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나의 사유 에세이 7

by 영자의 전성시대


<내일을 바꾸는 작지만 확실한 행동>이란 책이 있다. 이 책 중에는 지구와 친구별이 만나 대화를 나눈다. 친구 별이 “불쌍한 지구! 엉망진창이 됐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지구는 “인간병에 걸렸어.” 그 말에 친구 별이 “아, 그랬구나. 걱정 마. 놔두면 알아서 사라질 테니까. 나도 인간병에 걸렸다가 말끔히 나았어. 지금은 아주 건강해.”

내일을 바꾸는 작지만 확실한 행동

평창에는 꽤 유명한 ‘흥정계곡’이 있다. 적당히 깊은 맑은 물과 물소리, 색색의 초록이 층을 이루어 주위 풍경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곳이다. 십수 년 전, 이 계곡에서 휴가를 보낸 뒤, 이곳의 매력에 빠져 부모님은 이곳에 정착하셨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되었고 오히려 우리는 번잡스러움이 싫어 잘 가지 않는다.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정이 생겨 1시간가량 밖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오랜만에 부모님과 나는 흥정계곡으로 차를 돌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얼핏 산 중턱까지만 펜션으로 가득했는데 이제는 산꼭대기까지 한참을 올라가도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예전에는 좁은 비포장길이어서 위험하고 불편했던 길이 포장도로로 잘 닦여 있어 운전하기 편했다. 현대적으로 잘 개발되어 있어서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더 깊숙이 올라가면 예전에는 들어갈 수 없었던 비밀의 숲길이 나온다. 이제는 현지인이 된 부모님 덕에 그 길을 찾아 들어갈 수 있었는데 자갈밭인 비포장길이 나와 반가웠다. 추억에 젖어 깊이 들어가 보니, 상수원이라고 적힌 푯말이 보이기도 하고 점점 길이 좁아져 잠시 멈춰 차에서 내렸다. 옆쪽에서 강보다는 작고 시냇가보다는 큰 물줄기에서 청량한 소리가 들렸다. 뒤엉킨 식물들을 흩으며 좁은 틈으로 겨우 길을 내어 냇가로 내려갔다.


인간들이 낸 흙길이 옆에 있어 ‘야생의 자연’이랄 수는 없지만, 인간의 냄새가 자연 속에 고스란히 녹아 물 냄새, 흙냄새, 식물 냄새로 가득했다.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언어는 없고, 자연의 대화가 시끌시끌했다. 우리는 잠시 지나가는 이방인이라 냇가 한 귀퉁이에 조심스레 발을 담그고 그 서늘함에 피부의 날을 세웠다. 왠지 이곳에서는 큰소리를 내거나 물장구를 치거나 해서 그들의 질서를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등의 책들을 읽으며, 5학년 아이들과 김남중의 <자존심>이라는 책으로 ‘인간과 동물은 평등하다’라는 논제로 디베이트를 진행하며, 2년 전 인간이 전염병으로 집안에 들어앉으니 숨어 있던 동물들이 거리로 나와 길을 산책하던 기사와 사진을 본 뒤, 지구의 주인처럼 구는 나와 같은 인간들의 문제를 각성하고 불만이 많았던 터였다.


자연은 우리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어야 하고, 우리는 모두 중의 하나여야 한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라고 하셨다. 이 말은 생육과 번성을 위한 책임을 가지라는 것이지 우리 마음대로 주인행세를 하라는 권리를 주신 것은 아니다.

어쩌다 들어온 이 깊은 산속 옹달샘을 보면서 나는 토끼와 같은 존재임을 느꼈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이 동요 속의 토끼처럼 조용히 사알짝 들어와 내가 필요한 만큼만 할짝할짝 채우고 돌아가는 양심적인 토끼. 이런 토끼의 자세가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금세 산 중턱으로 내려오니 여기저기 펜션과 식당에서 내려다 놓은 자리상들이 강가에 떡하니 세워져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즐겁게 물놀이를 하고 있다. 우리네 인간들이여! 토끼에게 배운 지혜를 잊지 맙시다.


우리도 이 세상의 이방인임을! 잠시 쉬었다 가는 삶임을! 모두 속의 하나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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