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78] 부탁과 거절

거절당할 용기

by 명경

거절을 못하는 사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 자신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거절당하면 자존심이 당했던 경험...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고 싶다. 이런 상황들 모두 어려서부터 학습된 상황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 출발점은 ‘부탁’과 ‘강요’의 차이였다.

나는 교사이니 교실 안으로 들어가 보자. 나는 중등교사는 아니기에, 초등교사 입장에서 보고 싶다.

교사든 부모든 학생과 자녀에게 부탁의 탈을 쓴 강요를 많이 한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 부탁. 강요다. 교사나 부모는 학생과 자녀에게 부탁이나 제안을 거절당했을 때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낸다.


이기적이다, 너무 한 거 아니야, 어떻게 너만 생각할 수 있니,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우리는 그들에게 강요를 했었다. 잘 생각해 보면, 부탁했을 때 거절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지이고, 전혀 위화감이 드는 행동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탁을 거절당했을 때 상대방에게 죄책감을 그리고 수치심을 강요한다. 그런 지속적인 경험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어려서부터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상황들을 학습시킨다.

사실, 그래서 나도 거절당하는 것을 연습 중이다. 학생들이 그리고 내 딸이 내 부탁을 거절했을 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나도 그간 학습된 무의식 때문에 감정이 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머릿속으로 거절 가능성에 대해 인식을 하고 거절당하는 것도 당연할 수 있다고 자꾸 생각하다 보니, 조금씩 훈련이 되고 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강요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부드럽지만 조금 강한 어조로 이야기하거나, 부탁과는 다른 단어를 선택하려고 한다.

이런 면은, 여러 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강요와 부탁을 너무 혼동하여 쓴다. 부탁처럼 들리지만 그 속에 거절이란 선택지가 없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렇다 보니, 거절을 해도 되는 상황인지, 부탁인 건지 강요인 건지, 알 수 없는 상황들이 너무 많다. 내가 부탁을 하면서도 강요인지 헷갈려 상대방이 거절하면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부탁에서 거절은 당연히 전제되어야 한다.

‘부탁과 강요, 그리고 거절은 어쩌면 우리가 자연스럽고 오랫동안 만들어 온 바운더리를 부수는 예리한 창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교사로서 부모로서 자녀에게 그리고 학생에게 거절당할 용기를 준비해 보는 건 어떨까?

나의 바운더리를 지키기위해 거절할 수 있는 용기의 출발점은 거절당할 용기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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