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합니까?
사실 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평소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공상과 망상을 즐기는 나로서는 이야기라는 무한한 캔버스 위에 다양한 소재를 마구 흩뿌리고 싶었다. 얼추, 이야기의 구성을 마치고, 글을 조금씩 써 가고 있을 때, 교육은 세상을 바꿀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교육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갑자기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그 이후로는 이야기를 쓰는 일은 무기한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이 이상한 사명감은 갈등이라는 키워드로 세상을 바라볼수록 강해졌다. 이제는 내 인생의 과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위의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학교폭력 업무를 시작하고 회복적 생활교육을 접하면서부터이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지금 거의 모든 공교육 현장에서 생활교육의 지향점으로 삼고 있는 생활교육철학이며 회복적 정의에 기반한 개념이다. 회복적 정의는 정의를 실현하는 방식인데 응보적 정의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응보적 정의이라고 하면 쉽게 이야기해서 잘못한 만큼 합당한 처벌을 내림으로써 정의를 실현하는 방식을 말하고, 회복적 정의는 일어난 일로 인한 피해나 피해자를 회복시킴으로써 정의를 실현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 두 정의패러다임은 대비되어 보이지만 반대의 개념은 아니고 상호보완적인 개념이다. 양립 가능한 관점이란 이야기다. 이 두 개념을 공존할 수 없는 개념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 내용을 밝혀둔다.
회복적 정의는 갈등 결과에 집중하지 않고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집중하는 철학이기 때문에 '갈등'이라는 요소를 기존의 시선과는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것에 집중한다.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지?'라는 물음을 던진다. 이 물음의 결과가 바로 '학교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였다.
당신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도대체 갈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시라. 당신의 갈등해결프로세스를 말이다. 아마 대부분의 갈등상황에서 갈등을 해결해 주는 열쇠는 이것일 것이다. 바로 힘, 권력이다. 갈등상황에서 힘은 무기다. 그래서 많은 갈등 상황에서 사람들은 힘이라는 무기를 찾는다. 상대방의 잘못이 무기가 될 수도 있고, 내가 가지고 있는 지적우월함이 무기가 될 수도 있다. 또 특정 경험을 많이 했을 때, 나이가 상대방 보다 많을 때, 부모일 때, 아이일 때, 돈이 많을 때, 빈틈없는 논리를 세우기도 하는 등 다양한 힘을 무기로 내세운다. 그래서 이 힘의 무게추가 많이 기울면 기울수록 그 갈등은 매우 해결하기 쉽다. 하지만 그 기울기가 수평을 이루면 이룰수록 그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모든 갈등의 해결이 이런 양상을 띠지는 않겠지만 조금은 불편한 갈등 대부분을 해결하는 것은 힘이거나 어느 누군가의 양보일 것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회피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의 균형이 팽팽해서 불편한 갈등이 지속되는 것을 매우 꺼려한다. 그런 상황을 피할 수 있다면 회피하는 선택을 많이 한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바람직한 결과가 아니더라도 회피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편한 갈등 상황을 불가피하게 직면해야 한다면 내가 쓸 수 있는 다양한 무기들을 생각해 보고 준비한다.
학교폭력을 다루다 보면 이 지점을 격하게 공감할 수 있다. 어느 한쪽이 의심의 여지없이 잘못했고 증거까지 있다면 사안은 매우 처리하기 쉽다. 하지만 주장이 판이하게 다르거나 양쪽이 비슷한 잘못을 했을 때는 매우 처리하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명백히 한 사람이 잘못한 경우에도 억지스러운 주장을 통해 힘의 균형을 맞추려 하거나, 변호사와 각종 제도들을 동원하는 경우도 상황은 어려워진다. 상대방의 잘못을 꼬투리 잡으려 하거나, 학교 측의 대응에 불만을 갖기도 하고 과거 행적을 들추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갈등해결은 뒷전이 되고 본인들의 힘을 더하는데만 집중하게 된다.
양쪽으로 차곡차곡 올라간 힘의 별돌 사이에는 결국 깊고 깊은 골짜기가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갈등상황에서 왜이리 무던히도 힘의 균형추를 맞추려 애쓰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