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령포를 다녀와서
수련회 답사차 영월에 다녀왔다. 부모님과 여러 번 올갱이 해장국을 먹으러 방문했으나, 영월이란 도시를 보기 위한 목적으로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고씨굴이나 선돌 등 곳곳이 유적지이고 동강 래프팅 등 다양한 관광자원을 개발하고 있었다. 다닐 곳이 많아 하루 만에 다녀오기 바쁘고 아쉬웠다. 먹거리도 많아 올갱이 해장국과 올갱이 전, 매운탕에 유명한 팥빵 맛집까지 하루에 다 먹을 수 없어 안타까웠다.
특별히 영월 하면 생각나는 사람? 대부분 단종을 떠올릴 것이다. 지금 영월은 단종문화제를 준비하느라 들썩들썩하다. 4월 25일부터라 도시 전체가 분주하니 축제분위기였다. 지방의 도시가 이렇게 활기찬 걸 보니 흐뭇하고 보기 좋았다. 일행은 영월 하면 당연히 방문해야 하는 <청령포>로 향했고 첫 방문인 사람은 가득 기대하며 따라나섰다. 나는 몇 년 전에 우연한 기회에 방문했고 절절한 마음으로 눈가를 적시며 나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비가 오고 난 뒤라 더 고즈넉하고 스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오늘은 비 온 뒤 아주 맑게 개어 햇빛까지 쨍쨍했다. 이번에는 그리 슬프지 않게 다녀오리라! 마음먹으며 배에 올랐다. 입장료도 아주 가성비 좋게 3천 원이다. 사실 이곳을 잘 관리한다면야 3만 원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이미 단종도 이곳도 나에겐 소중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아주 잠깐의 배를 타고 청령포로 들어갔다. 이곳은 서쪽은 육육 봉의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고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섬과 같이 형성된 곳으로 아주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래서 2008년도에 대한민국 명승 제50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역시 배에서 내려 발을 디디는 순간, 청령포의 매직에 걸려버렸다. 마음이 가라앉고 차분해지며 사색하게 만드는 그 무엇의 힘이 있었다. 단종이 머물렀던 어소(御所)와 금표비, 와송(臥松)과 망향탑 등을 돌며 지난번과 똑같은 코스로 이동했다. 다만 이번에는 날씨와 계절이 달랐다. 천연기념물인 ‘관음송’을 비롯하여 단종의 어가 주변에 조성된 크고 오래된 소나무림이 만들어 내는 향기와 바람에 흐느끼는 소리가 달랐다. 그때는 비와 나무의 냄새가 섞인 독특한 향이 났는데, 이번에는 향기보다는 소리에 반응했다.
바람이 날아오면 수십 그루의 소나무가 함께 흔들린다. "솨아아아아!"하는 깊고 우렁차나 날카롭지 않은 소리가 우리를 휘감았다. 나는 자꾸 단종의 죽음과 인간의 모든 역사를 알고 있는 소나무의 울음소리처럼 느껴져 처절하고 비통하게 들렸다. 일행 하나가 "와 소나무가 춤을 추네."하고 말하니 다른 이는 "소나무가 우는 소리로 들리는데요?" 한다. 같은 소리를 들어도 춤을 추는 소리로, 우는 소리로, 나처럼 흐느끼는 소리로 들리나 보다. 단종은 비록 15살에 죽었지만 그 혼은 지금도 이곳과 후대의 후손들의 기억 속에 비통하고 가엷은 왕으로 남아있다.
부인인 정순왕후를 그리며 쌓은 망향탑 돌무더기와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전하는 노산대를 돌아보고 다시 돌아선다. 그때와 또 다른 그림 찾기! 중간 길에 설치된 의자마다 단종의 마음 한 구절이 담겨 있어 사진으로 찍었다. 문장 한 구절이 이리 슬플 수 있는가! 하나하나 모두 읽고 사진으로 남겼다. 애끓는 15살 어린 왕의 심정이 몇 배나 나이 든 내 속을 애끓게 한다.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일행은 하하 호호하는데 내 마음은 따로 논다. 배를 기다리며 괜히 아이 혼자 두고 가는 듯해서 뒤를 보게 된다. 단종묘도 다른 곳에 커다랗게 있건만 왜 이곳에 단종은 계속 있는 것만 같은지...
괜한 생각이라고 나에게 말하며 배에 내려 계단을 오른다. 헉헉대며 또 생각한다. '그냥 어느 야심한 밤에 헤엄쳐서라도 도망가지, 그냥 왕의 자리 냅다 버리고 살기 위해 살아가지 그랬어. 작은 아버지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아부라도 하는 영악한 아이였다면 어땠을까? 아님 몇 년을 세월을 견디지 말고 바로 자결했다면...?"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 비슷한 찜찜한 느낌, 어디서였을까? 그래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하고 나올 때의 감정과 비슷했다. 유관순 열사의 사진을 보며, 뤼순 감옥의 안중근 의사가 죽었던 사형장을 나오며 결과를 바꾸기 위해 나 혼자 꼬리를 물며 생각하던 그때와 흡사했다.
그만하자. 다른 곳도 방문코자 했으나 서울로 올라오기로 했다. 이미 올라가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음을 네비가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유적을 만날 땐 재미나 호기심이 강한 반면, 한국 유적을 만나면 재미도 있지만 그보다 더한 감정이 올라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내 속에 '우리'라고 묶인 공동체의 피가, 단종과 같은 피가, 유구한 역사를 공유한 민족의 피가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첫 방문보다 덜 슬프고 덜 잔상이 남았다. 그러나 더 애절했고 더 깊이 그때의 역사가 느껴졌다. 사람이 만들어 낸 것들보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이 더 눈에 들어왔다. 화창한 봄날, 영월에서 그렇게 단종과 조우하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