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정 <죽은 다음>
가수 이찬혁의 <장례희망>을 들어보셨나요? 노래 제목을 언뜻 들었을 때 저는 당연히 <장래희망>이라 생각했습니다. 설마 나의 장례식에 대한 희망사항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죠. 누구나 자신의 죽음 이후를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건 쉽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 노래는 말 그대로 나의 장례식이 어떤 모습이면 좋겠다, 는 희망 사항을 그린 노래입니다. 노래를 듣다 보면 저도 모르게 먹먹해집니다. 왜 우리는 우리의 그 너무나도 당연한 '죽은 다음'에 대해 생각하거나 대화하거나 준비하기를 꺼릴까요?
그런 점에서 희정 작가의 <죽은 다음>은 지금까지 읽어왔던 그 어느 에세이와도 달랐습니다. 일단 책 표지부터가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들꽃이 덮은 언덕은 사실 봉분입니다. 표지부터가 무덤입니다. 그런데 이렇에 예쁜 무덤 보셨나요? 저도 책을 다 읽고 나서야 표지 이미지의 의미를 알아차렸습니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 책이 무겁고 어둡기만 할 거라는 예상은 경솔한 태도였습니다. 물론 우리의 장례 문화를 사회적 담론으로 승격시킨 이야기의 진지함을 감안하면 분명 이 책은 가볍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 장례 절차를 둘러싼 이들의 취재 구술 기록은 사이사이 생의 경쾌함과 유머가 스며 있어 지나치게 어둡거나 슬픈 분위기만의 책은 아니라는 겁니다. 죽은 다음을 이야기하면서 생의 속살을 엿본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희정 작가는 "밖에서 엿보는 사람이 되기 싫다면"서 실제 장례식의 노동자가 됩니다. 본인이 직접 의전관리사 실습을 받으며 장례 현장에 들어간 겁니다. 우리나라 옛 전통 상장례 절차를 순서대로 따라가는 목차 안에서 독자도 실제 장례 절차의 실무를 경험하며 실질적인 조언도 얻게 됩니다. 30년 경력의 수의 제작자, 선소리꾼, 여성 화장기사, 장묘업체, 장례기획자와의 인터뷰 내용은 어느 하나 마음을 울리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담담하게 시어머니에게서 전수 받은 가업으로 수의 바느질을 하는 며느리는 이 일이 "마음이 쉽지가 않아."라고 말합니다. 명당을 찾아 묘지를 만드는 이는 정작 본인은 화장해 달라 합니다. 쉬는 시간 그는 책을 읽습니다. 장례가 얼마나 가부장적인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사랑하는 딸, 아내의 애도를 방해했는지 그리고 이런 문화가 어떻게 개선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천적인 풍경도 나옵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죽음에도 파고듭니다. 모두가 보이는 가치와 돈으로 환산되는 계량적 효율에 집착하는 사회는 죽음의 현장도 시장으로 변질시킵니다. 유족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에 대한 제대로 된 애도 대신 그 실무에 매달려야 합니다. 그 사이로 잃어버리는 것들을 대면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누구나 남의 장례식에 가다 결국 내 장례식을 치르는 날이 옵니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그렇게 되면 결국 또 커다란 숙제를 남은 사람들에게 안겨주게 됩니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나의 끝 이후 펼쳐질 풍경에 내 의사를 내 계획을 밝혀둠으로써 우리의 '장례희망'은 우리의 '장래희망'처럼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지 않을까요? 꼭 이루어지지 않아도 무의미하지 않은 그런 어린 시절의 장래희망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