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호주 동물 이야기 Ⅰ

여우가 나타났다

by 영자의 전성시대

두 번째 시드니를 방문했다. 2년 전에도 봄방학 내내 시드니를 탐방하며 이곳저곳을 여행했었다. 그때는 멜버른도 가고 여러 개의 투어도 하다 보니 정신없이 시간이 갔고 정신없이 귀국했었다. 이번에는 처음 방문하는 가족을 위해 시드니와 주변을 여행하기로 했고 관광지가 아닌, 현지인이 다니는 곳을 탐방하기로 했다. 호주 생활 5년 차에 접어든 아이는 미리 모든 일정을 예약해 놓았다.


시드니에 도착하고 이틀 뒤, 우리는 자동차 한 대에 낑겨타고 먼저 와타몰라 비치와 울릉공으로 향했다. 시드니에서 2~3시간을 달려 국립공원 안에 있는 와타몰라 비치에 가서 발을 담그며 자유롭게 바비큐 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탁 트인 바다와 초록뷰를 마음껏 보고 키아마에 있는 블로우홀에 가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돌의 구멍에 파도가 쳐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무지개를 보기 위해 기다렸다. 10분 정도 기다리니 파도가 구멍으로 솟아 나오는 진귀한 장면을 보았으나 비가 와서 무지개는 보지 못했다.

울릉공 블로우홀

30분을 더 들어가니 호주의 시골마을이 나타났고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어먹는 비현실적인 풍경과 마주했다. 좁은 산길을 한참 들어가니 우리가 묵을 집 한 채가 나타났고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이었다. 옆에 칠면조 같은 새들이 유유자적 다니고 있었고 진짜 호주 가정집으로 무슨 일이 생겨도 아무도 모를 곳 같은 그런 곳이었다. 공포영화에 나올 법한 아름다운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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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배가 고픈 우리들은 바비큐와 김치찌개를 끓여 헐레벌떡 먹었고 모닥불 앞에서 불멍을 할 때였다. "꽤꽥꽥꽥꽥꽥"하는 급박한 소리가 들렸고 이 소리는 여러 번에 걸쳐 큰소리로 들렸다. 우리는 소리 나는 쪽을 향해 달려갔는데 아까 보았던 칠면조 같은 새들은 어느새 울타리 위의 지붕 위에 앉아있고 그 옆에 닭장이 있었는데 닭들도 모두 지붕 위에 올라와 있었다. "꽥!" 하는 마지막 비명소리가 풀더미 뒤로 났고 나는 무서웠다.


풀 뜯어먹던 새들은 지붕 위에 올라가 있고 매우 급박한 비명 같은 외침뒤에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잠시 뒤, 닭들은 모두 내려와 있었고 칠면조 같은 새는 다시 울타리 밖으로 나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났었다. 한 명이 집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여우가 있다." 어슴푸레한 저녁쯤이라 우리는 눈이 동그래져 달려갔다. 2026년도에 여우가 나타나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여우는 동물원에서 사는 아이 아닌가!


우리가 갔을 때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이야기가 딱 맞는다. 아까 여우가 나타나서 새들은 비명을 질렀고 지붕 위로 올라갔을 것이다. 마지막 들린 비명을 지른 닭의 희생으로 여우는 사라진 것이다. 우와, 여긴 진짜 <마당을 나온 암탉>의 실사판 같은 느낌이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는데도 현실감은 전혀 없었다. "여우가 있다니, 내 앞에서 닭을 잡아가다니." 이건 진짜 호주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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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으로 들어와 혹시 모를 여우의 습격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창문을 다 닫아 잠그고 커튼도 모두 내렸다. 내가 지금 여우가 무서워서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게 꿈만 같다. 창틀도 흔들어보고 커튼의 틈새도 꼼꼼히 체크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멧돼지가 종종 출몰해서 뉴스에 나오곤 한다. 이곳 여우는 우리나라 멧돼지 같은 존재인 것인가? 살다 살다 이런 경험도 다 해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시드니의 공원 같은 데서도 가끔씩 여우가 나타날 때가 있다고 전해 들었다. 하긴 갈매기가 나랑 싸우자고 덤벼드는 나라니 여우가 닭잡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수 있겠다 싶다. 어제 EBS에서 몽골 편을 보는데 늑대가 나타나 양을 잡아먹어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늑대사냥을 가는 것을 보며 시드니의 여우를 생각 안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여우가 닭 잡아먹는 걸 2026년에 보는 건 무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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