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암이 재발했다. 6년 전 폐암으로 수술한 뒤 잘 관리해 작년에 완치 판정을 받았더랬다. 나는 한 줄기 희망을 놓지 않고 기도했다. '제발 의사의 오진으로 검사해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더라.'라고 결과가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결국 다시 폐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손이 떨리고 마음이 진정이 안 돼서 그냥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머리는 하얗고 표정 관리가 되질 않았다. 점심을 먹어야 해서 밥을 가져왔으나 넘어가지 않는다. 이 순간, 살기 위해 밥을 먹어야 하는 행위가 싫었다.
이제부터 뭘 해야 하나? 힘들어서 두려워하는 부모님을 위해 문제를 잘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주위에 항암치료를 받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안 그래도 마르고 병약한 엄마가 그 과정을 잘 이겨낼 리 만무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걱정이 앞섰으나 검사 결과를 놓고 여러 명의 의사들이 논의 한 끝에 방사선을 10회 하기로 결정했다. 보호자인 우리는 아는 게 없으니 뭘 어찌해야 할지 결정할 수가 없었다. 전문가들이 논의 끝에 가장 좋은 방법을 골라주니 감사했고 항암치료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희망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엄마의 기운을 북돋으려 모든 가족들이 애를 쓴다. 한 번의 암수술 이후 입맛을 잃은 뒤, 식사를 잘 못하는 엄마가 그나마 드실 수 있는 음식을 사드리고 포장했다. 다음날, 집까지 모셔다 드린다며 트렁크가 터질 만큼 짐을 실어 출발했다. 신나게 출발해서 원주에서 일을 보고 횡성에 맛집이 있다길래 달려갔다. 표지판이 없는 집이라 잠시 헷갈리면서 보도블록의 끝을 스치며 주차장으로 올라갔고 밥을 먹고 나오니 앞바퀴의 바람이 빠져있었다.
얼른 검색해 보니 다행히 1킬로도 안 되는 곳에 타이어 수리점이 있어 그곳으로 갔다. 구멍을 메꾸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옆면이 아예 찢어져서 바퀴를 갈아야 했다. 하필 4일 전에 모두 바꾼 바퀴인데 14만 원을 주고 다시 교체했다. 아빠는 비싼 밥을 먹었다며 아까워 죽는 표정이었다. 나도 당황스럽긴 했으나 유연해야 했다. '뭐 바퀴하나가 문제겠는가! 살면서 이런 건 아주 사소한 문제지 않는가! 진짜 문제만 생각해도 복잡하고 버거운데 이런 거에 힘 빼지 말자. 더 고생하지 않고 바로 수리점을 찾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가까운 곳에 수리점이 있어 금세 해결할 수 있었고, 엄마의 재발이라는 끔찍한 불행 속에서도 그나마 나은 치료방법이 선택된 것에 감사했다. 어쩌다 보니 며칠 사이에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을 여러 번 사용했다. '불행'이란 우리가 쉽게 이야기하지 않는 단어다. 엔간하면 우리는 참지, 불행하다고 하지 않는다. '불행'이란 단어를 사용할 때는 참고 참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할 지경으로 힘들고 어려운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한 줄기의 '다행'을 찾는 마음이니 간절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한 불행 속, 하나의 다행을 붙들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이키는 과정은 쉽지 않으나 감사로 인해 불행의 뿌리는 흔들릴 수 있다고 믿는다. 나의 감사로 인해, 간절한 기도를 통해 엄마는 나을 것이다. '혼자만 불행하다'라고 느끼지 못하도록 우리 가족은 똘똘 뭉쳐 사랑해 줄 것이다. 생각해 보니 '불행 중 다행'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다행'이다. 수많은 불행 속에서도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반드시 '다행'이 있기 때문이고, 다행을 찾기 위한 여정이 궁극적인 삶의 목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난 감사하기로 했다. 울며불며 끔찍한 두려움 속에서 기도하고 싶지 않다. 엄마의 고통을 유일하게 고치실 그분께 다행의 감사함으로 기도하며, 불행의 여정을 지날 엄마에게 소망이라는 징검다리를 발 앞에 놓아줄 것이다. 육체의 고난의 강을 잘 건널 수 있도록 말이다. '불행 속 불행'만 보지 말자. 그건 너무 쉬운 결정이자 많은 사람이 범하는 바르지 못한 동기다. 눈물이 차올라 눈시울이 붉어지더라도 동아줄 같은 '다행'을 찾아내고 손이 떨려 힘을 주지 못하더라도 젖 먹던 기운을 다해 '다행'을 꼭 붙들자. 언제까지? 불행이 달아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