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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현 작가의 <나는 갱년기다>

서평쓰기

by 영자의 전성시대

2017년 10월 20일, 진료실 문이 닫히자, 의사는 모니터를 한번 더 확인했다. “난자 수치가 없습니다. 자궁은 당장 들어낼 필요는 없어요.”


이 책은 이렇게 “헉”하는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작가는 그 후에 현실을 자각하고 적응하는 과정을 진솔하고 담백하게, 그리고 아주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몸도 마음도 녹록지 않았던 그 몇 년의 상흔의 시간을 “햇빛은 그대로였지만, 내 안의 시계는 이미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라고 덤덤히 표현한다.

2019년 작가는 갱년기 진단을 받고 2020년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쓴 기록물 형태의 초판을 출간했고 6년이 흐르며 변화한 작가의 서사를 녹여 2025년 개정판을 출간했다. “예전에는 모든 변화에 설명을 달아야 마음이 놓였지만, 지금은 지나가게 두는 용기를 배웠습니다.” 하며 달라진 작가의 태도와 마음에 대해 설명한다.


또한 ‘폐경’이라는 말 대신 ‘완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등 그간 달라진 사회의식과 사람들의 변화된 패러다임에 맞게 달리 표현했다. 의학적 정보도 담겨있는데 구절마다 작가의 경험담 속 순간의 감정과 감정을 분석하는 생각과 원인을 설명하는 의학적 정보가 불편하지 않게 어우러져 ‘왜 이런 증상이 나타날까?’하는 궁금증을 다소 해소시킨다.

<나는 갱년기다> 북토크에서


이 책은 갱년기를 맞이하는 40대 중반부터 갱년기를 겪고 있거나 이미 겪었던 50대 후반까지의 여성을 대상으로 쓴 책이다. 혼자만 그 시간을 오롯이 겪어야 하는 외롭고 서글픈 길목에서 이 책을 만난다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하는 위로와 ‘다들 나와 비슷하구나?’하는 동질감으로 응원과 지지를 받는 느낌이 들 것이다.


나 또한 갱년기라는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으로 많은 공감과 안타까움으로 이 글을 읽었다. 깊이 공감하는 부분 중에 “갱년기는 내 몸의 신호일뿐,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의 원인은 아니다. 다 갱년기 탓으로 돌리면, 나의 감정이 너무 가벼워질까 봐 두려웠다.”를 읽으며 과거 내 모든 행동에 대해 “갱년기라 그래”라고 치부하던 이들로 인해 상처받았던 내가 떠올랐고 그때의 나는 이글로 위로받았다.


“머리가 바보처럼 느껴지는 날에는 나를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하기로 했다.” 맞다. 타인은 나를 모르니 그렇다 쳐도 나에게 나는 다정할 권리도 있고 책임도 있다. 남이 “바보”라고 하는 눈빛은 사납게 거부하면서 정작 내가 나를 바보라 느끼며 슬퍼했던 감정은 그대로 받아들였던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책 속 문장처럼 나에게 “왜 이러지?”가 아니고 “오늘은 여기까지!”를 외치며 나를 품어본다.


박수현 작가님과 북토크 중

“여행의 가장 큰 수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새로운 나보다. 오래된 나를 만난 일.”

“사람은 만나지 않으면 외롭고, 만나면 괴로울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한 줄의 원칙을 떠올린다. 고독할 수는 있어도, 고립되지는 말 것.”


“무모한 날에 얻은 건 통증이었고, 겸손한 날에 남은 건 대개 내일의 의지였다.”

작가의 글 속에는 명언이 넘친다. 읽다가 머리를 ‘탁’ 치고 싶은 구절들을 만나는데 케케묵은 감정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사이다 같다. 나도 모르게 쌓아놨던 깊은 밀실의 문을 버럭 열고 총채를 들어 너무 묵어 들러붙은 감정의 뿌리를 날려버리는 그런 느낌. 갱년기를 이리도 정의하고, 이렇게 설명해 나갈 수 있구나. 이 책을 좀 더 빨리 읽었더라면 낯설어 당황하지 않았을 텐데, 외로워 울지 않았을 텐데, 덜 화가 나고 덜 서러웠을 텐데.

작가의 글 속에 숨이 나올 때마다 함께 숨을 들이마신다. 울고 있던 그 시간 속 작가와 함께 나도 울었고, 나이 듦에 대해 당황스러워하는 시간 속에 나도 당황하고 있었다고, 그러나 ‘우리 잘 늙어가 보자’ 고, 아니 ‘잘 익어가 보자’ 말해주고 싶다. 폐경이 아닌 완경으로 가는 이행 과정을 통해 여성성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며 나이 들어감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으로서 성찰의 삶으로 함께 나아가고 싶다.


이 책은 갱년기에 대한 전과이다. 시작은 있으나 모두 다 다른 갱년기의 과정을 겪으며 새벽녘 베란다 아래를 보며 울고 있는 이들을 위한 지침서랄까? 등에 흥건한 땀을 흘리다 오싹오싹 한기를 느끼는 당황스러운 당신에게 “괜찮다” 도닥이는 친구의 편지이기도 하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나이 들었다는 놀림에 서러워하는 그대를 위한 위로서 이기도 하다.


지금, 이유 모를 감정이 몰려오거나, 원인을 알 수 없는 몸의 변화를 겪고 있다면 이 책을 들어보자. 어느새 작가와 조용한 침묵의 대화를 통해 하나가 되고, 걱정스러워 보였던 나는 아주 괜찮은 모습으로 작가와 어깨동무하며 서서히 일어서는 용기 있는 내가 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미소를 띠며 당당하게 외칠 수 있다. “와우! 나는 갱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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