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샌디프 자우하르 <내가 알던 사람>
여러분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을 하나 고르라고 한다면, 어느 시절을 선택하게 될까요? 저에게도 되감기를 하며 소중히 간직하는 몇몇 장면들이 있습니다.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에는 사람이 죽어 천국으로 가는 경유지인 림보에서 망자들이 가장 아끼는 추억의 한 장면을 영상화하는 작업을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린 시절 놀이공원에서의 신나던 하루, 사랑하는 연인과의 꿈 같던 날 등 사람들이 가장 간직하고픈 추억은 저마다 각양각색입니다. 기억은 그 사람이 죽음 앞에서 회고하게 되는 삶 그 자체가 됩니다.
그런데 비극적이게도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에 이 기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을 못 알아보기도 하는 고약한 질병에 시달리게 됩니다. 내가 사랑했던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고 내가 당연시했던 일상의 일들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래도 나는 여전히 나일까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아버지, 어머니, 할머지, 할아버지도 여전히 이전의 그 사람일까요
여기에 그런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의 곁을 지켰던 아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들은 심지어 저명한 심장내과 의사입니다. 즉, 그 과정에서 필요한 의료적 처치나 편의에 있어서 적어도 소외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게 과연 이 고통스러운 여정에 큰 도움이 되었을까요? 아들은 확신하지 못합니다. 알츠하이머를 앓으며 아버지를 아버지이게 했던 학문적 성과, 타인에 대한 배려, 세상 일에 대한 자신감 등은 모두 파도에 쓸려가듯 가뭇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저자 앞의 아버지는 파킨슨병으로 이미 떠난 아내의 죽음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대소변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무력한 흔적으로만 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비통하게 지켜보는 아들의 시간은 홀로 남은 아버지를 간병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들로 얼룩집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전쟁과도 같은 시간들이 지나갑니다. 경제적으로도 의료적으로도 아버지를 돌보는 일에는 깔끔한 해법이 없습니다.
<내가 알던 사람>은 그런 여정에서 내가 알던 아버지를 기억해 내고 애도하면서도 무거운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는 기억을 잃으며 아들에게 난생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들에 대해 아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합니다. '내가 알던 사람'은 내가 알지 못하는 형태로 나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루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지만 무의미하기만 한 고통의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명절, 부모님과 여기 지금 있는 시간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나와 내가 맺는 관계도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결국 온전하게 기억을 담고 있든, 그 기억을 망실하든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이후에 무엇이 있을까요?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 어떤 것이 없어도, 나는 여전히 나이고 내가 사랑하는 가족은 여전히 가족이라는 답은 지나친 낙관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