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접니다.
아이 하나가 아프다고 학교를 자주 결석했다. 내게 매일 찾아오는 녀석이라 "왜 이리 오래 아프니? 약은 먹고 있는 거야? 열은 없는데 자주 빠지네. 옷을 따뜻하게 입고 다녀." 하며 걱정했다. 진짜 아이가 감기에 걸린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아이는 지속적으로 따돌림을 받아왔고 심지어 폭언을 들으며 견뎠는데 더 이상 힘들어서 학교에 오고 싶지 않아 결석이 잦은 거였다. 아이의 가정 또한 편치 않은 상황이라 아이는 진짜 절벽 앞에 서 있는 느낌이었으리라! 나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겨우 참았다. 이럴 때 울어주는 선생님보다 아이의 버팀목이 되어주며 문제를 같이 해결해 주는 선생님이 더 필요하다.
다 들으며 가해자 아이들의 욕설 중 자기들끼리 한 욕설과 이 아이에게 던진 인신공격을 분리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문제는 아이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가해자의 마음속의 결핍과 잘못된 자기표현임을 알리고 이해시켰다. 그래서 아이 스스로가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고 자기 탓으로 돌리지 않도록 돕고 싶었다. 아직 6학년 밖에 안된 아기인데 벌써 이런 깊은 아픔 속에 던져진 것이 너무 가슴 아팠다.
그리고 언젠가 내 딸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해주었다. "선생님 눈에 한 번만 걸려봐. 내가 다 뒤집어줄 테니까!." 진짜 뒤집어서 무서운 게 아니라 "네 뒤에 나 있으니 걱정 마, 내가 든든히 널 지켜줄게."라는 말이 그 안에 숨겨있을 터였다. 내가 아이의 담임교사가 아니라서, 내가 영향력 있는 관리자가 아니라서 아이에게 미안했다.
교사로서는 여기까지고, 내가 아이의 엄마였다면 가르쳤을 욕과 표정을 연습시켰다. 진짜 쌍욕을 가르친 게 아니라 상황대처에 대한 표정과 반응을 연습시켰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지나가며 이 아이를 향해 "역겨워"라고 이야기하면 쭈그러지지 말고 얼굴을 살짝 들고 눈에 힘을 주며 날카롭게 "네가 더 역겹다 이 ㅇㅇ야!"라고 말하게 했다. 아이는 "그건 욕이잖아요. 해도 돼요?"라고 묻는다.
선생님일 때의 나는 "어떤 상황에서든 욕하면 안 되지. 그리고 나중에 학폭으로 고소할 때 너도 욕을 하면 불리하단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엄마마음일 때의 나는 "해도 돼, 내가 책임져 줄게. 그런 놈들은 그렇게 해줘야 널 다시 건들지 않지. 네가 만만하니까 계속 괴롭히는 거야."라고 말할 것이다.
이 질문에 잠시 고민했다. '안 그래도 컴플레인 많은 학교에서 나는 왜 일을 또 만들고 있나!' 하는 내적갈등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지나가고 나면 난 이 아이를 잊지 못할 거다. 그러나 신념대로 하고 나면 마음에 앙금이 남지 않는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아이를 위해, 나를 위해 다시 용기를 낸다.
"해도 된단다. 너를 지키는 거니까. 떨지 말고 당당하게 너를 공격하는 아이들을 향해 크게 외치렴." 이리 말하고 나니 아이는 배시시 웃는다. 거울 보고 연습하라며 아이를 돌려보냈다. 나는 아이가 내 앞에 있는 동안은 지켜주고, 내 품에 있는 동안은 아이의 하나밖에 없는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아이의 담임 선생님과 상의하며 모든 대화내용과 앞으로 어떡하면 좋을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나의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 말씀드렸고, 아이와 다음 주 떡볶이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아이에게 자신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해주고 싶다. 그래서 상처가 조금이라도 아물고 학교가 아주 조금이라도 오고 싶은 곳이 되게 해주고 싶다.
최선을 다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