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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사랑을 알아?

by 영자의 전성시대

아침마다 찾아오는 아이들이 달라졌다. 작년까지는 저학년 아가들이 안아달라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6학년 아가들이 우글우글이다. 덩치는 나보다 큰 녀석들이 와서는 내 의자 옆에 쭈그리고 바닥에 앉거나 좁은 책상 틈 사이로 굳이 들어가 앉아서 나랑 수다를 떨자 한다. 5~6명이 와서 나를 가운데 놓고 둘러 서서 떠들면 난 산소가 부족할 만큼 탁한 공기에 시야도 가리고 귀에서 이명이 들릴 정도로 시끄럽다.


이 녀석들이 이렇게나 흥분해서 이야기하는 주제는 바로 '사랑'이다. 누가 누굴 좋아한다거나 누가 고백을 했다거나, 누가 차였다거나, 어느 아이들끼리 사귄다는 내용들. 듣고 있으면 너무 웃겨서 실소가 절로 나오는 핫한 뉴스들. 요 쪼꼬미들이 벌써 사랑을 알아간다는 말이지! 가소로운 나는 "니들이 사랑을 알아?" 하면서 비웃음 섞인 박장대소를 터트려주면 자기들도 웃기는지 따라 웃으며 좋아라한다.


나도 6학년 때 반장 아이를 좋아했다. 그 아이는 리더십도 있고 말을 어찌나 잘했는지, 그 아이만 보면 심장이 벌렁벌렁 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지금이었으면 사귀어봤을지도 모른다. 그 아이도 나를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니까. 이런 풋풋하고 새싹향 같은 기억이 있기에 우리 아가들이 사랑이야기를 하면 현실 조언을 아끼지 않고 해주는 선생님이 되었다.


"뭐라고? 갸가 여자 애들 16명을 좋아한다고? 자고로 문어발로 좋아하는 사람은 피해야 한단다. 새겨들엇!" "푸하하 갸랑 갸가 사귄다는 거지? 이쁘구먼!" 등등 아이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는 척 하지만 너무 재밌고 웃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아가들이 커서 벌써 이성에 관심이 생기고 자연스레 표현하는 걸 보니 기특하기도 하고 마냥 사랑스럽기도 하고 처음이니 잘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오늘도 아침에 한 여자 아이가 일찍 와서 내 옆에서 놀고 있으면 그 아이 남자 친구가 10분 뒤에 들어온다. 그럼 둘 다 헛소리를 한참 하다 같이 나간다. 내 눈에만 보이는 아이들의 눈빛이, 설렘이, 솔직한 표현이, 부끄러워하는 몸짓이 참으로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내 맘에 꼭 드는 어느 아이는 벌써 4년째 여자친구가 있어 잘 사귀고 있단다. 가끔 여자친구의 교실까지 데려다주고 나에게 올 때가 있는데 어리지만 참 듬직해 보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6학년은 사랑 중이다. 지들끼리 좋아했다 헤어졌다 하며 서로 미래의 사랑을 연습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랑이 뭔지는 몰라도 좋아하는 마음을 경험하는 건 좋은 일이다. 그것을 표현하는 용기를 내보는 것 또한 인생에 있어 꼭 필요한 경험이다. 이럴 때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와 배려에 대해 잘 가르친다면 앞으로 좋은 사람을 만나는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사랑을 할 것이다.


아가들아, 사랑이 뭔지는 선생님도 잘 모르지만 인생에 사랑은 햇살 같은 거더라. 내 눈을 반짝 반짝 빛나게 해 주고, 내 마음을 두근두근 기분 좋게 뛰게 해주는 그런 햇살이더라. 지금 잘 연습하고 잘 자라서 아름다운 햇살 같은 사랑을 하길 바란다. 나의 사랑하는 아가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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