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놓친 손

-우치다 다쓰루 <커먼즈의 재생>

by blanca

모두가 자본주의적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의식주의 가격이 그것을 걸치고 먹고 소유하는 사람의 능력이자 본질적 가치인 것처럼 호도되는 사회에서 내가 아프거나 무능력하거나 늙는 일은 마치 무능력이자 사회 전체에 손해를 끼치는 일처럼 느끼게 되는 날들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펼치는 교과서에는 인간은 존재만으로 존엄하다는 문구가 있는데 막상 그곳에서의 성적 때문에 목숨을 끊는 아이들이 해마다 나옵니다.


이러한 아이러니 속에서 우리는 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남들이 코인, 주식, 부동산, 자녀 교육에 미친 듯이 투자할 때 나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뭔가 하나라도 더 큰 걸, 더 많은 걸 얻어내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나 혼자 고고하게 그런 모든 것들은 못 본 척, 명상을 하며 이상주의적 가치를 찾아 구도의 길을 떠나야 행복해지는 걸까요? 어떤 선택을 하든 불안해집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타인에게서 시선을 돌려 오직 내 내면으로 가는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데미안의 가르침을 일상적으로 실행하기는 어렵게 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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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런 고민에 친절하고 명쾌한 안내서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커먼즈의 재생> 저자 우치다 다쓰루는 우리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극심하게 느끼고 있는 빈부격차로 인한 고통, 타인과의 불통으로 인한 고독에 대한 해법으로 공동체와 연대를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쉽고 뻔한 이상주의적 결론이라 여길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건 인간의 이타주의에 기대는 복지 제도가 아닙니다. 늙고 병들고 약해지는 시간이 인간이라면 타인의 경험이 아니라 온전히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것이라는 기본 명제에 공감하고 결국 내가 그런 이들에게 나누는 손길이 내게도 확실히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인간이 극도로 이기적으로 굴거나 불안을 느끼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이토록 불안하고 타인에게 때로 냉랭해지는 것은 사실, 내가 약해졌을 때 내쳐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나 내가 무일푼이 돼도 건강을 잃어도 근로능력을 상실해도 도와줄 제도나 누군가가 있다는 확신이 드는 사회라면, 어떨까요? 집단의 모든 구성원은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나의 또 다른 형태'라는 우치다 다쓰루의 이야기는 그래서 설득력을 얻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도울 거라는 확신이 있는 공동체라면, 친절은 요구하지 않아도 발휘됩니다.


쉽지 않은 이야기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고도압축성장을 이룬 나라에서 개발도상국이었을 때보다 훨씬 불행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진 현실을 타개하는 데 이 작은 책 한 권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개인주의가 편하고 편리한 면이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개인주의가 장악한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들이 느끼는 고통은 그 책임마저 개인의 것으로 환원해버립니다.

인간은 언제가 되든 결국 상대적으로 약자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스친 한 사람은 우리의 과거나 미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오늘 내가 느끼는 불안은 그 기억이 몰고 온 예감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내일이 불안하지 않은 사회는 그런 타인의 손을 기꺼이 잡을 수 있는 공동체적 분위기 안에서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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