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같이 놀던, 어린 시절 초등학교를 같이 다닌, 같은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들의 모임이 있다. 특별한 담임 선생님 밑에서 우리는 특별한 추억을 쌓았고 지금도 모이면 그때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그 시절 거의 없던 수영장이 학교에 생겼고 담임 선생님이 수영장 관리 담당이 되면서 우리 반은 그 특권을 누리며 자주 수영했다. 그때 배운 수영으로 지금도 수영하는 걸 좋아하는 친구도 있다. 물론 나는 수영을 못하지만 말이다. 즐거운 기억도 있지만 수영장에서 벌서기도 하고 엉덩이를 맞기도 했던 무서웠던 기억을 가진 친구도 있었는데, 자신이 왜 그때 야단을 맞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된다고 너스레를 떨어 모두 웃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의 삶 또한 꽃이나 웃음이면 좋으련만, 나이를 먹어가며 자꾸 생각지도 못하는 일들이 모임 안에 일어난다. 배우자와의 이별, 직장에서의 퇴출 그리고 버겁기만 한 새 시작들, 그중 요즘 가장 잦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부모님의 장례식이다. 얼마 전, 늘 우스갯소리만 하는 유쾌한 친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한동안 아버님의 병환으로 모임에 나오지 못했던 친구여서 연락이 오자마자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몇 년간 병환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으며 친구를 만났는데, 너무나도 놀라웠다. 친구가 갑자기 10년 정도 늙어 보였고 꽤 좋던 몸이 살이 다 빠져 반쪽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삶의 어려움을 직격탄으로 맞아 한동안 힘들었다고, 지금은 그래도 정신이 든 상태라고 설명했다. 친구의 얼굴을 보는데 할 말이 없어 고개만 끄덕였고, 안쓰러움에 눈물이 나는 걸 꾹 참았다. “그래도 잘 먹어야지, 너도 몸 축 나면 안 되잖아.” 고작 찾은 말이 잘 먹으라는 말밖에 없었다. 자리를 이동하고 난 뒤, 우리는 다들 비슷한 상황에 숙연한 대화를 나누었다. 앞에 앉은 친구는 엄마밖에 없는데, 작년에 갑자기 돌아가실 뻔했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내 옆의 친구는 본인이 암 2기여서 수술 후 식습관을 바꾸며 자신이 얼마나 가정적으로 변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대각선으로 앉은 친구는 더 대박이었다. “얘들아, 나 고아잖아, 나 좀 잘 챙겨주라.”하며 우리의 약한 마음을 공략했다. 사실 이 친구의 부모님은 4년 전에 아버님이, 작년에 어머님이 돌아가시며 진짜로 고아가 되었다. 결혼도 안 한 친구라서 외로움을 많이 탔고, 엄마가 돌아가신 것이 타격이 되어 한동안 마음을 못 잡는 듯 보였다. 작년에는 “김치 좀 달라”라고 해서 친구들이 집집마다 김치를 갖다 주어 지금까지 김치가 넘쳐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이후로도 자꾸 말끝마다 ‘고아’라 말해서 짠하면서도 듣기가 불편해 우리가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나도 큰 수술을 두 번이나 하며 이 나이를 맞았다고, 아이들이 독립해서 외롭다고, 부모님은 병환으로 지방에 내려가 계신다고 이야기를 전하며, 너나 나나 다를 바 없는 미약해진 우리의 대화에 정점을 찍었다. 그렇다. 예전에는 얼마나 잘 나갔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는 모두 미약하다. 건강도, 가정도, 일도, 경제력도 뭐 하나 창대한 게 없다. 그러니 자랑할 게 없어 이제는 자신의 미약함을 자랑하고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창대함을 자랑하는 것보다, 이리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고 자랑하니 서로 더 돈독해지는 느낌이다.
괜찮다. 너만 약한 게 아니고 모두가 약하니 위로가 되고, 너나 나나 비슷하게 처지니 더 동질감을 느낀다. 이러니 친구겠지. 우리 앞으로 더 미약해질 일만 남더라도 서로의 창대함을 응원하며 박수 쳐 주는 40년 지기, 50년 지기의 친구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