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anca Jan 26. 2024

그때의 나

-앤드루 포터 <사라진 것들>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강남역의 타워 레코드(지금은 없어졌죠.) 앞에서 스무 살의 나를 만나고 싶다는... 왜 하필 그 장소냐고요? 스무 살의 저는 그곳에서 종종 친구와 만났습니다. 친구가 오기를 기다리며 그 안에 들어가 음악을 듣곤 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팝과 가요를 주로 들었죠. 헤드폰을 쓰고 그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세상은 배경으로 밀려나곤 했습니다. 내 앞에 미래는 밝은 것이든 어두운 것이든 길고 쭉 뻗어 있는 길처럼 보였습니다. 소실점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내가 늙고 죽을 거라는 생각이나 상상은 할 틈이 없었죠. 그건 좋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습니다. 어떤 기쁨은 영원할 것 같았고 어떤 절망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요. 스무 살은 그런 나이인 것 같습니다.


앤드루 포터의 <사라진 것들>은 무엇보다 흘러가버린 시간, 청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십대 초반의 화자들은 어떤 계기나 순간으로 인해 젊은 시절의 스스로를 소환하게 됩니다. 그건 지금의 내 모습과는 몹시 동떨어진 모습입니다. 그런 모습들로 맺었던 관계는 사라져버린 것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내가 도저히 붙들 수 없는 것들이죠.



"가끔은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다는 생각에 매달려 너무 애쓰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가 있어. 알아? 그걸 놓아버리기가 너무 힘들어."

-<히메나>


<히메나>는 어느 날 우리 부부 사이에 끼어든 이십대의 여대생입니다. 그녀는 우리 부부의 관계와 당연하게 여겨왔던 그 모든 것들을 뒤흔들고 떠나버립니다. 각성과도 같은 순간입니다. 부부는 둘 다 히메나에게서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렸던 것들을 환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건 타자나 외부에 있었던 게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던 것들입니다. 내가 놓아버리기 힘들었던 바로 그것. 작가 앤드루 포터는 이런 것을 형상화하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작가입니다. 우리가 언어화할 수 없었던 모호한 그 모든 것들이 이 작가 앞에서 명확해지는 느낌입니다.


그의 이야기속 주인공들은 이런 순간을 경험하고 어떻게 될까요? 그들의 현실은 바뀔까요? 그럴 리가요. 그냥 그 자리에서 더 잘 머무를지도 모릅니다. 어떤 것을 깨닫는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통째로 변할 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내가 동일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지금 여기에서 이 글을 쓰는 저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오 년만 지나면 또 낯설게 느껴질지 모릅니다. 그런 게 시간의 신비로운 힘이겠죠. 내가 아니면서 나인 것, 바깥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내 안에 있는 것, 이런 것들로 이루어지는 게 삶이겠죠.

이전 10화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