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실패였다. 실기시험에서 세 번 연속으로 떨어지면, 여기 법규상 필기시험 합격 효력이 상실되고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했다. 시험 날짜를 잡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자국 면허가 있어도 타주와 달리 바로 교환해주지 않는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미국 운전면허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대기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DMV로 밀려들어왔다.
사실 이 나라에서 주는 운전 면허증이 지금 시점에서 서진에게 굳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제 석 달 뒤면 귀국이었다. 서진은 정식 운전 면허증 없이도 1년 가까이 아이 학교며 이십 분 프리웨이를 타야 하는 코스트코도 잘만 다녔다.
남편이 그런 서진에게 ‘사서 고생 한다’며 핀잔을 준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미국의 운전면허증을 꼭 가지고 싶었다. 서진이 차에서 내리며 그렇게 얘기하자 남편이 대꾸 없이 차고 벽의 버튼을 손가락 대신 열쇠 끝으로 눌렀다. 왜 매번 이럴까? 서진이 그런 생각을 한 순간 차고 문이 드르륵 내려와 서진은 하마터면 거기에 끼일 뻔했다.
남편은 아내가 괜찮은지 한번 돌아보지도 않고 유유히 외부로 난 아파트 계단으로 올라갔다. 서진은 거기에 대고 한소리를 하려다 참았다.
당신은 영영 내 마음을 모를 거야. 경찰차만 봐도 움츠러드는 내 마음을. 나도 당당해지고 싶다고.
서진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남편이 홱 뒤돌아봤다. 괜찮다고 이야기해주려는데.
“핸드폰을 두고 내렸어.”
남편과 엇갈렸다.
*
그의 등장에 일순간 모두가 함께 얼음땡놀이에서 술래를 만나 ‘얼음!’이라고 외친 것처럼 굳었다. ‘땡’이라고 해줄 사람이 남지 않았으니 술래의 완벽한 승리였다. 그는 자신이 몰고 온 파장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심상한 표정으로 카운터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하필 바로 카운터 앞 이인용 테이블에 앉아 있던 서진은 그 경찰의 듀티벨트 위의 각종 장비를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서진의 눈에 그것들은 비상시를 위한 것이라기엔 전장에 나가는 병사가 거의 무장한 수준으로 보였다. 실탄을 장전한 권총, 수갑집, 각종 크고 작은 곤봉들, 플래시 라이트. 제복을 벗어던지면 그리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백인 청년은 단지 그것 때문에 자신의 원래 모습보다 배로 위압적으로 보였다. 그는 나머지 평범한 사람들의 세계와 유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갑자기 나타난 그는 사람들을 지켜주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마치 감시하고 심판하기 위해 등장한 것 같았다.
정작 그는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문을 하며 바리스타 킴벌리와 얘기를 주고받았다. 서진은 무슨 내용인가 귀를 쫑긋 세웠지만 알아들을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그와 대화를 나누는 킴벌리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톤은 올라갔다.
음료 주문을 마친 그가 자신이 담당하는 사건의 용의자라도 찾는 듯 목을 빼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큰 소리로 웃으며 담소를 나누던 사람들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서진은 모두 그가 빨리 나가줬으면 하는 마음을 공유한다고 느꼈다. 엉뚱한 연대감이었다.
그때 돌연 몸을 틀어 뒤를 돌아본 그와 서진의 시선이 딱 마주쳤다. 서진은 숨이 턱 막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이 무면허로 운전했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설마 다 알고 왔나? 프리웨이에서도 한번도 안 걸렸는데 뜬금없이 카페에서? 그 순간에도 그의 눈이 한국의 화창한 가을 하늘처럼 푸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잡으러 왔다고 하면 뭐라고 해야 하나? 설마 여기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저 수갑을 내 손목에 철컹 채우는 건 아니겠지? 분명 그런 상상들이 터무니없다는 걸 알면서도 서진의 심장이 계속 쿵쿵거렸다. 제발.
*연재 요일을 토요일로 변경합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