간 운동 습관을 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나름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다시 술을 마시던 그날을 기점으로,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름 운동 습관이 형성됐다고 생각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운동을 하지 않은지 2주가 다되어갔다. 오늘 주제 글쓰기를 핑계 삼아 러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홀로 집 밖을 나서니, 의도적으로 챙겨 온 주머니 속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수년간 끊기로 마음먹은 담배였다. 사실 나는 담배를 거의 사지 않는데, 이 담배도 우연찮게 지인이 주고 간 녀석이었다. 담배를 끊기로 하면서 스스로 담배를 구입하지 않겠다 다짐하였다. 그러니 평소에는 어쩔 수 없이 금연을 하고, 다양한 모임과 술자리의 지인 중 흡연하는 지인이 있으면 담배를 얻어 피우곤 했는데, 그게 습관이 되어 그런 상황을 기대하는 처지가 되었다. 스스로 담배를 구입하지 않는다는 점을 위안 삼아 흡연하는 타인에게 기대어 나의 욕구를 충족하고 있었던 것이다. 담배를 피우다가 집 앞에 있는 나무를 한그루 보았다. 수년 동안 꼿꼿이 서있는 나무 한그루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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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보며, 사유에 젖어들었다. 인간이란 참 의지박약한 존재구나, 저나무는 오롯이 본인의 의지와 힘으로 어떤 역경과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서있는데, 인간은 타인에 기대어 본인의 의지를 저버리는 행위를 하고 있으니 참으로 나약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핑계 대지 않고, 누구에게 기대지 않으며, 누군가 좀 먹거나 베지 않으면 쓰러지지 않은 존재라니! 나무만 그러한가, 인간을 제외한 생명체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강자존에서 다른 존재에 의지하지 않고 살아남으려 노력한다. '인간만큼 의지박약 한 존재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너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라, 다시 한번 다짐했다. '내 의지를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내가 다짐한 바는 지켜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남은 담배를 쓰레기 통에 던져 넣었다.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 의문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저 나아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 핑계를 대면 운동을 2주 동안이나 하지 않았던 나 자신을 반성하면서, 목적지까지 쉬지 않고 달리기로 마음을 먹고 달리기 시작했다. 저쪽 멀리 가야 할 지점이 점처럼 보이는 시작지점에서 어떻게 저기까지 갈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며 달렸다. 포기하지 않고 달리니 어느 순간 그지검에 도달했다. 길을 틀었더니 다시 그만큼 멀리 가야만 하는 지점이 보인다. 막막한 심정이 들었지만 그저 달리니 다시 도착이다. 나의 의지를 세우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타인을 의지하는 것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인간을 이리도 강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라는 출발할 때와는 대척점에 서있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목표하는 곳에 다 달아 거친 숨을 내몰아 쉬는 동안, 지친 내 모습을 관조하며 드는 생각이었다. '기대고 싶다.', '함께 뛰고 싶은 동료가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은 누군가가 필요한 존재구나! 내가 건강해지고 싶고, 평생 누군가와 술잔을 기울이고 싶은 것은, 지켜주고 싶은 누군가가 있어서거나 함께 지내고 싶은 누군가가 있어서였구나. 나는 결국 나 자신을 위해서만 나를 세우고 싶은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동료를 위해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를 위해 나아가고 있구나.

나의 한걸음은 또 다른 어떤 이의 한걸음은 나를 세우면서 동시에 또 다른 무언가를 지지하기 위함이리라. 사람만큼 의지박약하나 강한 존재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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