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살아줘서 고마워

by 영자의 전성시대

요사이 계속 멧돼지가 출몰하는 기사를 보게 된다. 얼마 전에는 밤사이 은행 안 유리문 안에 갇혀 있는 멧돼지를 발견하고 신고해 멧돼지를 사살했다는 기사도 보았고, 어제는 비슷한 근처에서 멧돼지가 나타나 그 동네가 긴장하고 멧돼지를 찾는다는 기사를 읽었다. 나는 대뜸 “에고, 바보같이 인간 세상에 나타나서 죽음을 재촉하는구나!”라고 한탄했다. 누가 인간에게 이 지구의 주인이 되어 다른 종의 죽음을 좌지우지하는 권리를 주었는지 참으로 개탄스럽다.


이리 말하다가 깜짝 놀랐다. 나는 인간임에도 ‘인간의 안전’에 대한 생각보다는 멧돼지의 편이 되어 잡힐 경우, 멧돼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유리 작가의 <돼지 이야기>를 읽고 충격을 받은 이후, 돼지의 삶에 대해서 처음으로 생각하고 식용으로서의 가축을 키우는 것이 옳은지 고민했다. 가끔은 달걀 하나를 보면서도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 생각이 나서 마음이 어려울 때도 있다. 성경에 하나님이 아담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것들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라”고하셨다. 모든 것을 인간을 위해 주시긴 했지만 모든 생명을 우리 마음대로, 편한 대로 하라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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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부모님이 평창에 집을 지어 사신지 어언 3년으로 접어들 때쯤, 엄마에게 사진 한 장이 왔다. 집 뒤의 텃밭에 친 울타리에 고라니 한 마리가 걸려있는 사진이었다. 가끔 고라니가 내려와서 밭에 있는 작물들을 뜯어먹거나 밭을 망쳐놓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엄마와 통화하면서 “밤에 내려왔다가 걸린 모양이야. 네 아빠가 가까이 가봤는데 발버둥 쳐서 무서워서 도망 왔어. 그래서 이장한테 전화했더니 금방 와서 잡아가더라. 살다 살다 별일을 다 본다.” 서울에만 살다 처음 겪은 일로 우리는 신기해하며 대화를 했다. 그러다 내가 “그럼 그 고라니는 어떻게 됐어? 산에 방생했나?” “아니, 이장님이 잡아먹었을걸?” “헉! 먹을 게 없어서 그걸 잡아먹어? 다음부터는 울타리에 걸리더라도 이장님한테 연락하지 마.”




식물을 키우는데 ‘똥손’인 나는 키우는 족족 모든 식물들이 죽어 나갔다. 가족들은 “다시는 식물 좀 사 오지 마. 식물에겐 잔인한 일이야.” 하며 내가 식물 키우는 것을 반대했다. 스스로도 다육이 하나 사는 것도 죽일까 봐 부담스러웠다. 4년 전, 학교에서 스카우트 행사로 4학년 아이들이 작은 화분을 5천 원에 팔았다. 점심시간에 와서 사달라고 조르기에 작은 ‘스파티필름’ 하나를 샀다. 이 아이를 산 이유는 ‘키우기 쉬운 식물’이기 때문이었다. 내 책상에 두니 일하다가도 쳐다보게 되고, 이 아이 하나로 책상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행여나 이 아이도 죽을까 봐 자주 관찰하는 습관이 생기며 잎이 고개를 숙이면 물을 달라는 신호이니 푹 적실만큼 주었고, 방학 때는 교무실 다른 식물들 사이에 두어 물을 먹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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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지 4년이 넘었다. 이 아이는 기특하게 이 작은 몸으로 3번의 꽃도 피고 많은 잎사귀도 피웠다. 공기정화 해주랴, 내 눈을 쉬게 해 주랴, 인테리어 효과도 내주느라 열일하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이 아이가 지금까지 살아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다시 바라본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우리와 함께 살아주어 고맙고 때론 우리를 위해 존재해 주어 감사하다. 먹고 마시고는 있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먹고 마실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잘 먹고 잘 마시며 그들을 위한 감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 감사가 있다면 우리들의 대처는 달라질 것이고 그들을 생육하고 번성시키기 위한 책임을 다할 것이다. 그들과 공존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기에 함께 더불어 살아가려는 작은 움직임들이 귀하다. 감사할 줄 몰라도 한 그루의 나무는 자라나고 꽃은 만발해 준다. 자신들의 등장 타임과 퇴장 타임의 질서를 바로 지켜 인간들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는 것에 감사한다.


나랑 살아주는 나의 반려견에게도 고맙고 내 책상에서 묵묵히 열일해 주는 스파티필름에게도 고맙다. 그리고 멧돼지들아! 부디 너희의 영역에서 나오지 말아 줄래? 미안하지만 아직은 내가, 우리가 너희를 지킬 방법을 알지 못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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