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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nca Jan 05. 2024

예술과 삶은 만날 수 있을까요?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리

혹시 미술관 가는 거 좋아하시나요? 저는 좋아합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저는 학창시절 그림을 정말 못 그렸어요. 저의 아그리파 데생이 웃음거리가 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즉 미술관의 예술작품은 반드시 그것에 대해 전문가가 되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거죠.  제가 미술관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떤 그림은 시공간을 뛰어넘는 생명력을 발산하며 관람객과 교감하기 때문입니다. 분명, 그냥 그림에 불과한데 그 그림 속 사람의 눈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형형할 때가 있습니다. 그 눈을 응시하다 보면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어떤 기가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나의 작품을 대할 때 우리는 그 그림을 완성해 낸 화가와 그 그림 속 인물들과 이중으로 교감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죽어 있는 사물에도 어떤 에너지가 보존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을 완성해낸 화가도 그림의 모델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그들이 당시 함께 만들어낸 예술은 그들이 표현해 내고 싶어했던 것들을 작품 안에 가두어뒀다 결국 우리에게 돌아오는 반향이 되는 것이죠.


미국의 유명한 초상화가 존 싱어 사전트의 마담X 속 모델은 마치 지금도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 무심한 듯 어딘가로 시선을 돌린 고혹적인 자태는 그녀가 대체 어디에 시선을 빼앗겼는지 궁금하게 만드는데요. 그녀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면 느끼지 못할 그 묘한 찰나의 분위기는 예술 작품이 가지는 의미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화가의 시선을 통과한 재현은 보는 사람마다 나름의 재해석의 시간을 가지게 합니다.  이 그림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가로 1미터, 세로 2미터로 사람의 실물보다 더 큰 이 그림 앞에는 항상 관람객이 만원이라고 하네요.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의 저자는 제목 그대로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젊은 경비입니다. 우리가 흔히 연상하는 경비원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릅니다. <뉴요커>에서 일하던 그는 형의 갑작스러운 투병과 죽음 이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이직하게 됩니다. 이 거대한 미술관의 경비들은 각자 경비해야 하는 구역이 지정되어 있습니다. 중세, 근대, 그리스/로마, 아시아, 19세기 등 관리구역은 수시로 변동됩니다. 경비원들이 하는 일은 위대한 예술작품과 관람객들 그 어느 사이의 지점에서 고요히 서 있는 일입니다. 그 일은 "사치스러운 초연함"으로 시간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일입니다. 이집트의 예술 작품들 사이에서 그 작품에 면면히 흐르는 그 거대한 시간의 강물에 온몸을 담그고 그들의 시간에 대한 감각, '수백만년 간'이라는 거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일입니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신출귀몰하는 예술품 절도범과의 육탄전 같은 드라마틱한 사건은 없는 대신, 다양한 출신 배경, 연령의 동료들과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장면들이 더없이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사실 저자가 이 직업을 택하지 않았다면 과연 가나 출신의 칠십 대 직장 동료와 그가 퇴직 후 가나로 돌아가 고깃배를 타겠다는 은퇴 계획을 들을 기회가 있었을까요?


어느덧 이 미술관에서의 십 년의 시간이 흐르고 그는 저도 모르게 인생의 한 장을 통과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형에 대한 애도의 과정에서 빠져나오건 덤입니다. 예술 작품들을 지키고 지켜보는 일은 그 시공을 뛰어넘는 감응의 영원성 안에서 인생의 찰나와 존재의 미소함을 감지하는 일입니다.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 고요하고 우아한 공간에서 기꺼이 걸어나오는 일이겠죠. 그 아름다운 곳에서 빠져나온 저자가 그것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랍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보지 않은 저는 정말 꼭 한번 이곳을 방문해 보고 싶군요. 패트릭 브링리 같은 친절한 경비원의 안내가 있다면 더 좋겠지만, 이제 남아 있는 다른 동료 경비원들의 역할을 알고 가면 인사 한번 더 하지 않게 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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