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쉼이 가능한 도시

2024년 5월에 쓴 글.

by 바기넉

쉼에 대하여.

기술의 발달이 정말 인간을 쉬게 하는가?

풍요로운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왜 고독과 피로감을 호소하는가?

젊은 자살자가 왜 급증하고 있을까?

잘 살고자 열심히 일하는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요즘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질문을 쭉 나열해보니 쉼이 필요한 것 같다고 느낀다. 나른하고 편안한 공백의 쉼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온전한 쉼이 필요하다. 사회운동가인 이승원 작가가 쓴 책 《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돌베개, 2022)에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살과 노동판타지의 연관성, 쉬지 못하기에 존재하지 못하는 유령과도 같은 우리의 삶을 꼬집는다.

“나는 쉰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 레퀴에스코 에르고 숨

나를 거룩하고 숭고한 존재로 만드는 것, 자존감 있는 삶을 지속시키는 것이 바로 쉼이다. 이 존엄한 쉼은 이제 정치적인 문제로 넘어왔다. 기후 자본주의에 이어 쉼의 자본주의 역시 도래했기 때문이다. 돈으로 쉼을 사는 시대, 돈이 없으면 존엄한 쉼이 불가능한 불평등 시대가 됐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양복을 만드는 일을 하셨다. 흔히 ‘OO라사’라는 간판을 달았던 곳이다. 카페인 성분의 각성제인 ‘노도스’까지 먹어가며 밤샘 노동에 시달리셨다. 하지만 대기업 기성복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어쩔 수 없이 건설현장으로 향하셨고, 아버지는 지금도 조적공으로 일하고 계신다. 30년 사이 많은 것이 변했지만, 건설노동자의 노동환경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아버지는 시멘트 가루가 날리는 스티로폼 위에서 낮잠을 주무신다. 새벽잠 쫓아가며 열심히 벽돌을 쌓아 두 딸을 키워낸 대단한 아버지임에도 30년째 초라한 잠이다. 국내 최초 비정규직 노동자 쉼터 이름이 왜 ‘꿀잠’인지 온 마음을 다해 공감되는 부분이다.

꿀잠은 지치고 외로운 노동자들에게 밥 한 끼, 따뜻한 말 한마디를 전하는 연대의 공간이다. 존엄한 쉼은 곧 비빌 언덕이 있는 쉼이다. 성매매 여성 지원, 여성 직업교육 등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윙의 또 다른 이름은 ‘비덕(비빌언덕)’이다. 복지 수혜자가 수동적이라는 관념에서 탈피해 자기 삶을 주도하는 힘을 갖는 ‘존엄한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서로 돌봄을 지향했다. 이들에게 쉼과 치유는 마냥 쉬는 것이 아닌, 자기 돌봄을 통해 타인을 돌보는 삶의 순환이다.

이승원 작가는 책을 통해 존엄한 쉼을 위해선 공공재·커먼즈·자기결정권·자원접근성 등이 요구된다고 말하고 있다. 정치적인 문제로서의 ‘쉼’이 중요해진 이유다. 쉼은 단순히 쉬는 시간이 아닌, 도시 구성원들의 내면의 힘을 길러주는 ‘유재留齋’의 한 부분이다. ‘유재’란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으로, ‘남겨서 순환할 수 있게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우리가 사는 이 도시엔 숨통이 트일 여백이 있어야 한다. 막걸리 한잔 마실 수 있는 구멍가게 평상이 필요하고, 그 자리를 지키는 말벗이 있어야 한다. 쉴 수 있는 나무 그늘과 의자도 필요하다. 노동시간과 소득의 불평등도 사라져야 한다. 빼앗긴 쉼을 되찾아오는 도시야말로 진심으로 시민을 존중하는 도시가 아닐는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공간의 공공성, 버스킹이 자유로운 춘천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