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르 마랭 <제자리에 있다는 것>
이런 꿈을 꿉니다. 교실에 들어가기 전에 심호흡을 합니다. 이미 아이들은 서넛씩 무리지어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댑니다. 나는 잠시 주저합니다. 어느 곳으로 가든 일단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어색하게 구석에 서서 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봅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 어떤 것도 기다리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이 모든 것이 너무 자연스럽다는 듯이.
하지만, 물론 전혀 괜찮지 않습니다. 고독하고 두렵기까지 합니다. 내가 있어야 할 장소를 찾아 나는 헤매지만, 나를 기꺼이 언제나 환영해주는 그런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든, 어느 곳이든, 나는 틈새를 찾아 나를 끼워넣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나는 보통의 사람들처럼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요.
비단 교실뿐이 아닙니다. 직장, 사교모임, 심지어 낯선 곳에서조차 우리는 소속을 찾아 헤맵니다. 평생에 걸쳐 우리는 우리가 속할 장소를 찾아 방황합니다. 내가 있는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바로 '그곳'이어야 비로소 우리는 안심할 수 있으니까요. 인간에게 있어 제자리에 있고자 하는 욕망은 본능인 것 같습니다. 반면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 아닌 듯한 어긋남의 불편 또한 항상 따라옵니다.
대체 우리는 언제쯤이면 있어야 할 바로 그곳에 제대로 자리잡은 안정감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니, 애초에 그런 감정을 경험은 할 수 있는 걸까요?
그랑제꼴 준비반의 철학 교사인 저자 클레르 마랭은 이런 인간의 좌초된 느낌을 여러 겹으로 해체합니다. 그게 나만의 개별적인 특이한 소외감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유하는 생래적 고독임을 재확인합니다.
즉, 우리는 누구나 지금 여기에서 방황하기 마련인 겁니다. 아무리 내가 잘 나가도 심지어 셀럽이더라도 어떤 장소에 들어갈 때 그 장소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 긴장하는 건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장소, 시대와 불화하는 어긋나는 느낌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거죠. 여기에서 저기로 가면 가실 것 같은 그 어긋남은 우리가 인간이라면 언제나 우리 몸안에 품고 이고 가게 되는 일종의 본능 같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족하는 인간에게 발전이나 성장은 불가능할 테니까요.
그러니 지금 여기 제자리에 있지 않은 느낌으로 고독을 느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나를 추동하는 건 정주가 아니니까요. 그 '불일치'의 감정으로 우리는 나아가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