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엘리엇 <미들마치>
2024년 2월입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특수성이 우리만의 것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런 고민, 이런 고통, 이런 분주함, 이런 물질만능주의, 이런 속도. 특히나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루고 아이를 낳는 것은 더욱 그렇습니다. 결혼과 자녀 출산에 대한 부담이 나날이 늘어만 가는 요즘 사회적 압력과 기대에 맞춰 결혼하고 큰 고민 없이 아이를 가졌던 과거 세대의 이야기는 여전히 공감할 대목이 있을까요?
대답은 놀랍게도 그렇다, 입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연애관과 결혼관은 물론 시대적 특수성을 띠지만, 그 안의 인간관계의 역학과 고민은 놀랍게도 지금의 우리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심지어 기시감을 느낄 정도로요.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는 언뜻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오만과 편견>이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그 남녀 사이의 은밀한 밀당과 사회적 기대에 대한 이야기라면, <미들마치>는 그 이후에 파생되는 수많은 현실적 문제와 그 속을 헤쳐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즉 더 현실적이고 복합적이고 생생하다고나 할까요? 어제까지 죽을 만큼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오늘부터는 당장 현실적 문제를 상대해야 하는 그 결혼의 현실적 고충에 대해 놀랍도록 실감나게 그린 이야기입니다.
여기 전도유망한 청년 의사가 있습니다. 그는 환자들을 사랑하고 미래의 원대한 연구에 대한 비전도 뚜렷합니다. 부유한 집안의 아리따운 여자친구도 있습니다. 그 둘의 결합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반대입니다. 그는 결혼 준비 과정에서 예비신부의 눈높이에 맞추려다 집 구입 및 각종 가구 구입으로 빚을 지게 되고, 아내는 기대했던 호사스러운 생활이 충족되지 않자 남편을 미워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또 다른 커플은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나이 차 많이 나는 결혼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고 그의 연구에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예기치않게 아내를 뒤흔들게 되는 남편의 조카가 등장합니다. 아내는 나이 든 남편의 연구를 보조하며 평생을 행복하고 순탄하게 살 거라 생각했던 자신의 전망이 뿌리째 흔들리는 격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세번 째 커플은 가난한 집안의 검소한 여성과 부잣집 한량입니다. 친척의 유산을 기대하며 대책 없이 지내던 청년은 과연 자신의 가치관과 완전 반대인 여자친구와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요? 조지 엘리엇은 독자의 예상대로 쉬운 결론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을 맞습니다. 그리고 그건 실제의 우리의 삶과도 닮아 있습니다. 혹시 이런 생각 해보지 않으셨나요? 저는 오늘날 여기에서의 저의 이런 미래를 단 한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삶은 언제나 한 발 앞선 반전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살아볼 만한 것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오늘의 절망에 기반한 어두운 미래에 대한 전망은 삶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쉬운 예상입니다.
세상의 점진적인 개선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행위 덕분이기도 하고, 당신이나 내가 처한 상황이 대단히 나쁠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충실한 무명의 삶을 살다가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에서 쉬고 있는 많은 사람들 덕분이기도 하다.
-조지 엘리엇 <미들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