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서 인간으로

-로베르토 비조키 <가문에서 가족으로>

by blanca

2026년이 온 지 벌써 한 달 가까이 지나버렸습니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때로 두려운 것은 이제 우리에게 지니는 시간의 가중치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시간은 우리만을 관통하는 게 아닙니다. 무서운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 AI의 시간도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내가 흘려보낸 시간이 이들의 축적의 시간이자 나를 이기기 위한 발판이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오싹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미래를 이야기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퇴행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나타나려는 와중에도 17세기 말 피렌체의 한 귀족 가문의 흥망성쇠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그럼에도 살아나가며 이어지는 한 가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미래도 우리를 넘어서서 유구하게 흐른다는 것을 믿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 책의 저자는 브라치 캄비니라라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한 귀족 가문의 문서보관서에서 한 가문의 연대기를 복원해냅니다. 유언장, 각종 세금 계산서, 주고 받은 편지, 일기 등을 통해 집안의 가장이 집안의 유산을 지키고 가부장적 질서를 지켜내어 유한한 삶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은 때로 자녀들과 충돌하고, 형제, 자매와 불화하고 질병으로 사회적 변화로 도전 받습니다. 18세기에도 아버지의 뜻을 거슬러 다른 도시로 여행을 떠나버리는 이십대 아들의 모습은 기성 세대와 신세대의 대립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버지에게 외모를 꾸미는 데 돈을 너무 많이 쓴다고 야단을 맞고, 허락 없이 유흥과 여행을 다닌다고 잔소리를 들었던 아들은 나이들어 자신을 닮은 무모한 청춘을 보내는 조카에게 조언을 하는 근엄한 삼촌으로 변합니다. 그 시대에는 당연히 여기던 장자 승계의 원칙 때문에 원하지 않아도 수녀원과 수도원으로 보내졌던 차남 이하 자녀들의 애환은 시대적 상황이 때로 얼마나 사람을 근시안적으로 만드는지 엿보게 합니다.


40년간 다섯 남성과 한 여성의 삶을 따라가며 다시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의 삶은 어떤 기록으로 남을까요? 2026년 여전히 불안에 떨며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삶의 아카이브를 열어젖힐 후손을 상상해 봅니다. 미래 시점에서 바라본 우리의 현재 모습은 불안에 잠식되어 끊임없이 유언을 갱신하고 세금계산서를 세던 18세기 귀족들의 모습과 과연 얼마나 멀어져 있을까요? 내가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분투했던 그들이 지켜낸 가치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는지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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