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이는 당신 아이가 아니다

-우샤오러 <네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

by blanca

저출산 시대에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분명 용기와 결단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모든 행위가 자본주의적 교환 가치로 환산되는 풍조가 만연한 사회에서 자녀 양육 또한 하나의 전시 가능한 성과로 포장되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그것은 계층 사다리를 가능케 하는 사교육의 장으로 변질됩니다. 아직 모국어도 채 완성되지 않은 어린 아이들에게 외국어 교습과 사고력 수학, 영재 교육 등을 하는 모습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머리로는 아직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다 같이 달리는데 우리 아이만 홀로 뚝 떨어져 천천히 자유롭게 바깥놀이만 하며 키우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닙니다.


모두가 불안한 지금, 그 불안이 가장 강력하게 투영되는 대상은 바로 우리 아이들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 나보다 더 많은 직업 기회와 더 편안하고 풍족한 환경에서 지내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과연 잘못된 걸까요? 이쯤 되면 누구나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어디까지가 내 욕심이고 어디서부터가 진정 내 아이를 위한 지점인 걸까요? 솔직히 이 미묘한 균형을 찾는 게 부모가 되는 일의 가장 어려운 과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저도 매번 헤매게 되는 대목입니다. 자유롭게 풀어줬다가 어느 순간 이 판단을 후회하게 되는 게 아닐까요? 대체 부모의 자녀에 대한 방임과 구속과 사랑과 폭력의 경계는 어디인 걸까요? 누가 여기라고 콕 집어 말해줄 수는 없는 노릇일까요?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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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권의 사교육 열풍도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실제 과외교사였던 저자의 경험이 투영된 이야기는 묘하게 우리나라 현실과 겹칩니다.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때려달라고 먼저 부탁하는 학부모, 달라는 용돈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지만 정작 아이의 마음에는 관심 없고 흥청망청 자신들의 욕구만 충족하는 부모, 놀다 다친 아이의 친구 전부와 담임을 가해자로 지목하고 괴롭히다 결국 교사를 학교에서 떠나게 만드는 어머니, 아이의 성적 정체성을 무조건 부정하고 부인부터 하고 보는 부모 등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사례들이 과외 교사의 시선을 통과하여 적나라하게 그려집니다. 이제 우리는 이 정경을 보며 어른들이 얼마나 순간 아이에게 나쁜 상대로 전락하게 되는지 실시간으로 이입하게 됩니다. 왜 바깥에서 보면 이리도 잘 보이는데 우리는 그 안에 들어가면 어느새 아이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들만 하게 되는 걸까요?


이 이야기들에서 없는 것은 부모들이 그렇게나 아이를 위해 한다고 외쳤던 강압적인 행동들에서 빠진 '사랑'입니다. 부모들은 모두 불안합니다. 더 많은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요즈음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그 과정을 전두지휘하고 비용을 지불하는 일이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아이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결국 성공적으로 독립해 나가도록 아이의 판단과 선택을 믿어줘야 하는 그 불안을 기꺼이 감당하는 일이 얼마나 두렵고 힘든 것인지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부모가 되는 일은 그 불안을 감당하는 일입니다.


이 책의 서문에 실린 칼릴 지브란의 <아이들에 대하여>는 결국 이 아홉 편의 이야기가 지향하는 바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사실 이 한 문장이면 되지 않을까요?



당신의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닙니다.

<중략>

-칼릴 지브란 <예언자> 중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들의 아이를 우리 소유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아이를 망치게 됩니다. 그들이 우리를 통과해 나가는 '화살'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우리를 활처럼 구부려 화살이 멀리 나아가는 것을 격려하게 될 겁니다. 우리가 '궁수'가 아니라는 건 반드시 잊지 말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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