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음에 대하여

-체호프 <이웃들>

by blanca

누구나 살다가 한번쯤 친구나 가족, 지인의 일에 끼어들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생각할 때 뻔히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걸 그냥 두고 보는 일은 어렵죠. 선의를 가지고 그들에게 직언을 하는 일이 관심이자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일은 그리 드물지 않습니다.


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의 하나뿐인 여동생은 똑똑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하필 동생은 능력 없고 찌질한 유부남과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입니다. 그 유부남은 게다가 남자의 친구입니다. 홀어머니는 집을 나가버린 딸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합니다. 오빠는 당연히 그 둘을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이미 이웃들도 그 부끄러운 가정사를 다 아는 눈치입니다. 오빠는 그 둘을 찾아 떠나게 됩니다. 가서 당장 떼어놓고 그 친구한테는 욕을 한 바가지 해주고 여동생을 데리고 돌아오는 게 오빠의 계획이었죠. 남자의 선한 의도는 그들에게 전달되고 그의 계획은 성공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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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의 단편집에 실린 <이웃들> 이야기입니다. 여동생을 잘못된 사랑에서 구원하기 위해 떠나는 오빠의 순례의 끝은 그러나 의외의 결말을 맺습니다. 마침내 만난 이 셋은 그 집에서 이전에 자살한 할아버지 사연 같은엉뚱한 곁가지 이야기들만 잔뜩 하다 헤어집니다. 오빠는 그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연인을 두고 홀로 돌아옵니다. 그 불행한 결말이 뻔히 보이는 연인의 뒷모습을 보며 남자는 어쩔 수 없는 인생의 그 무엇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행복한 내일을 믿으며 긴 시간 공부하고 준비하며 이후 올 인생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항상 의외의 변수로 튀틀리고 어긋나고 미끄러집니다. 내가 가진 마음과 실제 현실은 대부분 반목합니다. 분명 전도유망한 내 예쁜 여동생과 가정을 가진 내 친구의 사랑은 응원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 둘을 대면한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그저 그들의 곁에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입니다. 모든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으려던 내 생각은 공중에 산산이 흩어집니다.


체호프가 이 이야기를 통해 하려던 이야기는 뭘까요? 씁쓸한 마음으로 돌아서는 남자가 돌아간 집에서 어머니는 홀로 돌아온 장남에게 뭐라고 이야기할까요? 우리는 그 장면을 구태여 상상하지 않아도 남자가 어쩔 수 없었던 그 상황을 공감하게 됩니다. 살다 보면 머리로 생각한 것과 다르게 대처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 어쩔 수 없는 무기력의 비애를 체호프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그래도 괜찮다는 용인도 없이 그저 그런 상황만을 그리며 유유히 걸어나가는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참으로 체호프 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인생사와 닮은 이야기 그 자체인 것 같네요.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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