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누구나 처음부터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이 되려고 결심하지는 않을 겁니다. 사람에게는 기본적으로 측은지심이라는 게 있어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돕고자 하는 본능이 발동합니다. 그런 상황에 개입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요.
큰 부자가 아니어도 그럭저럭 안온한 일상을 누리며 가끔 행복도 느끼며 살고 있을 때 갑자기 어떤 폭력이나 부정의 현장을 내가 목격하게 된다면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까요? 혹은 직장에서 간접적으로 내가 어떤 불의에 타협하게 되거나 빌런의 협작에 도움을 주게 되는 경우는요. 여기에서 용감하게 용기 있게 위험을 무릅쓰고 정의로운 행동을 하는 건 그렇게 단순하거나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가진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니까요. 그냥 눈감아 넘기면 나의 안온한 일상은 지금처럼 그대로 잘 유지될 겁니다. 내가 그 순간 행동하면 그 균형은 깨질지도 모릅니다. 내가 가진 것들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행동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또 한편 이런 생각도 듭니다. 그냥 침묵하고 넘겨 버리면 그러면 정말 나는 그 이전처럼 평화로운 일상을 그대로 영위할 수 있을까요? 과연?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독서 권태기에 왔거나 책을 자주 읽지 않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을 정도로 가독성이 좋은 얇은 책입니다. 120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앉은 자리에서 한 시간 정도 안에도 다 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얇은 책은 아주 묘합니다. 그 부담없는 독서의 양적 체험을 질적으로 굉장히 심오한 것으로 만든다는 겁니다. 그 매력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그건 바로 주인공 펄롱이 처한 그 상황이 가지는 보편성 때문입니다. 누구나 그런 상황을 좋든 싫든 맞닥뜨리게 됩니다. 바로 도덕적 갈등의 순간이요.
펄롱은 딸 다섯을 둔 아버지이자 석탄상입니다. 크리스마스 전후로 그는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가게 되고 어떤 불길한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는 남의 집일을 해줬던 어머니의 사생아로 태어나 그 주인 여성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타인의 선행으로 그는 어엿한 한 집안의 가장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된 거죠. 그에게는 이것에 대한 감사도 있지만 일종의 부책감도 있어 보입니다. 이건 어느 누구나 한번쯤 받게 되는 타인의 호의나 친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살아 있는 기적은 비단 우리 내면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반드시 어느 누군가의 도움이나 손길이 필요하죠. 펄롱도 그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 일에 개입하는 건 많은 부담을 떠안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고뇌의 순간에 우리 모두는 동참하게 됩니다.
사는 일은 이렇게도 어려운 선택의 순간들을 경험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거기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앞으로 우리의 향방을 결정하게 되겠죠. 펄롱은 과연 어떤 길을 택하게 됐을까요? 가던 길을 계속 갔을까요? 아니면 그 경로를 틀어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의 노인의 조언을 따랐을까요?
이거 한 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그가 택한 길은 이전의 그라면 가지 않았을 바로 그 길일 확률이 더 높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