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사라질 이 모든 환상

-미시마 유키오 <소설가의 휴가>

by blanca

혹시 십대 시절을 기억하시나요? 이 세상은 온갖 가능성으로 가득 차고 아름다움과 추함과 비탄이 함께 공존하는 생생한 현실과 몽글몽글한 몽상으로 뒤범벅되어 있는 그 시간을요. 세상과 나 사이에 드리워진 휘장을 걷어내는 일이 결국 나이듦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는 흔히 내면의 아이라는 것을 품고 살아간다지만, 이는 결국 십대 시절의 그 비대해진 자아, 욕망, 환상을 환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온전히 잃어버려도, 잊어버려도 우리는 불행합니다. 미시마 유키오는 특히 이 지점을 예리하게 간파한 작가가 아닌가 합니다.


image.png


30대에 이미 노벨문학상을 받을 거라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이 작가가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것은 십대 시절 소년 시기였습니다. 미와 추, 행과 불행, 환희와 절망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공존하는 것이라는 것을 안 것도요. 그의 작품의 서정성과 낭만성은 이미 이 시기에 자라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그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십대 시절을 이야기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이 책에 실려있는 <팽이>라는 에세이는 다분히 작가 자신의 삶의 복선처럼 보입니다. 이미 유명한 스타 작가가 된 미시마 유키오에게 어느날 찾아온 십대 소년은 어쩌면 작가 자신의 과거의 혼령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바쁘고 귀찮은 터라 그 소년을 돌려보내려고 허용한 단 하나의 질문은 놀랍게도 작가 자신의 죽음의 시기에 관한 것이었답니다. 이 당돌한 질문은 작가를 온통 사로잡습니다. 왜 한창 가장 잘 나갈 때 작가는 이런 질문을 받아야 했고, 그 질문에 잠식당했을까요. 이건 마치 우리의 삶과도 닮아 있습니다. 가장 행복한 그 찰나에도 우리는 여지없이 이 모든 것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생의 유한성과 무력함을 당면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앎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십대에 모든 것을 머리로 인식합니다. 즉, 우리가 믿고 추구하는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죽음이라는 소환장으로 좌절될 것임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상을 밀고 나가야 하는 삶이라는 것의 그 근원적 신비함에 대해서는 당연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여전히 남아 있을 것임도 더불어서요. 예술이란 바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금요일 연재
이전 21화어제 놓친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