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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벽한오늘 Sep 04. 2023

퇴사 3개월 차, 아이와 단 둘이 떠난 제주 한달살이

제주한달살이 중 가장 좋았던 추억

퇴사 3개월 차 아이와 제주 한달살이를 다녀왔다.


생각보다 더 심하게 시간이 빨리 흘렀다.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였던 아이와 제주 한달살이는 생각보다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24시간을 붙어있어야 하는 아이와는 투닥거리는 시간이 생겼다. 


계속된 여행일정으로 고단한 아이는 숙소에서 쉴 시간을 고집했고, 돈과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나는 어떻게든 어디든 하나라도 더 경험하고 만끽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여행일정을 짜고, 여행 관련 정보를 알아보는 일과 아이를 챙기는 일까지 오로지 내 몫이기에 정신이 없었고, 퇴사 후 시작한 일들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퇴사 후 확보 된 시간이지만 퇴사 후 불안한 시점임은 틀림이 없었기에 시점이 좋은 듯도, 좋지 않은 듯도 했다. 


하지만, 역시는 역시다.


고개를 돌리면 비현실적으로 펼쳐지는 제주의 풍경은 더없이 아름다웠고, 모든 풍경들은 여행의 고단함을 씻어주기 충분했다. 


아이와 함께 한 제주한달살이 중 가장 인상 깊은 기억을 뽑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그날을 뽑는다. 


제주 한 달살이의 하루, 하루가 아까워 정신없이 관광지를 돌아다녔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나와 아이의 방문지는 주로 제주 물놀이장이었고, 하루가 멀다 하고 제주 물놀이장 이곳, 저곳을 누비고 다녔었다. 

다양한 해수욕장부터 제주 도민 추천 물놀이장들, 마을에서 운영하는 풀장들, 계곡 폭포 스노클링 명소들까지 제주 곳곳의 물놀이장을 다녀왔다. 

그렇게 쉼 없이 새로운 물놀이장을 이동하고, 그곳의 시설을 파악하고, 물놀이를 하는 시간들이 이어지니 점점 체력이 바닥이 나기에 이르렀다. 

휴식이 좀 필요했다. 


그렇게 하루는 집에서 TV나 보고 쉬자고 맘먹고, 뒹굴 뒹굴 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유튜브를 맘껏 만끽하는 아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제주에 온 이래로 가장 편안해 보였다. 

여행이 쉼인지, 고행인지 의심이 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온전히 쉬고, 해 질 무렵 가볍게 산책하자며 집을 나섰다. 

아이는 그것도 싫다고 했지만, 제주에서의 하루를 그냥 보낼 수 없다는 나의 강박으로 인한 강요가 승리했다. 


그리고 산책을 나선 곳은 '남원포구'였다. 



근처에 다이소나 하나로 마트가 있어서 장도 볼 겸 그곳으로 향했고, 장을 본 후 포구를 산책하기로 했다. 

더운 여름이라 해질녘이나 해가 뜨기 전이 산책하기 좋은 시간인데, 제주에 와서 한 번도 그 시간을 활용해 본 적이 없었다. 

포구를 따라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배경 삼아 걸었다. 

해지는 바다는 더없이 낭만적이다.

핑크빛의 배경색에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며 풍성한 그림을 만들어낸다. 

하늘과 이어진 에메랄드 빛 바다는 낭만에 불을 지핀다. 


그렇게 분위기에 취해 아롱아롱한 정신으로 산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물고기를 잡았다며 한껏 자랑하며 아이에게 잡은 물고기를 구경시켜 주었다. 

가족 단위로 제주에 여행 왔는데, 마지막날 낚시를 하고 있단다.

친화적 좋은 아이가 거침없이 다가가 가족 중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들으라는 듯 말한다.


"나도 하고 싶다"


갑자기 가족 중 형이 다가와 "해볼래?" 하더니 아이를 낚시하기 좋은 언덕 아래로 내려올 수 있도록 잡아주었다. 

그리고 낚싯대에 미끼를 끼워 내민다. 


나는 낯을 가려서 뭔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지만, 아이는 신이 나서 낚싯대를 던진다. 

챕을 제법 날카롭게 이어간다.

미끼를 끼우고, 낚싯줄을 잡아주는 작업이 꽤나 번거로운데도 형은 자상하게 설명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몇 번의 챕을 거치더니, 드디어 아이의 미끼에 물고기가 물었다. 


드디어 물고기가!!!



하지만 물고기가 새끼인 탓에 놓아주어야 했고, 아이는 그렇게 몇 번을 더 새끼 물고기를 잡아 올렸다. 


가족들은 새끼지만, 미끼를 먹고 도망가는 경우가 많았던 지라 아이를 신기하고 기특하게 바라봤다. 

이어지는 낚시 후 아이가 직접 새끼 물고기를 놓아주고 싶다고 했다.

물고리를 처음 만져본 아이는 생각보다 느낌이 이상했던지 물고기를 바다로 획 집어던졌다. 

그 순간, 바닷물에 부딪친 물고기가 기절했다. 

죽은 것인가, 기절한 것인가..

여행온 가족과 아이와 나 모두 일순간 숨을 죽이고 새끼물고기를 바라봤다.

제발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바라봤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도록 물고기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물고기가 꿈틀..

다행히 물고기는 정신을 차리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모두가 숨을 고르며, 다행이라며 말했고, 이런 상황이 우스워서 문득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 처음 본, 그저 지나가다 마주한 가족들과 함께 낚시를 하고, 함께 웃고, 같은 마음으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이 시간으로 낭만이 한 스푼 더해졌다. 


한참을 함께 낚시한 후, 가족과 헤어지고 아이와 나는 산책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해안도로 밑 한쪽에서 사람들이 물놀이하는 것을 봤다. 

갯바위로 파도를 막아줬고, 물이 깊지 않아서 아이들이 튜브를 타고 놀고 있었다.

이런..


그대로 뛰어들었다. 


옷도 챙겨 오지 않았고, 물놀이 할 생각도 전혀 없었지만, 그대로 티셔츠를 벗고는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물 온도가 적당했고, 해질녘 바닷물 속에서 본 노을은 더없이 고왔다.

아이와 맨 몸으로 수영도 하고, 물장난도 치며 한참을 놀았다.

고둥도 있고, 바위 틈으로 물고기들이 지나갔다. 

서로 얼굴을 겨냥하고, 물 장풍을 날리고, 물속에서 엎고 수영하고, 손잡고 수영하고, 물속에서 할 수 있는 놀이는 정말 무궁무진하다.


어느새 해가 넘어가고 있었고, 우리는 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해안 도로 쪽 둘레길을 따라 걸으며, 길 잃은 강아지를 보고 신고해 줘야 하나.. 걱정하며 따라가 보기도 하고, 마을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보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를 귀동냥해 듣기도 했다.

아이와 제주한달살이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여느 유명한 관광지보다 집 앞을 산책하다 바다로 뛰어든 그날은 더없이 낭만적이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어떤 계획도 없이 즉흥적으로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는 움직이는 것.

모르는 이와도 스스름없이 마음을 나누게 되며, 함께 웃는 것.

아름다운 풍경을 아무 생각 없이 넋 놓고 바라보는 것.


이것이 여행의 낭만이다. 


그 어떤 멋지고, 유명한 곳보다 그런 낭만적 시간들이 내게는 한 달 중 최고의 순간이었다. 



다시 한달살이를 하게 된다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보다는 자연스럽게 그곳을 느끼며 여유 있게 낭만에 취할 수 있는 시간을 더 가지고 싶다.


여행은 고단하다.

아이와 단 둘이 한 달을 보내는 여행은 더없이 고단하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한 제주한달살이는 생각보다 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아이와 나는 서로를 의지하며 더 세심하게 살폈고,

한 달 여행의 소소한 묘미도 느꼈다. 

무엇보다 낭만적인 섬 제주를 한껏 들이키고 왔다는 것이 뿌듯하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종종 허공에서 장풍을 날리며 말한다. 

"아~ 제주도인줄~"

물장풍이 습관이 되었다는 뜻의 허세 가득한 행동이다. 


그리고 매끄럽게 나아가는 도로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제주도였으면 20km는 너무 먼 거리였겠지?!"


아쉬운 점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좋았다. 


다음에는 울릉도나 강원도 쪽으로 한달살이를 다녀와보고 싶어졌다. 


다음에는 더 잘 놀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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